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안경과 스마트 글래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안경 속으로 들어가고,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주변 정보를 처리하며, 이용자는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곧바로 기록하거나 전송할 수 있다. 더 이상 촬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명시적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안경, 배지, 이어웨어, 시계, 목걸이형 디바이스가 모두 녹음·녹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변화는 프라이버시 법을 흔들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SB 1130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려 했다. 법안은 사람이 합리적 프라이버시 기대를 갖는 사업장 내 공간에서 웨어러블 녹음 장치를 사용해 다른 사람의 음성이나 영상을 포착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만들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026년 9월 30일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고 반환했다.

거부권 메시지의 논리는 미묘하다.

뉴섬 주지사는 문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웨어러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일반 안경이나 액세서리와 매우 비슷한 물건 안에 카메라, 마이크, 인공지능 시스템이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장치들은 음성과 영상을 기록하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청중에게 실시간 전송할 수도 있다.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한 불편하고 침해적이며 잠재적으로 위험한 행동 사례가 등장했고,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는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밀성의 부족이었다.

뉴섬 주지사는 이 문제에 “precision and care”, 즉 정밀함과 신중함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SB 1130이 여러 용어를 지나치게 넓거나 부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우려였다. 특히 “wearable recording device”의 정의가 너무 넓어, 공공장소에서 널리 사용되고 녹음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나 기타 착용형 기기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그 결과 상당한 혼란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법안의 목표는 AI 안경과 같은 은밀한 녹음·녹화 장치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률 문구가 너무 넓으면 실제 적용 대상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밴드, 액션캠, 보청기형 기기, 업무용 웨어러블, 의료 보조기기까지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기술 규제에서 정의는 곧 권력이다.

무엇을 “웨어러블 녹음 장치”라고 부를 것인가.
무엇을 “녹음”이라고 볼 것인가.
어떤 공간을 “프라이버시 기대가 있는 사업장 내 공간”이라고 볼 것인가.
기기가 항상 녹음 가능한 상태인 것과 실제 녹음 행위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AI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처리하지만 저장하지 않는 경우도 규제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법은 모호해진다.

그리고 모호한 형사법은 위험하다. SB 1130은 경범죄를 만들려는 법안이었다. 즉 단순한 권고나 민사 규제가 아니라 형사 처벌 가능성이 있는 규제다. 이 경우 정의가 넓거나 불명확하면 시민은 자신이 어떤 행위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렵고, 집행기관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커진다.

뉴섬 주지사가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너무 넓은 정의로 인해 스마트워치처럼 일상적이고 합법적으로 쓰이는 장치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AI 안경을 겨냥한 법이 스마트워치 이용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거부 사유도 주목할 만하다.

뉴섬 주지사는 SB 1130이 사업장 내 합리적 프라이버시 기대가 있는 장소에서 시각·음성 녹음을 금지하려 하지만, 기존 캘리포니아 법도 이미 합리적 프라이버시 기대가 있는 공간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사람을 녹화하는 행위와 동의 없는 비밀 통신 녹음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그는 새 법이 필요 없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기존 법이 이미 일정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새 법이 그 위에 넓고 부정확한 정의를 얹으면 법체계가 중복되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프라이버시 보호는 필요하지만, 기존 법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새 범죄 조항을 만드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번 거부권 메시지는 AI 웨어러블 시대의 규제 난점을 압축한다.

기술은 빠르게 작아진다.
법은 기기 이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오늘의 스마트 글래스는 내일의 보청기, 시계, 브로치, 이어폰, 명찰, 옷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법은 특정 기기 형태가 아니라 행위와 위험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SB 1130은 웨어러블 녹음 장치를 겨냥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착용했는가”보다 “무엇을 기록했고, 누구에게 알렸으며, 어떤 맥락에서 동의를 받았는가”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몰래 녹음해도 프라이버시 침해는 발생한다. 반대로 스마트 안경을 착용했지만 녹음하지 않았다면 형사 처벌 대상인지 논쟁이 생긴다.

기술이 몸에 가까워질수록 규제는 더 섬세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손에 든다. 촬영 행위가 비교적 눈에 보인다.
스마트 안경은 얼굴에 걸친다. 촬영과 착용이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스마트워치는 손목에 차고 있다. 음성 녹음 기능이 있어도 항상 감시 장치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AI 배지는 회의 요약을 위해 녹음할 수 있지만, 주변인의 동의 문제가 생긴다.

이 모든 장치를 하나의 넓은 정의로 묶으면 편하지만, 법 집행은 어려워진다.

뉴섬 주지사의 거부권은 기술 산업을 무조건 편든 결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메시지에는 웨어러블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는 일반 안경과 닮은 기기가 카메라와 마이크, AI 시스템을 품고 실시간 처리와 라이브스트리밍까지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를 이용한 침해적 행동 사례가 등장했고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대응 방식이 문제였다.

그는 법안 작성자가 제기한 수요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법률은 정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술 규제의 기본 원칙이다. 새로운 위험이 등장했다고 해서 넓은 금지 조항을 빠르게 만드는 것이 항상 좋은 해법은 아니다. 특히 형사처벌을 수반하는 법안이라면,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지 명확해야 한다.

AI 웨어러블 규제는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Meta의 Ray-Ban Meta 같은 스마트 글래스는 이미 카메라와 마이크를 갖추고 있다. 향후 AI 비서가 결합되면 사용자는 눈앞의 사람, 장소, 문서, 상품, 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회의 내용을 요약하고, 낯선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번역하고, 검색하고, 기록하는 기능이 결합될 수 있다.

이때 프라이버시 문제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기록의 문제다.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 음성이나 영상이 저장되는 경우다. 이는 기존 녹음·촬영 법제로도 다룰 수 있지만, 웨어러블에서는 촬영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실시간 처리의 문제다.

영상이나 음성이 저장되지 않더라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감정, 나이, 성별, 신원, 대화 내용, 문서 내용을 즉시 추론할 수 있다면 이는 녹화와는 다른 종류의 프라이버시 침해다.

셋째, 전송의 문제다.

웨어러블 기기가 영상을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클라우드로 보내면, 현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에게 노출되는지 알기 어렵다. 뉴섬 주지사가 언급한 라이브스트리밍 가능성은 이 위험을 가리킨다.

SB 1130은 이 문제의 일부를 겨냥했지만, 법적 정의가 기술 현실을 충분히 정교하게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 규제는 특정 기기명을 넓게 잡는 방식보다 상황과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소별로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화장실, 탈의실, 의료실, 상담실, 회의실, 사무실, 매장, 거리, 공원은 프라이버시 기대 수준이 다르다. 또 녹음·녹화 여부, 실시간 분석 여부, 저장 여부, 전송 여부, 고지 여부, 동의 여부를 나눠 규정해야 한다.

장치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AI 안경이 문제인 이유는 안경이기 때문이 아니다.
촬영 사실이 눈에 잘 띄지 않고, 기록과 분석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며, 주변 사람이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가 항상 문제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가 몰래 녹음 장치로 쓰이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향후 법안은 “웨어러블 녹음 장치”라는 넓은 범주보다, 은폐성·고지 가능성·저장성·전송성·프라이버시 기대 장소를 조합해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거부권은 미국 주정부가 AI 웨어러블 문제를 어떻게 다루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준다.

첫 단계는 문제 인식이다.
웨어러블 AI 기기는 기존 녹음·촬영 관행과 다르다.
두 번째 단계는 법적 정의다.
어떤 기기와 행위를 규제할지 정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기존 법과의 관계다.
이미 있는 도청·비밀녹음·몰카·사생활 침해 법과 어떻게 연결할지 정리해야 한다.

SB 1130은 첫 번째 단계에서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에서 주지사를 설득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에도 시사점이 있다.

한국 역시 몰래카메라, 불법촬영, 통신비밀보호, 개인정보보호, 위치정보, 초상권, 직장 내 감시 문제가 이미 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AI 안경과 웨어러블 녹음 장치는 기존 법의 경계를 흔든다. 특히 카메라가 있는 안경을 쓴 사람이 회의실, 카페, 병원, 학교, 종교시설, 직장에 들어왔을 때 어떤 고지와 동의가 필요한지 논의가 필요하다.

기술은 이미 생활용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카메라가 카메라처럼 보였다.
이제 카메라는 안경처럼 보인다.
녹음기는 녹음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AI는 화면 밖에서 작동한다.

이 변화는 사회적 신뢰를 흔든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자신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전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웨어러블 AI는 이 기본 전제를 바꾼다. 그래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규제는 정확해야 한다.

뉴섬 주지사의 메시지는 바로 이 균형을 말한다. 그는 위험을 인정했다. 입법적 대응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그러나 법안이 지나치게 넓고 부정확해 스마트워치 같은 일상적 기기까지 포함할 수 있고, 이미 존재하는 법과 중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서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AI 시대 입법의 전형적 딜레마다.

느리면 위험을 방치한다.
빠르면 과잉 규제한다.
좁으면 구멍이 생긴다.
넓으면 일상까지 범죄화한다.

SB 1130 거부권은 그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AI 안경과 웨어러블 녹음 장치가 가져올 문제는 실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웨어러블”이라는 이름만으로 넓게 묶는 법이 아니라, 사람의 합리적 프라이버시 기대와 실제 기록·전송·분석 행위를 정확히 겨냥하는 법이 필요하다.

이번 결정은 웨어러블 AI 규제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기술은 이미 안경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법은 렌즈와 마이크, AI 모델과 클라우드, 고지와 동의, 공공장소와 사적 공간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한다.

문제는 “녹음 가능한 기기를 찼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록되고 분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가.
그들이 거부할 수 있었는가.
그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법은 그 차이를 충분히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가.

개빈 뉴섬의 거부권 메시지는 그 마지막 질문에 “아직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