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진짜 사라지는 것은 사람도, 일자리도 아닌 'OO'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6-26 11:00:00

AI시대, 달라지는 노동 시장 예측과 현재 상황
변화할 시장에 대처해야 하는 자세

당신의 일자리는 안전한가?

한때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클리셰처럼 들리던 이 질문이 이제는 많은 직장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생성형 AI의 급속한 발전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일자리라는 사회 시스템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2025년 5월, Anthropic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이러한 현실에 경고장을 던졌다. “AI는 향후 5년 안에 초급 사무직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으며, 미국의 실업률은 10~2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AI 기술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CEO가 직접 꺼낸 것이기에 더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이 경고는 단지 먼 미래를 걱정하는 이론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자리’가 생겨나고 있으며, 그 공백은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AI가 채워가고 있다. 인간과 알고리즘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 우리의 일은 단지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으로 다시 질문받고 있다.

 

AI, 어디까지 왔나?

생성형 AI 모델들의 질주, @Perplexity

GPT-4.1(OpenAI), Claude 시리즈(Anthropic), Gemini 2.5(Google) 등 대표적인 생성형 AI 모델들은 이미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제 업무를 대체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법률 문서 작성, 고객 응대, 기사 초안 생성, 회의록 요약 등 지식 기반의 반복 업무에서 AI는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물을 도출해내며, ‘보조’에서 ‘대체’로의 전환점을 넘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 기업 McKinsey는 이러한 흐름을 수치로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2019–2022) 동안 미국 노동 시장에서는 860만 건의 직업 전환이 발생했으며, 이는 이전 3년 기간보다 50% 증가한 수치였다. 이어 2030년까지 현재 미국 경제에서 수행되고 있는 업무 시간의 최대 30%가 자동화될 수 있으며, 특히 사무 지원, 고객 서비스, 음식 서비스 분야의 고용이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단순한 기능직에 그치지 않고, 백오피스 사무직·서비스직·중간관리직까지 포함한 수치다.

'2030년까지 미국 노동 시장에서 일어날 직업 전환(occupational transitions)과 AI 시대에 회복력 있고 성장 중인 직업군': https://www.mckinsey.com/mgi/our-research/generative-ai-and-the-future-of-work-in-america

위 그래프에 따르면,

회복력 있고 성장 중인 직업군(Resilient and growing occupations)의 고용 성장 추세(굵은 파란 선)는 2016년을 기준으로 설정(= 0)했을 때, 2030년까지 약 17% 증가, 9.9백만 개(990만 개)의 일자리 증가가 예상된다. 그 외 직업군(회색 점선)에서는 일부 직군은 고용이 정체되거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추세를 이끄는 요인(좌측 설명)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헬스케어 수요 증가와 디지털화 및 기술 채택의 가속화,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최종 배송) 수요 증가 등이 꼽혔다.

또한, 회복력 있고 성장 중인 직업군에서도 100만 명 이상이 다른 직업군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해당 직업군도 완전히 안정적인 것은 아니며, 변화의 영향권 내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Anthropic CEO의 경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단지 AI 업계의 CEO가 아니다. 그는 과거 OpenAI에서 GPT 모델 개발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연구자이며, 현재는 Claude 시리즈를 이끄는 Anthropic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다.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 직접 "고용 시장 붕괴"라는 표현을 꺼낸 것은, 단순한 가능성 제시가 아니라 현장에서 감지된 조짐에 대한 내밀한 경고로 읽힌다. 그는 특히 기술, 금융, 법률, 컨설팅 등 지식 기반 화이트칼라 직군이 AI의 대체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될 것이라 강조한다. 문제는 이 같은 경고를 사회 전반이 과소평가하거나, 심지어 '기술 낙관주의'에 묻혀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모데이의 발언은 AI 기술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술의 가속을 당연한 진로로 보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적 대응 시스템(교육, 재훈련, 제도 등)에 문제를 제기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느냐는 사회의 역량이라는 점이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기회’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우려하지만, 실제로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회로 진입하는 통로이자 성장의 계단, 그리고 기회의 첫걸음이다. 특히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신입과 초급 실무자,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담당하는 직무군에서 이러한 ‘기회의 붕괴’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력을 쌓으며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의 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사례를 보자.

정보 공개 요청에 따라 밝혀진 영국 과학혁신기술부(DSIT)의 25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DSIT는 초급 공무원 업무의 약 62%가 인공지능(AI)을 통해 자동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행정 보조원(administrative assistants) 직무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 비중이 높아, AI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보고서는 또, AI 자동화로 인해 연간 약 360억 파운드(약 62조 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는데, 이에 따라 영국의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는 향후 4년간 공무원 운영 비용을 15% 절감하고, 약 5만 개의 공무원 직위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내세운 AI 기반 행정 개편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해당 보고서에서, DSIT가 제시한 직급 별 자동화 가능 비율은 다음과 같다.

@Perplexity

행정 보조원: 62%
집행 담당자(Executive Officers): 48%
선임 집행 담당자(Senior Executive Officers): 43%
고위 집행 담당자(Higher Executive Officers): 23%
최고위 공무원(Senior Civil Servants): 0%

이는 비단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2025년 1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직종은 계산원(Cashiers)과 승차권 발권원(Ticket Clerks)으로, 약 1,400만에서 1,5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로 전망된다. 이는 무인 계산대, 키오스크, 모바일 결제 시스템 등 소비자 접점의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감소가 예상되는 직종들': 세계경제포럼, Future of Jobs Report 2025

그 뒤를 잇는 직종은 행정 보조원 및 비서(Administrative Assistants and Executive Secretaries)로, 약 70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문서 작성, 회의 정리, 일정 조정 등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러한 작업이 AI 기반 문서 자동화 도구 및 스케줄링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행정 보조원 및 비서 직무는 전통적으로 신입 직원이나 경력 초기 단계에서 많이 진입하는 ‘입구 직무(entry-level jobs)’이다. 이 직무는 업무의 성격상 고도의 전문성보다는 정확성, 성실성, 반복 업무 처리 능력이 요구되며, 과거에는 사회 진입의 첫 관문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문서작성 도구, 회의 자동 요약, 일정 조율 툴 등이 이 역할을 대체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채용하지 않고도 동일한 수준의 행정 처리를 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이렇게, AI 도입의 파급력은 '조직 피라미드 하단'에 더 집중된다. 반복적이고 매뉴얼 중심의 주니어 직무, 보조성 행정 역할부터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이는 곧 사회 진입단계의 청년층·신입층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단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회의 입구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 효율화를 넘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I가 사람을 당장 대체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거쳐야 할 초기 단계(실습, 수습, 보조)를 없애고 있다는 점이 더 깊은 위협이다. 이는 단순한 실업이 아니라, 사회 진입 구조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다.


그럼에도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남아

AI는 빠르고 정확하며, 반복에 강하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거나, 감정과 맥락을 동반한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비정형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나 결과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동반되는 경우, 이해보다 감정적 연대와 정서적 대응이 더 중요한 순간 등이 AI보단 인간이 더 강한 부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 현장에서 AI는 병리 이미지를 판독할 수 있지만, 환자의 공포와 혼란을 공감하며 설명하는 일은 인간 의사의 몫이다. 법률 자문에서도 계약 조항을 분석하고 요약하는 일은 AI가 가능하지만, 그것을 고객의 삶과 맥락에 맞게 해석해 전략을 제안하는 일은 인간 전문가에게 남아 있다.
이처럼,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 영역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확장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을 갖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보다 더 빠르게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AI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분별하고, 그 자리를 인간답게 채우는 것'이다.

즉, 업무 속도 경쟁이 아닌, 의미와 책임의 방향으로 인간 노동의 정체성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AI 시대, ‘인간의 자리’를 다시 설계해야 할 때

“AI가 더 빨라졌으니, 우리는 더 깊어져야 한다.”

깊어진다는 것은 단지 철학적 성찰을 뜻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실천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기술을 수용하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때, 그것이 도움이 되는가, 공동체를 강화하는가, 인간의 존엄을 보존하는가를 따지는 기준이 명확히 필요하다. 기술의 가치를 '속도와 효율'로만 평가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또, 인간만의 고유 영역을 교육하고 보호해야 한다. 공감, 창의성, 윤리적 판단, 공동체적 책임 등은 기술이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이다. 이 영역을 강화하는 교육이야말로 미래세대가 AI와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도와 시스템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노동, 교육, 복지, 법제도의 변화는 턱없이 느리다. AI 시대에 걸맞는 사회 안전망과 공정한 이익 배분 구조, 새로운 직업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직업의 수만이 아니라, ‘일’이라는 개념 자체에 깃든 인간적 가치다.
일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이 사회와 연결되고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통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 너머를 보는 통찰이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깊어져야 하는 이유는, '빠름이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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