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처음부터 환자의 병명을 알고 진료하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제한된 증상 때문이다. 열이 나거나 통증이 있고, 몸이 붓거나 호흡이 불편하다는 설명만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판단하기 어렵다.
의사는 질문을 시작한다.
증상이 언제 나타났는지, 다른 질환이 있었는지, 복용하는 약은 무엇인지 확인한다. 필요하면 혈액검사와 영상검사 등을 시행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처음 생각했던 진단을 수정하고,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진료는 이처럼 정보를 단계적으로 수집하고 판단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의료 AI의 성능 평가는 이러한 실제 진료 과정과 거리가 있었다.
AI에게 환자의 증상과 병력, 검사 결과를 한꺼번에 제공한 뒤 병명을 맞히도록 하는 방식이 많았다.
일종의 의학 시험 문제였다.
그러나 현실의 의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 언제 검사를 멈추고 진단해야 하는지까지 결정한다.
Microsoft 연구진은 이 차이에 주목했다.
2026년 10월 22일 국제학술지 Science에 게재된 논문 'Sequential diagnosis with language models'는 인공지능이 실제 의사의 진단 과정처럼 단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 평가했다.
연구진은 AI가 제한된 환자 정보에서 출발해 필요한 질문을 하고, 검사를 선택하고, 진단 가설을 수정한 뒤 최종 진단을 내리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의 이름은 Diagnostic Orchestrator(DxO)다.
실험 결과는 눈길을 끌었다.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의 복잡한 임상 사례에서 DxO의 진단 정확도는 83.2%였다. 같은 평가에서 자료 검색이 허용된 의사들의 평균 정확도는 36.1%였다.
실제 응급실 진료기록을 기반으로 구성한 별도 평가에서도 DxO는 80.3%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참여 의사들의 평균은 46.8%였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의미를 단순히 AI가 의사보다 진단을 잘한다는 결론으로 압축해서는 안 된다.
연구는 통제된 텍스트 기반 평가 환경에서 진행됐다. 실제 환자와 대면하는 진료, 전문의 협진, 치료 결정과 환자 안전까지 비교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의료 AI의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의료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의학 지식을 기억하는가에서, 어떤 정보를 언제 수집하고 어떻게 판단을 수정하는가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의료 AI는 정답을 알고 푸는 시험에 가까웠다
그동안 의료 AI가 높은 평가를 받아온 분야 중 하나는 의학 지식 문제 해결이다.
의사 국가시험과 유사한 문제를 풀거나 복잡한 증례를 읽고 진단명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최신 언어모델들은 이러한 평가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문제에 이미 필요한 정보가 모두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증상뿐 아니라 병력과 진찰 소견, 혈액검사 결과, 영상검사 결과까지 주어진다면 AI가 해야 할 일은 이 정보를 분석해 가장 가능성 높은 질환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병원에서 의사는 이러한 정보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다.
환자의 증상을 듣고 어떤 정보가 더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결정하고, 검사를 통해 얻을 정보가 검사에 드는 비용과 부담을 정당화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검사를 계속할지, 현재 확보된 정보로 진단을 내릴지 판단해야 한다.
Microsoft 연구진은 이러한 과정을 순차적 진단(Sequential Diagnosis)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SDBench는 바로 이 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SDBench는 기존의 완성된 임상 사례를 한 번에 제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짧은 환자 정보만 제공한다.
이후 AI나 의사가 필요한 질문을 하거나 검사를 요청하면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단계적으로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진단의 정확도와 누적 검사비용을 함께 측정한다.
단순히 병명을 맞히는 능력뿐 아니라,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629개 임상 사례를 단계별 진단 문제로 바꾸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의료 데이터를 사용했다.
첫 번째는 NEJM에 게재된 임상병리 콘퍼런스(CPC) 사례 304개다.
이 자료는 복잡하거나 드문 질환을 포함한 증례로, 의료 교육과 임상적 추론에 활용되는 사례들이다.
두 번째는 MIMIC-IV-ED 데이터에서 추출한 응급실 입원 사례 325개다.
이 자료는 실제 응급실의 전자의무기록을 기반으로 하며, 학술적으로 정리된 증례보다 일상적인 진료 환경에 가까운 특성을 갖는다.
총 629개 사례를 단계적으로 정보를 요청하는 형태로 바꿨다.
평가에 참여하는 AI와 의사는 처음부터 모든 검사 결과를 볼 수 없었다.
간단한 증상 설명을 받은 뒤 필요한 질문을 하거나 검사를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연구진은 세 가지 주요 역할을 설계했다.
첫 번째는 진단을 수행하는 Diagnostic Agent다.
이 역할은 의사 또는 AI가 맡는다. 환자에게 질문하고, 검사를 요청하고, 최종 진단을 제출한다.
두 번째는 Gatekeeper Agent다.
Gatekeeper는 원본 의료기록을 관리하면서 요청받은 정보만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진단자가 과거 병력을 질문하면 원본 기록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 답한다.
특정 검사를 요청하면 해당 검사 결과를 제공한다.
원본 기록에 요청한 정보가 없을 경우에는 진단에 특별한 방향성을 주지 않는 중립적 가상 결과를 생성하도록 했다.
이는 기록에 정보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진단의 단서가 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세 번째는 Judge Agent다.
Judge는 AI나 의사가 제출한 최종 진단을 실제 참고 진단과 비교해 평가한다.
평가에는 의사가 작성한 5단계 기준이 사용됐고, 치료 방침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진단이 일치하는 경우를 정답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의학 지식 평가보다 실제 임상 추론의 일부를 더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Gatekeeper가 중립적인 결과를 생성한다는 점은 중요한 한계이기도 하다.
현실의 의료기록은 불완전할 수 있고, 환자의 설명은 모호할 수 있다. 실제 검사 결과에는 측정 오차와 해석상의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SDBench는 이러한 현실의 복잡성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한다.
Microsoft는 왜 한 명의 AI 대신 가상의 의료진을 만들었나
이번 연구의 핵심 기술은 DxO다.
DxO는 하나의 언어모델이 즉시 진단명을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다.
복수의 임상 전문가 역할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진단 가설을 검토하도록 설계됐다.
처음 환자 정보가 주어지면 시스템은 가능한 질환들을 정리한다.
이후 추가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가설을 수정한다.
또한 유력한 진단 가설에 반대되는 가능성을 검토해 조기에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위험을 줄이도록 했다.
검사를 요청할 때는 예상되는 진단적 가치와 비용을 함께 고려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많은 검사를 주문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검사를 시행한다면 높은 비용이 발생한다.
반대로 검사비용을 지나치게 줄이면 중요한 질환을 놓칠 수 있다.
DxO는 이 두 요소 사이의 균형을 찾도록 설계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방식을 모델 독립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언어모델 하나에만 적용되는 진단 프롬프트가 아니라, 여러 모델을 이용해 단계적인 진단 과정을 구성할 수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연구는 처음 GPT-4.1을 기반으로 개발됐고, 이후 GPT-5를 사용해 주요 성능을 평가했다.
출판 전에는 GPT-5.5에서도 전체 평가를 반복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모델을 바꿔도 구조화된 진단 방식의 장점이 유지됐다.
이는 의료 AI의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가 모델 자체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모델이 어떤 절차로 정보를 수집하고, 어떤 기준으로 검사를 선택하며, 어떻게 판단을 검증하는지 역시 중요한 성능 요소가 될 수 있다.
복잡한 임상 사례에서 AI 정확도 83.2%, 의사 36.1%
가장 주목받는 결과는 NEJM 임상 사례 평가에서 나왔다.
GPT-5를 이용한 DxO는 검사비용에 별도의 예산 제한을 두지 않았을 때 83.2%의 진단 정확도를 기록했다.
사례당 평균 검사비용은 5,431달러였다.
반면 자료 검색이 허용된 의사들의 평균 진단 정확도는 36.1%였다.
평균 검사비용은 4,725달러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DxO가 더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지만, 이 조건에서는 검사비용도 더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83.2%라는 결과만으로 AI가 의사보다 정확하면서 동시에 비용도 적게 사용했다고 설명하면 부정확하다.
다만 DxO는 검사비용을 제한했을 때도 높은 정확도를 유지했다.
평균 검사비용을 2,241달러로 낮춘 설정에서는 정확도 80.9%를 기록했다.
검사비용을 1,303달러로 제한한 설정에서는 79.6%였다.
이는 자료 검색이 허용된 참여 의사들의 평균 정확도와 비용을 함께 고려할 때 주목할 결과다.
AI가 검사비용을 줄이면서도 높은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운영 지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비용·정확도 파레토 프런티어(Pareto Frontier) 관점에서 분석했다.
파레토 프런티어는 다른 방법이 정확도와 비용 측면에서 동시에 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성능의 경계를 의미한다.
DxO는 여러 설정에서 기존 언어모델과 참여 의사보다 유리한 비용·정확도 조합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에 참여한 의사와 모델, 테스트 사례를 대상으로 한 결과다.
모든 의사나 실제 의료기관보다 AI가 우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응급실 사례에서도 AI가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
복잡한 학술 증례에서만 좋은 성과를 보였다면 결과의 의미는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연구진은 실제 응급실 기록을 기반으로 별도의 평가를 진행했다.
MIMIC-IV-ED에서 추출한 응급실 입원 사례 325개를 사용한 실험이다.
이 평가에서 DxO는 예산 제한이 없을 때 80.3%의 진단 정확도를 기록했다.
평균 검사비용은 4,979달러였다.
참여 의사들의 평균 진단 정확도는 46.8%였고, 평균 검사비용은 3,400달러였다.
이 조건에서도 AI가 더 정확했지만 검사비용 역시 더 높았다.
그러나 비용 제약을 적용하면 결과가 달라졌다.
DxO는 평균 검사비용 2,634달러에서 73.2%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검사비용 2,037달러에서는 69.5%의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참여 의사들의 평균보다 낮은 추정 검사비용으로 더 높은 진단 정확도를 기록한 결과다.
연구진은 응급실 사례가 실제 진료 흐름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만큼 이러한 결과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응급실 자료 역시 실제 현장에서 AI가 환자를 직접 진료한 결과는 아니다.
원본 의료기록을 기반으로 구성한 텍스트 평가 문제였다.
따라서 환자의 상태 변화와 진찰 과정, 의료진 간 협력,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 실제 치료 결정 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AI는 왜 검사를 더 많이 하기보다 질문을 더 많이 했나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차이는 진단 과정에 있었다.
참여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검사를 주문했다.
반면 DxO는 검사에 앞서 훨씬 많은 질문을 했다.
NEJM 사례에서 참여 의사들은 첫 검사를 요청하기 전 평균 5.6개의 질문을 했다.
DxO는 평균 25.5개의 질문을 했다.
약 4.6배의 차이다.
이는 AI가 단순히 의료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높은 성능을 냈다는 설명보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DxO는 처음부터 많은 검사를 요청하기보다 환자의 병력과 증상을 체계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확보했다.
이는 검사비용을 줄이면서도 진단의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특정 감염병을 의심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환자가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특정 환경에 노출됐는지, 어떤 동물을 접촉했는지 등에 관한 질문은 진단 가능성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광범위한 검사를 시행하면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반면 충분한 문진을 통해 가능성 높은 질환을 좁히면 필요한 검사만 선택할 수 있다.
연구진은 DxO가 기존 언어모델보다 높은 성능을 보인 영역 가운데 하나로 이런 병력 청취를 꼽았다.
특히 드문 노출이나 여행 관련 감염처럼 세부 병력이 진단에 중요한 사례에서 구조화된 질문 방식의 이점이 나타났다.
이는 의료 AI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AI가 의사보다 많은 검사를 주문하는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단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AI가 잘못 진단할 때는 어떤 오류가 발생했나
연구진은 단순한 정답률뿐 아니라 진단 오류의 유형도 분석했다.
DxO가 잘못된 진단을 내렸을 때는 완전히 무관한 질환을 선택하기보다 정답과 임상적으로 가까운 질환을 선택하거나, 진단의 구체성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반면 참여 의사들이 잘못 진단한 경우에는 참고 진단과 더 거리가 있는 질환을 선택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이러한 차이는 언어모델이 방대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과 관련될 수 있다.
연구진은 특히 드문 질환이나 전형적이지 않은 증상에서 언어모델의 강점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의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모든 희귀질환과 예외적인 증상에 관한 경험을 한 사람이 갖기는 어렵다.
반면 대규모 언어모델은 여러 분야의 방대한 의학 문헌을 학습했기 때문에 다양한 질환을 동시에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결과를 AI가 임상적으로 항상 더 안전한 오류를 범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임상적으로 비슷한 질환이라도 치료와 예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이번 평가는 진단명이 참고 진단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측정했지, 실제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시행했을 때 안전한지를 평가한 것은 아니다.
정확한 진단명과 안전한 진료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의사를 능가했다는 표현에 숨은 평가의 조건
이번 연구의 수치만 보면 AI가 인간 의사를 압도적으로 능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교 조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우선 의사들은 실제 환자를 대면한 것이 아니다.
텍스트로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동안 진단을 수행했다.
NEJM 사례의 경우 의사들은 자료 검색이 허용된 조건에서 평균 18.1분을 사용했다. 자료 검색이 제한된 조건에서는 평균 11.9분이었다.
이는 실제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여러 진료 기록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전문의에게 자문하는 과정과는 다르다.
또한 NEJM 사례는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복잡한 질환이 포함된 자료다.
일반적인 외래 진료에서 나타나는 질환 분포와 동일하지 않다.
건강한 환자나 별다른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증 사례도 평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사의 실제 역할은 진단명을 맞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에게 검사 목적을 설명하고, 검사에 따른 부담과 위험을 평가하며, 치료 선택지를 논의해야 한다.
진단 과정에서 환자의 감정과 사회적 상황, 경제적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는 이번 벤치마크에서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다.
연구진 역시 결과를 실제 임상에서 AI가 의사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특히 해당 분야의 전문의나 여러 전문과가 참여하는 협진팀과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번 연구의 올바른 해석은 제한된 평가 조건에서 AI 진단 시스템이 참여한 일반 진료 의사보다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 의료현장 전체에서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은 아니다.
의료 AI의 경쟁은 모델에서 진단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AI 산업 전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성능이 뛰어난 언어모델을 의료에 적용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진단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연구에서 DxO는 기존 언어모델을 단순한 프롬프트로 사용하는 방식보다 높은 성능을 보였다.
연구진은 여러 언어모델을 평가한 결과, DxO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일반적인 모델 사용 방식에 비해 NEJM 사례에서 평균 7.9%포인트, 응급실 사례에서 평균 4.4%포인트의 정확도 향상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는 모델의 지식뿐 아니라 모델이 어떤 절차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AI가 스스로 진단명을 바로 제시하도록 하는 대신, 가능한 질환을 정리하고 추가 질문을 선택하며 검사비용을 고려하도록 구성했다.
또한 여러 가설을 비교하고 서로의 판단을 검토하는 과정을 포함했다.
이러한 구조는 의료 AI를 하나의 모델에서 여러 역할이 조정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을 보여준다.
이는 기업용 AI 에이전트와도 유사하다.
기업에서 AI가 실제 업무를 수행하려면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업무를 여러 단계로 나누며, 비용과 위험을 고려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료 AI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높은 정확도의 모델 하나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어떤 정보를 요청할지와 어떤 행동을 허용할지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검사비용을 줄이는 AI는 의료경제를 바꿀 수 있을까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의미는 의료비용이다.
의료 AI의 성능은 일반적으로 정확도를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는 정확도만큼이나 비용이 중요하다.
검사는 환자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모든 검사가 동일한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검사는 비용을 높일 뿐 아니라 추가 검사나 시술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검사비용을 지나치게 줄이면 중요한 질환을 놓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의료 AI가 실제로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도와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DxO는 이러한 문제를 진단 과정에 직접 반영했다.
검사를 선택할 때 예상되는 진단적 가치와 비용을 비교하고,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판단하도록 설계했다.
연구 결과는 특정 비용 제약 아래에서 높은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의료기관과 보험자, 의료정책 담당자에게도 의미 있는 접근이다.
AI가 적절한 문진과 검사 선택을 지원해 불필요한 검사를 줄일 수 있다면 진료의 효율을 높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에서 사용한 비용은 실제 청구액이나 보험자가 지급한 금액이 아니다.
미국 의료기관의 표준 가격 자료를 기반으로 추정한 검사비용이다.
또한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검사로 인한 통증, 침습성, 실제 검사 가능 여부는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를 곧바로 실제 병원에서 진료비가 같은 비율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실제 비용 절감 효과는 임상 현장에서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Microsoft가 의료 AI에서 겨냥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번 논문의 저자들은 Microsoft 소속 연구진이다.
Microsoft AI의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을 비롯해 에릭 호비츠(Eric Horvitz) 등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연구는 외부 연구비 없이 Microsoft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저자들은 Microsoft의 직원이자 지분 보유자이며, 일부는 순차적 진단 평가 프레임워크와 관련된 미국 특허 출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연구 결과를 평가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Microsoft가 의료 AI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려 하는지 보여준다.
현재 AI 산업의 경쟁은 대규모 언어모델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데서 실제 산업별 업무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의료는 그중에서도 복잡한 분야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데이터가 불완전하며, 잘못된 판단이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의료 AI를 개발하려면 모델 성능뿐 아니라 정보 수집 절차와 검증 체계, 비용, 책임 구조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Microsoft의 DxO는 이 가운데 진단 과정의 구조화와 비용·정확도 최적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의료 AI가 단순한 진단명 추천을 넘어 실제 진단 업무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Microsoft가 이번 연구를 통해 실제 진료에서 자율적으로 진단을 확정하는 상용 서비스를 검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논문에서 제시한 것은 연구용 시스템과 벤치마크 결과다.
환자 대상 임상시험이나 실제 진료 성과에 대한 검증은 별도로 필요하다.
AI가 의사를 대신할 것인가, 의사의 판단을 강화할 것인가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AI가 의사의 진단 과정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DxO가 보여준 장점은 구조화된 정보 수집과 진단 가설의 반복적인 검토였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 의사도 수행한다.
다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시간과 업무량의 제약이 존재한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거나, 모든 검사에 대해 비용 대비 진단 가치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AI는 이러한 과정을 지원할 수 있다.
환자의 증상을 바탕으로 놓치기 쉬운 질문을 제안하고, 가능한 질환 목록을 정리하며, 추가 검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기존 진단 가설에 반대되는 가능성을 제시해 성급한 결론을 줄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판단에는 인간 의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환자의 실제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와 치료의 위험을 설명하며, 개인의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단순한 진단 정확도 평가로 대체할 수 없다.
이번 연구진도 AI가 인간의 임상적 전문성과 맥락적 판단을 보완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이는 의료 AI의 현실적인 발전 경로와 맞닿아 있다.
AI가 모든 진료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보다, 의사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AI가 진단을 잘한다는 것과 의료를 잘한다는 것은 다르다
이번 연구는 의료 AI의 발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요한 경계도 확인시켰다.
AI는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을 선택하고 검사를 요청하며 높은 정확도로 진단명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진료에는 더 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환자의 설명이 부정확할 수 있고, 검사 결과가 모호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필요하면 치료 방향을 수정한다.
동일한 질환이라도 환자의 나이와 기저질환, 생활환경,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할 검사와 치료가 달라질 수 있다.
AI가 병명을 정확히 예측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과정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환자의 안전은 정확도라는 하나의 지표로 평가하기 어렵다.
드문 질환을 놓치지 않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위험한 처치를 피하며 환자와 의사소통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번 연구가 평가한 것은 그중 진단을 위한 정보 수집과 판단의 일부다.
따라서 83.2%라는 수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지, 의료 AI가 의사를 대체할 준비를 마쳤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연구의 진정한 가치는 의료 AI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있다.
정답을 얼마나 잘 맞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떤 검사를 선택하는지, 비용을 얼마나 고려하는지, 언제 진단을 확정하는지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 AI의 다음 경쟁은 더 좋은 답이 아니라 더 좋은 진단 과정이다
이번 Science 논문은 의료 AI의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AI는 의학 시험에서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는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실제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만이 아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며, 비용과 위험을 고려해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Microsoft는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AI 진단 시스템으로 구성했다.
결과는 기존 언어모델을 직접 사용하는 방식보다 높은 성능으로 나타났다.
참여 의사들과의 비교에서도 제한된 평가 환경에서는 높은 진단 정확도를 보였고, 비용 제약을 적용했을 때 유리한 정확도·비용 조합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방향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어떤 방식이 실제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다.
AI가 더 많은 질환을 기억하고 더 빠르게 답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시점에 질문하고, 필요한 검사만 선택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존 판단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을 인간 의사가 검증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의료 AI의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다.
의사에게 놓치기 쉬운 질문을 제시하고, 드문 질환의 가능성을 검토하며,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는 진단 지원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통제된 벤치마크를 넘어 실제 환자와 의료기관에서의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그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 최종적인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는 분명하다.
AI가 의학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를 평가하던 시대에서, 그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진단 과정을 수행하는가를 평가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Microsoft가 AI에게 가르치려 한 것은 병명을 더 빨리 맞히는 법이 아니다. 병명을 확정하기 전에 무엇을 물어보고, 어떤 검사를 시행하며, 언제 판단을 수정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이다.
의료 AI의 미래는 정답 하나를 제시하는 능력보다, 그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의 정확성과 안전성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연구자료 및 출처
Nori, H., Daswani, M., Kelly, C., Lundberg, S., Ribeiro, M. T., Wilson, M., Liu, X., Sounderajah, V., Carlson, J. M., Lungren, M. P., Gross, B., Hames, P., Suleyman, M., King, D., & Horvitz, E. (2026). Sequential diagnosis with language models. Science, 394(6822). https://doi.org/10.1126/science.aeh7930
연구 발표: 2026년 10월 22일, Science.
연구진: Microsoft 소속 연구자 및 공동연구자.
연구 설계: NEJM 임상병리 사례 304개와 MIMIC-IV-ED 응급실 입원 사례 325개를 이용한 순차적 진단 벤치마크(SDBench) 개발 및 Diagnostic Orchestrator(DxO) 평가.
주요 결과: NEJM 사례에서 DxO 정확도 83.2%, 참여 의사 평균 36.1%. 응급실 사례에서 DxO 80.3%, 참여 의사 46.8%.
해석상 유의점: 통제된 텍스트 기반 평가로 실제 임상시험이나 환자 진료 성과를 검증한 연구는 아님. 검사비용 역시 실제 지출액이 아닌 미국 의료기관의 가격 자료를 이용한 추정치다.
연구 코드 및 자료: https://github.com/microsoft/sdbe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