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규제 강화 속 빅테크 CEO의 법적 책임 논쟁 본격화
강석준 기자
camberev@gmail.com | 2025-03-21 15:00:07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운영 책임에 대한 논쟁이 글로벌 규제 강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일시 출국 허가를 받아 두바이로 이동하면서, 플랫폼 운영자의 법적 책임 문제가 국제적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텔레그램이 아동 성착취물, 마약 거래, 테러 조직 활동 등에 악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소셜미디어 기업 CEO들이 사용자 보호와 범죄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익명성을 강조하는 플랫폼이 범죄의 온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 기관들은 이에 대응해 규제 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플랫폼 CEO들에게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메타, X(구 트위터), 스냅챗 등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들 역시 강화되는 규제 환경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셜미디어 및 메시징 플랫폼 운영자들이 단순한 중개자의 역할을 넘어 법적 책임을 직접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이 직면한 책임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디지털 서비스 규제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건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 두로프 체포와 플랫폼 책임 논란
지난해 8월, 파벨 두로프는 프랑스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당국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 경찰 내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단속 사무국(OFMIN)은 텔레그램이 불법 콘텐츠 확산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두로프는 아동 착취, 마약 밀매, 테러 조직 활동 방조 등 총 12가지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이는 플랫폼 운영자의 법적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프랑스 법원은 최근 그의 보석 조건을 완화하면서 3월 16일부터 4월 7일까지 출국을 허용했고, 이에 따라 그는 두바이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텔레그램이 범죄 조직의 주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운영자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운영 책임을 강화하려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빅테크 CEO들이 단순한 기술 제공자가 아니라 플랫폼 내 불법 활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결과는 다른 기업 CEO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전 세계 소셜미디어 및 메시징 서비스 운영자들이 새로운 법적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 텔레그램과 범죄 악용 논란
텔레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9억 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한 인기 메시징 플랫폼으로, 높은 수준의 암호화와 익명성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이 범죄 조직과 극단주의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당국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텔레그램이 범죄 행위의 중심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대한민국의 ‘N번방 사건’이 있다. 당시 텔레그램을 통해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익명성과 보안성이 높아 수사기관의 개입이 어려웠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각국 정부가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성이 높은 플랫폼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당국은 텔레그램이 아동 성착취물 및 기타 불법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두로프가 체포된 이후 텔레그램 측은 16만 개 이상의 아동 성착취 관련 그룹 및 채널을 차단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플랫폼이 여전히 불법 콘텐츠 관리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수치다. 또한, 익명성과 보안성이 강조되는 만큼 마약 거래, 무기 밀매, 심지어 청부 살인과 같은 범죄에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텔레그램이 극단주의 단체의 활동에 이용된 사례도 빈번하다. IS와 같은 테러 조직이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원 모집과 선전 활동을 해왔으며, 2025년 들어서만 5만 7천 개 이상의 테러 관련 커뮤니티가 삭제됐다고 발표됐다. 하지만 서구 정부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여전히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하며, 보다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빅테크 CEO의 법적 책임 논쟁과 규제 강화
두로프의 체포는 단순한 법적 사건을 넘어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텔레그램이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와 정보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플랫폼이라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이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FreePavel 해시태그를 달며 두로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러시아 크렘린 궁도 프랑스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며 정치적 박해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으로 변했다며 플랫폼 운영자가 불법 활동을 방조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도입하며 플랫폼의 알고리즘 및 콘텐츠 관리 책임을 대폭 강화했다. 이 법안은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메타, X, 스냅챗 등 주요 플랫폼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텔레그램을 포함한 모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강력한 규제 조치를 예고하며, 불법 콘텐츠 방조 시 기업뿐만 아니라 경영진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에서도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2024년 일부 주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소셜미디어 사용 제한 법안이 제정됐으며, 연방 차원에서도 플랫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이 검토 중이다. 이는 단순한 벌금 부과 수준을 넘어 CEO 개인의 법적 책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빅테크 업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 향후 전망과 빅테크 기업의 대응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법적 책임 논의가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 환경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텔레그램은 최근 610만 개 이상의 불법 채널을 차단했다고 발표하며 플랫폼 정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AI 기반 콘텐츠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과 더욱 엄격한 사용자 신고 시스템 마련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각국 정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다른 소셜미디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메타, X, 스냅챗 등 주요 플랫폼들도 강화된 규제에 대비해야 하며, CEO들의 법적 책임 문제도 점차 가시화될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의 경영진들이 플랫폼 내 불법 활동에 대해 직접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지, 아니면 프라이버시 보호와 자유로운 정보 공유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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