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와 MIT의 실험, "AI, 오렌지를 구하라!"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9-29 11:00:14

위기의 오렌지

우리가 매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따르는 주스 한 잔이, 사실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전 세계 감귤 산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해 ‘citrus greening(HLB, 황룡병)’ 때문이다. 이 질병은 감귤류 나무의 영양 전달 체계를 무너뜨려 열매를 작고 쓴맛 나게 만들고, 결국 나무 자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문제는 그 확산 속도와 피해 규모다. 세계 최대 오렌지 산지 중 하나인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오렌지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연간 수확량이 두 자릿수 비율로 감소하고 있다. 브라질 역시 상황이 심각해, 글로벌 주스 산업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미 마트에서 오렌지 주스 가격이 오르는 형태로 체감되고 있으며,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라면 머지않아 아침 식탁에서 오렌지 주스를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즉, citrus greening은 단순한 농업 문제가 아니라, 식탁과 생활문화 전반을 위협하는 글로벌 리스크가 된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 명문대의 이례적 동맹

이런 위기 앞에서 글로벌 음료 기업 코카콜라와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가 손을 잡았다. 이름하여 “Save the Orange” 프로젝트다. 단순히 기업이 원료 확보 차원에서 투자하는 수준을 넘어, 세계적인 학술기관과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https://www.coca-colacompany.com/media-center/the-coca-cola-company-joins-mit-ai-impact-consortium

이 프로젝트에는 코카콜라와 MIT뿐 아니라, 브라질의 감귤 연구 기관 Fundecitrus, 농업 생명공학 기업 Invaio Sciences 등이 함께 참여한다. 민간 기업, 학계, 연구 기관이 협력해 AI와 생명공학을 결합한 새로운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감귤 나무를 파괴하는 citrus greening의 조기 탐지부터 관리, 그리고 근본적인 치료법 개발까지, 지금까지 수년이 걸리던 연구 과정을 AI의 연산 능력으로 수개월 단위로 단축하는 것.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술적 접근 방식에 있다. citrus greening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농업 과학자들을 괴롭혀온 난제지만, 기존 연구 방식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품종을 시험하거나 생물학적 치료제를 검증하는 과정에는 최소 수년이 소요되었고, 그마저도 성과가 불확실했다. 그러나 이번 협력에서는 생성형 AI가 연구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와 실험 결과를 학습한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며, 과거라면 몇 년이 걸릴 후보 물질 탐색을 몇 달 안에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농업 생명공학 기업 인바이오 사이언스(Invaio Sciences)의 기술이 더해진다. 이 회사가 보유한 ‘트리사이즈(Trecise)’ 정밀 전달 기술은, 말 그대로 나무의 혈관을 찾아 필요한 성분을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기존 농약 살포처럼 환경 전반에 영향을 주지 않고, 병원균이 번식하는 조직을 정밀하게 겨냥한다는 점에서 훨씬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특히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처럼 AI와 생명공학의 결합은 단순한 ‘속도의 향상’을 넘어, 연구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문제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ttps://www.invaio.com/


또한 코카콜라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경에는 당연히 공급망 안정성이라는 이해관계도 깔려 있다. 오렌지는 미닛메이드(Minute Maid), 심플리(Simply) 등 자사의 대표적인 주스 브랜드를 떠받치는 핵심 원료다. citrus greening으로 인한 오렌지 수확량 급감은 곧바로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 나아가 매출 타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코카콜라가 이 위기를 단순히 ‘원료 확보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번 프로젝트를 글로벌 농업 생태계 보전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해석하고, 학계와 연구기관, 생명공학 기업과 손잡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와 동시에 사회적 책임(CSR)을 실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Save the Orange”라는 이름 자체가 소비자와 농가 모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단순히 기업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캠페인을 넘어, 산업과 사회를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코카콜라는 오렌지를 지키는 일을 통해 자사 브랜드와 공급망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식량 안보라는 공공적 가치를 건드리고 있다. 이는 앞으로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나만의 생존’을 넘어, 산업 전체와 사회적 자산을 지키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AI가 던지는 두 가지 교훈                                                                                                                   이번 프로젝트가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농업 위기 대응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citrus greening처럼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난제를 전통적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지만, AI와 생명공학의 결합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생성형 AI는 연구 속도를 단축하고, 생명공학은 정밀한 치료법을 실현한다. 이 조합은 단순한 효율 개선이 아니라, 농업 연구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메시지는 공급망 관리의 사회화다. 코카콜라는 주스 원료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이해관계는 농업 생태계 보전이라는 사회적 과제와 맞닿게 되었다. 이는 기업이 더 이상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생태 문제 해결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공급망이 위기를 맞을 때, 그 대응은 곧 사회적 책임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기술과 기업, 대학이 손잡은 “Save the Orange” 프로젝트는 단순히 오렌지를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AI가 농업과 생태, 나아가 우리의 일상까지 바꿔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주스 한 잔의 위기에서 출발한 이 실험은 결국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AI는 우리의 식탁을,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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