유럽은 왜 인플루언서를 법으로 다루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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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x@metax.kr | 2025-06-12 07:00:00

프랑스부터 노르웨이까지, 주요국 인플루언서 규제 정책 총정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이슈리포트> 2025년 제3호
‘유럽 주요국의 인플루언서 규제 동향과 정책적 시사점’
한국언론진흥재단 진민정 책임연구위원

‘영향력’은 권력이자 책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소셜미디어를 활발히 사용하는 개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은 브랜드의 흥망을 좌우하는 광고업계의 핵심 주체이자, 여론을 형성하는 '비공식 미디어'로 떠올랐다. 제품 홍보는 물론이고, 사회적 가치와 이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들의 존재는 단순한 창작자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은 인플루언서를 더 이상 단순한 1인 창작자로 보지 않고, 상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광고주이자 매체'로 간주하며 본격적인 제도권 규제 대상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규제 움직임의 핵심에는 소비자 보호, 청소년 안전, 그리고 광고의 투명성 확보라는 공통된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이슈리포트> 2025년 제3호 ‘유럽 주요국의 인플루언서 규제 동향과 정책적 시사점’(진민정 책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유럽 사회는 인플루언서를 더 이상 개인의 창작활동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공공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영향력 행사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법적·제도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인플루언서 산업이 성숙해질수록 그에 걸맞은 법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유럽 내에서 뚜렷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세계 최초의 인플루언서 규제법 도입

프랑스는 2023년 6월, 세계 최초로 인플루언서의 상업 활동을 규제하는 독립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은 인플루언서를 “전자적 수단을 통해 상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이들이 유·무상 대가를 받고 게시하는 콘텐츠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과하도록 했다.

가장 핵심적인 규정은 광고 또는 협찬이 포함된 콘텐츠에는 반드시 "#광고", "#협찬"과 같은 해시태그나 명확한 문구로 이를 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상 콘텐츠에서는 말로만 협찬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설명란이나 화면 내 텍스트로 재차 명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성형수술, 니코틴 제품, 암호화폐, 미용 시술 등 고위험 품목에 대한 광고는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프랑스 법은 국내 거주 인플루언서뿐 아니라 프랑스 시장을 겨냥한 해외 인플루언서에게도 적용된다. 이들은 유럽 내 법적 대리인을 지정해 감독당국의 요청에 응해야 하며, 광고주와는 반드시 서면 계약을 맺어야 한다. 위반 시 최대 2년의 징역형 또는 30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플랫폼 계정 정지 처분도 가능하다.

스페인: 방송법 속으로 들어간 인플루언서

스페인은 인플루언서를 방송법 체계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규제에 나섰다. 2022년 개정된 시청각 커뮤니케이션 일반법(LGCA)을 통해, 일정 조건을 갖춘 인플루언서를 '시청각 서비스 제공자'로 정의하고 방송통신위원회(CNMC) 등록을 의무화했다.

구체적으로, 팔로워 수가 단일 플랫폼 기준 100만 명 이상이거나 연간 수익이 30만 유로를 초과하는 경우, 그리고 일정량 이상의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업로드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이용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광고 표시 의무는 물론,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콘텐츠 등급제, 플랫폼의 연령 제한 기능 활용 등의 책임도 부담하게 된다.

광고 콘텐츠임을 밝히지 않은 협찬 게시물은 불법으로 간주되며, "#Publicidad"나 "#ContenidoPatrocinado" 등의 해시태그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위반 시 최소 1만 유로에서 최대 15만 유로의 과징금이 부과되며, 콘텐츠 삭제, 수익 제한 등도 가능하다.

이탈리아: 자율에서 법규제로의 전환

이탈리아는 오랜 시간 자율규제에 의존해왔지만, 2023년 인플루언서 키아라 페라그니의 허위광고 사건 이후 기조가 급변했다. 당시 페라그니는 자선기부를 빙자한 허위 마케팅으로 100만 유로가 넘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통신감독청(AGCOM)은 ‘팔로워 100만 명 이상, 연간 24개 이상 게시물 업로드, 평균 참여율 2%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한 인플루언서를 디지털 방송 매체로 간주하고, 강력한 규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업 콘텐츠에는 반드시 #Pubblicità, #Sponsorizzato 또는 #adv와 같은 해시태그를 명확히 표기해야 하며, 게시물 서두에 협찬 사실을 알리는 문구를 포함시켜야 한다. 광고 수익이 발생하는 제휴 링크나 할인코드 제공 시에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지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특히 의약품, 암호화폐, 금융상품 등 전문성이 필요한 품목에 대해 사전 심사제도를 도입했으며, 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60만 유로의 벌금과 계정 정지 등의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르웨이: 윤리와 법의 이중 규제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 비회원국이지만, 소비자 보호에 있어서 매우 선도적인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전 세계 최초로 인플루언서가 보정한 사진이나 필터를 사용한 이미지를 광고에 사용할 경우, 정부 인증 라벨을 부착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이는 청소년의 외모 불안감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광고성 콘텐츠는 반드시 "#reklame(광고)"와 같은 명확한 해시태그로 표시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또는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또, 민간에서는 ‘FIM(인플루언서 마케팅 감시위원회)’라는 윤리감시 기구가 설립돼, 성형수술, 미용시술, 다이어트 보조제 등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콘텐츠에 대해 경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법적 강제력보다 높은 윤리 기준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규제와 정부 정책의 조화를 통해 강력한 광고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이슈리포트> 2025년 제3호 ‘유럽 주요국의 인플루언서 규제 동향과 정책적 시사점’(진민정 책임연구위원)

인플루언서 규제, 왜 지금 필요한가?

유럽 주요국은 인플루언서를 단순한 1인 창작자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는 상업적 영향력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비공식 미디어’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동시에 공공성과 신뢰성에 대한 책임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광고의 투명성 강화, 청소년 보호, 소비자 권익 보장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 제도적 장치를 적극 정비해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디지털 생태계 전반의 정보 윤리 확립과 신뢰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 볼 수 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며, 플랫폼 기반 콘텐츠 환경이 고도화될수록 그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은 무엇을 참고해야 할까?

한국 역시 전자상거래법, 표시광고법 등 일부 법령을 통해 인플루언서의 상업 활동을 일정 부분 규율하고 있으나, 유럽처럼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규제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팔로워 수 또는 연간 수익 기준을 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플루언서를 공식 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관리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성형, 금융, 다이어트 보조제 등 고위험 품목에 대해서는 사전 홍보 제한, 콘텐츠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 선제적 규제가 필요하다. 정부 주도 규제와 업계 자율규제를 병행해, 민간의 유연성과 공공의 책임 기준이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를 정비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광고 식별 기능 강화, 사용자 신고 대응 등 책임을 법적으로 명시하거나, 최소한의 기술적·운영적 기준을 권고하는 정책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과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확산이다. 협찬 콘텐츠의 식별, 보정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인식, 알고리즘 기반 노출 구조에 대한 이해 등이 소비자 주체성 회복의 관건이 된다.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균형

인플루언서는 이제 단순한 ‘개인 미디어’가 아니다.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곧 사회적 권력이며, 그만큼 투명성과 신뢰에 대한 책임이 수반된다. 유럽 주요국이 보여주는 규제 모델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참고 지점을 제시한다.

결국 규제의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공정한 시장 질서와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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