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IL(에쓰오일)의 구도일이 거대해졌다.
주유소에서 우리를 반기던 귀엽고 친근한 캐릭터가 이번에는 도시보다 큰 존재가 되어 나타났다. 새벽녘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 위로 드리우고, 잠시 뒤 모습을 드러낸 구도일은 도심과 바다, 산업단지를 가로지른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반도체와 우주항공, 조선업이 놓여 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에 한 문장이 등장한다.
SHINING TOMORROW.

S-OIL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선보인 새로운 광고 캠페인이다. 지난 9월 15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광고에서 S-OIL은 “S-OIL 50주년, 이제 진짜 시작이야!”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도일을 전면에 내세웠다.
회사는 이를 통해 앞으로의 미래 에너지 50년과 준공을 앞둔 샤힌 프로젝트 이후의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처음 광고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구도일은 왜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기업에서 기획하는 것에는 그 무엇이든 이유와 근거가 있다. 광고 속 캐릭터의 크기 하나, 배경 하나, 카피 한 줄에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담긴다. 그렇다면 구도일을 도시보다 큰 존재로 만든 것에도 분명 기획자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면 창립 50주년 광고이니만큼 스케일을 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광고를 계속 보고 있으면 캐릭터의 크기보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구도일이 커진 것만큼이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져 있는 것이다.
과거 구도일이 소비자와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은 주유소였다. 자동차가 들어오고 기름을 넣은 뒤 다시 도로로 나가는 그곳에서 구도일은 정유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숙한 얼굴이었다.

2022년 10주년을 기념해 배포한 에쓰오일의 마스코트 캐릭터 '구도일' 보도자료 이미지(사진 = 에쓰오일)
하지만 이번 광고 속 구도일은 더 이상 주유소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를 지나고, 바다를 건너고, 산업단지를 바라본다. 그의 손에는 반도체와 우주항공, 조선 같은 대한민국의 첨단 제조업이 놓여 있다.
마치 S-OIL이 이제 주유소보다 더 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게 된다.
'왜 하필 지금일까'
그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S-OIL 한 기업의 광고를 넘어, 지금 정유산업 전체가 마주하고 있는 꽤 근본적인 변화와 만나게 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던 회사의 다음 50년
오랫동안 정유기업을 설명하는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원유를 들여오고, 정유공장에서 정제한 뒤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같은 석유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한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물류가 증가하면 연료 소비도 늘어나고, 정유기업도 그 흐름에 따라 성장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과 정유산업은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해왔다.
자동차에는 내연기관이 있었고, 내연기관에는 휘발유나 경유가 필요했다. 더 많은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린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오래된 성장 공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전기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는 2025년 하루 약 170만 배럴의 석유 소비를 대체했다. 2026년 《Global EV Outlook》은 현재 시행 중인 정책을 반영한 CPS(Current Policies Scenario)와 발표된 정책 방향까지 반영한 STEPS(Stated Policies Scenario) 모두에서 2030년 전기차가 대체하는 석유 소비가 하루 약 500만 배럴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차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변화인 동시에 정유산업 입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가장 안정적이었던 수요처 가운데 하나가 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고, 기업에는 탄소배출 감축과 탄소중립이 중요한 경영 과제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정유기업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전기차가 늘어나는 시대에도 정유회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조금 더 근본적으로 묻는다면 이렇다.
‘기름을 태워 에너지를 얻는 시대의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면, 정유기업은 앞으로 무엇을 파는 회사가 되어야 할까.’
물론 석유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항공과 해운, 물류와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계 경제가 상당 기간 석유에 의존할 가능성도 높다. 에너지 전환 역시 모든 산업에서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석유가 사라지는가’라는 질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석유를 어디에 사용해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IEA 역시 2030년으로 갈수록 세계 석유 수요의 증가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운송 부문에서는 전기차 등 대체 기술의 영향이 확대되는 반면 석유화학은 향후 석유 수요를 지탱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기업 입장에서는 석유를 활용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셈이다.
과거의 경쟁이 원유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휘발유와 경유로 바꿀 수 있는가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같은 원유와 산업 인프라에서 얼마나 다양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석유를 태우는 연료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을 만드는 원료로 바라보는 것이다.
전기차 시대에도 석유화학이 필요한 이유
바로 이 지점에서 석유화학의 의미가 커진다.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뀐다고 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가 점점 거대한 전자제품에 가까워질수록 경량화 소재와 절연 소재, 각종 필름과 고기능성 화학제품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반도체도, 우주항공과 조선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 역시 수많은 화학 원료와 소재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완제품만 바라볼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산업의 밸류체인을 밑으로 내려가 보면 석유화학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과 연결돼 있다. 타이어와 합성섬유, 세제와 포장재 같은 일상적인 제품에서부터 각종 산업용 플라스틱과 고기능 소재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 제품이 사용되는 영역은 넓다.

그렇게 보면 이번 광고에서 구도일의 손바닥 위에 놓인 반도체와 우주항공, 조선업의 의미도 조금 달라진다.
그렇다고 S-OIL이 반도체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첨단산업을 움직이는 밑단에도 에너지와 소재가 존재한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이것은 정유기업의 소비자 접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유회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장소는 주유소였다. 기업의 로고를 보고, 기름값을 확인하고, 자동차에 휘발유나 경유를 넣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유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어느 정유기업에서 시작됐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자동차의 소재로,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에 들어가는 화학 원료로, 항공기와 선박을 움직이는 연료로, 혹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산업재와 소비재의 원료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유기업의 존재감이 ‘주유기에서 산업의 밑단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S-OIL의 '샤힌 프로젝트'가 놓여 있다.
샤힌은 왜 ‘매’일까
‘샤힌(Shaheen)’이라는 이름부터 흥미롭다.
S-OIL은 샤힌을 아랍어로 ‘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송골매(Peregrine Falcon)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S-OIL의 최대주주가 사우디 아람코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중동의 문화적 배경을 떠올리게 된다.
S-OIL 역시 자사 콘텐츠에서 샤힌이라는 이름을 용맹하게 날아오르는 매의 이미지와 연결해 설명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이름을 사업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매는 땅에서만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다. 높이 날아올라 더 넓은 영역을 바라본다.'
정유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S-OIL이 석유화학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이름을 ‘샤힌’이라고 붙였다는 점에서,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지금의 사업 방향과 꽤 잘 어울리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것이 기존 정유사업이라는 땅을 버리고 떠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기반 위에서 더 넓은 산업과 더 높은 부가가치를 바라본다는 의미에 가깝다.
샤힌 프로젝트는 S-OIL이 약 9조2천억원을 투자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다. 핵심 설비 가운데 하나는 연간 18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춘 스팀 크래커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할 기술이 있다.
TC2C다.
TC2C는 ‘Thermal Crude-to-Chemicals’의 약자다. 쉽게 말하면 원유와 정유공정에서 나오는 저부가가치 유분을 기존보다 간소화된 분리·촉매 공정을 통해 나프타와 LPG 같은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료는 다시 스팀 크래커로 보내져 에틸렌과 프로필렌 같은 기초유분이 되고, 이후 폴리에틸렌을 비롯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수율이다. S-OIL에 따르면 TC2C는 기존 설비보다 석유화학 원료용 유분의 수율을 3~4배 높일 수 있다. 결국 같은 원유에서 휘발유와 경유 같은 연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부분을 석유화학 원료로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샤힌 프로젝트가 단순한 공장 증설이 아니라 ‘정유에서 화학으로’ 사업 구조를 넓히는 프로젝트로 평가되는 이유다.
샤힌 프로젝트 이후 S-OIL 전체 생산에서 석유화학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기존 12%에서 25%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S-OIL(에쓰오일) 측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TC2C라는 이름 자체가 꽤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Crude to Chemicals.
(원유에서 화학으로)
불과 세 단어 안에 정유기업의 사업구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압축돼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원유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휘발유와 경유 같은 연료로 전환하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같은 원료에서 얼마나 더 많은 석유화학 원료와 고부가 제품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샤힌 프로젝트는 단순히 거대한 공장 하나를 추가하는 투자라고만 보기 어렵다. S-OIL이 앞으로 어디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선택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걸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샤힌 프로젝트, TC2C와 같은 이야기를 일반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연히 S-OIL(에쓰오일) 직원들과 관련 있는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9조원이 넘는 투자 규모와 생산능력, 공정 효율, 원가 경쟁력, 석유화학 제품 비중 같은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는 숫자가 중요하고, 산업 관계자에게는 기술과 설비가 중요하다.
하지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TV 광고에서 스팀 크래커의 구조와 TC2C 공정도를 보여줄 수는 없다.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량을 그래프로 설명하기 시작한다면 광고라기보다 IR 자료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번역이다. 기업 전략의 언어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나는 이번 광고에서 구도일이 바로 그 번역자의 역할을 맡았다고 본다.
구도일은 익숙하지만 샤힌 프로젝트는 낯설다.
구도일은 쉽지만 석유화학은 어렵다.
구도일은 친근하지만 9조원이 넘게 투입되는 대규모 산업 설비는 거대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결국 S-OIL은 이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구도일을 키웠다. 친근함은 그대로 두고, 그가 움직이는 세계의 크기를 넓힌 것이다.
과거 구도일이 주유소라는 소비자 접점에 머물렀다면 이번 구도일은 도시와 바다,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존재가 됐다.
캐릭터의 몸집이 커진 만큼 기업이 설명하고 싶은 사업의 범위도 넓어진 셈이다.
샤힌이 날아오르면 내일이 빛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캠페인 슬로건인 ‘SHINING TOMORROW’도 흥미롭다. 에쓰오일 측은 준공을 앞둔 샤힌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이 슬로건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SHAHEEN과 SHINING.
소리도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광고 전체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언어유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샤힌이라는 이름에는 날아오르는 매가 있고, SHINING TOMORROW에는 그 매가 향하는 빛나는 미래가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미래 산업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거대한 구도일이 서 있다.
산업의 언어가 브랜드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이다.
기업 내부에서는 투자 규모와 생산량, 원가 경쟁력과 공정 효율로 설명되는 프로젝트가 소비자에게는 ‘날아오르는 매’와 ‘빛나는 내일’, 그리고 거대한 구도일이라는 이미지로 전달된다.
나는 이 지점이 이번 캠페인에서 가장 흥미롭다. 복잡한 기술을 억지로 쉽게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과 투자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하나의 이미지로 바꿨기 때문이다.
샤힌에는 비상이 있고, SHINING TOMORROW에는 빛이 있다. 그리고 거대해진 구도일의 손 위에는 미래 산업이 놓여 있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이미지가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정유회사는 앞으로 무슨 회사가 될까
물론 이 질문은 S-OIL만의 고민은 아니다. 에너지 산업 전체가 지금 복잡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기차가 빠르게 늘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고, 항공과 해운처럼 전동화가 쉽지 않은 산업에서는 기존 연료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수소와 암모니아, 바이오연료와 지속가능항공유(SAF), 폐플라스틱을 다시 원료로 사용하는 순환경제 기술 역시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이어질수록 미래의 에너지 기업은 과거처럼 하나의 제품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정유기업은 석유화학과 고부가 소재로 사업을 넓히고, 화학기업은 첨단 소재기업을 지향한다. 발전기업은 수소와 에너지 솔루션으로 영역을 확대한다. 자동차 회사조차 이제 자신을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산업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기업의 정체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많은 전통기업이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정유기업에는 특히 어려운 질문이다.
에너지 전환을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면 현재의 핵심 사업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기존 석유사업만 이야기한다면 미래 변화에 뒤처지는 기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의 전략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재 정유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석유화학과 고부가 소재로 사업을 넓히고, 동시에 저탄소 에너지와 새로운 연료 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결국 ‘석유냐 친환경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에 가깝다.
그래서 정유산업의 미래를 단순히 ‘탈석유’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 역시 조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샤힌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석유를 버리는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석유와 기존 정유 인프라에서 더 높은 가치를 끌어내려는 전략이다. 원유를 연료로 만들어 태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화학 원료와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해 산업 곳곳에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유기업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도 상당하다. 대규모 정유공장과 항만, 저장시설, 글로벌 원료 조달망과 물류망,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공정 운영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래 경쟁력은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을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게 어떻게 다시 연결하고 재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유기업에 던질 질문 역시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석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석유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업 인프라를 앞으로 어떤 가치 생산 플랫폼으로 바꿀 것인가.’
샤힌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 대해 S-OIL(에쓰오일)이 내놓은 하나의 답이라고 볼 수 있다.

광고가 미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경계도 있다.
광고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구도일이 아무리 거대해져도 실제 사업의 경쟁력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이미지는 오래가기 어렵다.
샤힌 프로젝트가 S-OIL의 수익구조를 얼마나 바꿀지,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할지는 실제 가동 이후 확인해야 한다.
석유화학 역시 성장만 약속된 산업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생산능력 확대와 공급과잉 우려, 경기 변동, 원료 가격과 환경 규제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TC2C 기술을 통해 석유화학 원료 수율을 3~4배 높이고, 전체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석유화학 비중을 크게 확대한다는 계획은 분명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이 실제 수익성과 경쟁우위로 연결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광고를 S-OIL의 미래 성공을 선언하는 광고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는 편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S-OIL이 앞으로 어떤 기업으로 인식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광고. 기업의 광고에는 지금의 모습뿐 아니라, 그 기업이 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모습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광고를 보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구도일은 왜 거대해졌을까'
아마 S-OIL이 말하고 싶은 자신의 세계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기업에서 산업에 에너지와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정유회사에서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저탄소 시대의 새로운 연료와 소재까지 고민해야 하는 기업으로.
물론 아직 그 변화가 완성됐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기업이 말하는 미래와 실제 기업의 미래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메우는 것은 광고가 아니라 결국 사업의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광고는 적어도 그 기업이 앞으로 어떤 회사로 기억되고 싶은지는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광고에서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도일의 크기보다 그가 품고 있는 세계다. 예전의 구도일이 주유소와 자동차 곁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반도체와 우주항공, 조선과 산업단지 한가운데 서 있다.
구도일이 커진 것이 아니라, S-OIL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사업 지도가 커진 셈이다.
지난 50년 동안 소비자가 S-OIL을 만나는 대표적인 접점이 주유소였다면, 앞으로 회사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그보다 훨씬 넓은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돼 있다.
샤힌이라는 매는 날아오르고, 그 위에는 ‘SHINING TOMORROW’라는 빛이 놓였다.
그렇게 보면 구도일의 거대화는 단순한 광고적 과장이 아니라, S-OIL이 스스로 그리고 있는 미래의 사업 지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에 가깝다.
그리고 이 질문은 비단 S-OIL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AI와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과 산업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오랫동안 하나의 산업 안에서 성장해온 기업들은 모두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지금까지 무엇을 잘해왔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이 될 것인가'
거대한 구도일을 보며 나는 오히려 그 질문을 떠올렸다. 50년 된 기업이 다음 50년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사업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자신을 설명해온 방식,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라는 정의 자체를 다시 쓰는 일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구도일은 거대해졌다. 아니, 어쩌면 구도일이 거대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품어야 할 미래가 그만큼 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