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경계선②] ‘끼인 韓 제조업’, 사각지대에 빠지다
X, 이정민 기자
metax@metax.kr | 2025-04-23 13:00:00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며 ‘탈중국’ 흐름이 가속화되고, 미국·EU(유렵연합) 중심의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제조업은 그 사이에 낀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리쇼어링(Reshoring)은 해외로 이전된 생산 공정을 본국으로 다시 되돌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업들이 해외에서의 생산을 본국으로 재이전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리쇼어링은 자국 내 일자리 창출, 산업 자립성 강화, 그리고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목표로,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 제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한국 수출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이들 기업은 고금리·고환율·고관세의 ‘3고(高)’에 시달리며 빠르게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들은 기술 전환에 실패하며, '부실징후기업' 명단에 오르고 있고, 이는 산업 구조 전반의 근본적인 균열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 혁신의 속도에 뒤처지고 있으며, 구조적 재편이 시급한 상황에 놓였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끼인 한국 제조업’, 전략적 사각지대에 빠지다
2024년, 세계 산업 질서는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맞았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법(Chips Act) 등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며 자국 중심의 산업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자국 내 생산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의 리쇼어링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급기지를 빠르게 재배치하며, 글로벌 제조업 환경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제조업체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낀 위치'로 밀려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기술 고도화와 생산기지 다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한국은 점차 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과거 '중국 중심의 수출 모델'에 의존해왔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탈중국'의 수혜,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한국 기업들은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및 수출 모델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2024년, 이러한 모델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4년 8월 발간한 '[24.8월 핵심이슈]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對중국 수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무역 흑자국으로 기능했으나, 최근에는 그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대중 수출은 정체되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면 대중 수입은 증가세를 유지하며, 대중 무역수지 흑자도 줄어들어 2023년에는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인 수출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이 배제되고 있다'는 구조적 위기를 의미한다.
한때 중국의 생산 공장에서 부품을 공급하던 한국 제조업체들이 중국 내 공급망 축소와 함께 그 자리를 다른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점차 자국 내 생산 능력을 확장하면서, 한국 제조업체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설비 이전·기술 전환 투자, 중견기업은 뒷걸음질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과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 다변화를 진행 중이지만, 중견·중소 제조업체들은 자금과 기술력, 글로벌 네트워크 측면에서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공급망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 수출 채널 붕괴에 무기력하게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모델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왜 한국 제조업만 이토록 취약한가?
한국 제조업은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 대응'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24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탈중국 흐름 속에서, 한국의 중소·중견 제조기업들은 기술 혁신의 속도와 시장 요구에 대한 대응력에서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그 결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소홀히 한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배제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제조업은 고금리·고환율·고관세의 3고(高) 환경 속에서 과거의 수출 중심 모델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중국 의존형 수출 모델의 붕괴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생산 능력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한국의 입지 약화는, 많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 부족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한국 제조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중국 중심의 생산 모델에 의존하던 한국 제조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모델이 고착화돼 있는 한국의 제조업은 대기업의 납품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기술 혁신이 부족하고, 브랜드 경쟁력과 기술 자립도가 낮은 상태에서 외부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결여된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생존의 열쇠는 ‘구조 재설계’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단순히 일부 중소기업의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구조 자체가 ‘글로벌 경쟁력’의 기준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경고가 날카롭게 울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존 가능성을 재평가하고, 기술 혁신과 시장 요구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적 재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의 지속 가능성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① '디지털 전환 역량' 중심 기업 평가체계 도입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단순한 재무 상태나 기존 생산 능력에 의존할 수 없다. 디지털 전환 역량과 기술 혁신을 핵심 지표로 기업 평가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기업의 기술 전환 능력은 미래 생산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책금융은 미래 기술 전환이 가능한 기업에 집중 배분돼야 하며, 기술 혁신이 가능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강력히 뒷받침돼야 한다.
② 중국 의존형 수출모델 탈피
대(對)중국 의존형 수출 모델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한국 제조업은 북미, 동남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 대한 수출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중국 의존형 생산모델을 북미·유럽·동남아 특화형 모델로 전환하는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현지 맞춤형 생산·R&D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③ ESG 리스크 조기진단 시스템 구축
ESG 기준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글로벌 바이어의 요구는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에서 높은 기준을 충족한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제조업체들은 ESG 리스크 조기진단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 수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을 사전에 탐지하고, 표준 가이드라인 및 인증 시스템을 연계하여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ESG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단기적인 매출 하락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024년 한국 제조업계의 한계기업 급증은 단순한 매출 하락이나 재무 악화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 자체가 ‘기술·신뢰·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기준에서 탈락했음을 의미한다. 기술 없는 제조업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으며, 납품만으로 버티는 수출산업도 더는 경쟁력이 없다.
지금은 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한국 제조업이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르려면, 구조 재설계와 혁신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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