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한때 새로운 기회의 언어였다. 아이들은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공간에서 친구를 만나고, 게임을 하고, 공연을 보며, 현실에서는 쉽게 만들기 어려운 또 하나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기업은 이를 차세대 인터넷이라 불렀고, 교육계는 새로운 학습공간으로, 산업계는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들어간 공간에는 가장 먼저 범죄자도 들어왔다.
메타버스 안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범죄는 더 이상 가상의 문제가 아니다. 아바타를 예쁘게 꾸미고, 유료 아이템을 선물하고, 역할놀이를 제안하며 친밀감을 쌓은 뒤, 다른 메신저로 이동해 성적 대화를 유도하거나 신체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는 방식. 가상공간에서 시작된 접촉은 현실의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진다.
이혜진·신인수의 연구는 메타버스 내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왜 기존 제도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1990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국내 언론에 보도된 기사 가운데 관련성이 높은 122건을 추려 내용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메타버스 범죄의 중심에는 성범죄가 있었고,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는 아동·청소년의 특성, 플랫폼의 구조, 법률의 공백, 사업자와 수사기관의 대응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메타버스 범죄 보도의 중심에는 성범죄가 있었다
연구가 분석한 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메타버스’였지만, 그 뒤를 잇는 핵심어는 ‘성범죄’, ‘아바타’, ‘온라인’, ‘제페토’, ‘피해자’, ‘성희롱’, ‘성착취’였다.
이는 당시 메타버스 범죄 담론이 단순한 욕설이나 게임 사기 수준을 넘어 성적 착취와 그루밍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실제 분석 대상 기사 122건 가운데 다수는 아동·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발생한 성희롱, 아바타 성추행, 온라인 그루밍, 성착취물 제작 사건을 다뤘다.
보도량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급증했다. 2022년 4월에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만난 아동·청소년 11명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한 30대 남성의 구속 사건이 알려지며 관련 보도가 가장 많이 쏟아졌다. 전체 분석 기사 가운데 약 73%가 2022년에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메타버스 범죄가 갑자기 등장했다기보다, 기존의 온라인 성착취가 새로운 플랫폼 환경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언론을 통해 가시화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아바타를 또래 혹은 호감을 얻기 쉬운 모습으로 꾸몄고, 피해자들에게 유료 아이템을 선물하며 신뢰를 형성했다. 이후 역할놀이와 개인적 대화를 매개로 관계를 깊게 만든 뒤 성적 사진과 영상을 요구했다. 메타버스가 범죄 그 자체라기보다,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관계를 설계하는 새로운 통로로 이용된 셈이다.
범죄는 아바타에서 시작하지만, 피해는 현실의 아이에게 남는다
논문은 메타버스 내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를 성범죄, 사기, 협박·강요, 모욕, 개인정보 침해, 사이버 따돌림으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성범죄였다.
세부 유형은 매우 다양했다. 채팅과 음성통화를 이용한 성희롱, 아바타에 접근해 신체 접촉을 연상시키는 행위, 상대방의 아바타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는 스토킹, 유료 아이템을 미끼로 접근하는 온라인 그루밍, 신체 사진·영상 전송을 요구하는 성착취물 제작과 유포가 모두 포함됐다.
중요한 것은 이 범죄들이 서로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성희롱은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는 친밀감 형성으로 이어지며, 친밀감은 개인정보 요구와 외부 메신저 이동으로 확장된다. 이후 협박이나 강요가 등장하고, 결국 성착취물 제작과 유포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는 특히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아바타를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분신’ 혹은 ‘제2의 자아’로 인식하는 경향에 주목한다. 아바타가 성적 대상화되거나 괴롭힘을 당했을 때, 이용자는 그것을 단순한 화면 속 사건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현실의 신체 접촉은 없었더라도 수치심, 공포, 불안, 무력감은 현실의 감정으로 남는다.
가상공간의 행위가 실제 신체에 직접 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가볍게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몰입형 가상현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시각과 청각, 움직임, 공간감이 결합되며 피해 경험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의 취약성은 ‘디지털 미숙함’보다 관계의 구조에서 나온다
아동·청소년을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은 성인보다 새로운 플랫폼에 빨리 적응하고, 가상공간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랫폼 사용 능력이 곧 위험 대응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연구는 아동·청소년이 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그것이 범죄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부모에게 혼날까 봐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한다. 특히 계정, 팔로워, 유료 아이템, 희소한 디지털 상품이 또래 관계와 자기표현의 중요한 자산이 되는 환경에서는 범죄자의 접근이 더욱 쉽게 작동할 수 있다.
가해자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아이템을 줄게”, “친구하자”, “커플 사진을 찍자”, “역할놀이를 하자”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플랫폼 안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복적인 대화와 선물, 비밀 유지 요구, 외부 플랫폼 이동 제안이 이어질 때 이는 그루밍의 전형적 구조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는 낯선 사람과 쉽게 관계를 맺게 만들고, 아바타는 상대의 실제 나이·성별·의도를 감추는 장치가 된다. 아이들은 또래처럼 보이는 아바타와 대화하지만,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범죄자는 가상공간의 익명성과 역할 연기를 이용해 현실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피해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법은 현실의 신체를 전제로 만들었고, 범죄는 아바타를 활용했다
메타버스 범죄 대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는 법률의 공백이다.
현행 형사법은 상당 부분 현실 공간의 신체 접촉, 물리적 재산, 직접적 행위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따라서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성적 행위나 스토킹, 가상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은 실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과 별개로 처벌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연구는 이 문제를 단순히 “처벌을 더 세게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관련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와, 기술과 플랫폼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입법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산업 발전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견해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메타버스 범죄 대응은 ‘입법 대 비입법’의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다. 현실의 피해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면서도, 아바타와 게임·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범죄화하지 않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처럼 현실의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지는 행위는 기존 법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반면 아바타 간 행위와 가상공간의 표현을 다루는 문제는 피해의 실질, 반복성, 강제성, 관계의 비대칭성, 플랫폼 밖으로의 확장 여부 등을 세밀하게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요구된다.
플랫폼은 ‘접속 공간’이 아니라 안전의 책임 주체다
논문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다.
메타버스 사업자는 단순히 이용자들이 모이는 기술적 공간을 제공하는 주체가 아니다. 누가 들어올 수 있는지, 어떤 언어와 콘텐츠가 허용되는지, 신고가 들어오면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반복 가해자를 어떻게 차단하는지를 결정하는 운영자다.
하지만 연구가 분석한 기사에는 플랫폼 대응의 허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본인확인 절차가 느슨하고, 일회용 이메일을 이용한 재가입이 가능하며, 금칙어 필터링은 단어 사이에 숫자나 기호를 넣는 방식으로 쉽게 우회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고가 이뤄져도 처리 결과가 불투명하거나, 문제 이용자의 계정을 일시 차단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언급됐다.
아동·청소년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이라면 안전 기능은 사후 조치가 아니라 서비스 설계의 기본값이 돼야 한다. 연령에 따른 이용자 보호 장치, 위험 언어와 반복 접근의 탐지, 즉각적인 차단 기능, 신고 이후의 상담 연결, 수사기관과의 신속한 증거 보전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특히 성착취 정황이나 아동 대상 그루밍이 확인될 경우 플랫폼의 역할은 계정 정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범죄 가능성이 높은 행위를 탐지하고, 증거를 보존하며, 필요할 경우 수사기관과 연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플랫폼의 자율규제는 중요하지만, 아동 보호가 사업자의 자율적 선택에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연구가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수사는 플랫폼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메타버스 범죄는 수사기관에도 새로운 숙제를 던진다. 피해자는 국내에 있고, 가해자는 해외에 있으며, 플랫폼 서버는 제3국에 있을 수 있다. 계정은 여러 개로 바뀌고, 대화는 사라지며, 증거는 플랫폼 안팎의 메신저와 SNS에 흩어진다.
연구는 수사기관이 메타버스 플랫폼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단순히 디지털 포렌식 장비를 갖추는 것을 넘어, 메타버스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계가 형성되고, 어떤 언어와 행동이 그루밍의 신호가 되는지, 피해자가 어떤 이유로 신고를 망설이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사는 피해자에게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하는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피해자의 아바타 경험과 플랫폼 안의 관계 맥락을 이해해야 실제 피해의 규모와 범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국제 공조 역시 핵심 과제다. 초국적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국내 경찰과 사업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해외 수사기관과의 공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정보 요청 절차, 국제적 증거 보전 기준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메타버스 안전교육은 아이만의 숙제가 아니다
논문은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의 대상이 아이들만은 아니라고 본다. 부모, 교사, 수사기관, 플랫폼 운영자, 정책 담당자 역시 메타버스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단순히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위험 신호를 알려줘야 한다. 유료 아이템이나 기프티콘을 반복적으로 제안하는 사람, 비밀 대화를 요구하는 사람, 외부 메신저로 옮기자고 하는 사람, 사진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람, 거절했을 때 협박하거나 소문을 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해야 한다.
부모와 교사에게는 메타버스를 무조건 금지하거나 게임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가 실제로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이해해야 피해가 발생했을 때 비난보다 보호와 신고로 연결될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플랫폼을 잘 사용하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험한 관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경계를 설정하고, 피해를 말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아바타와 정체성도 존중하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메타버스의 미래는 기술 경쟁보다 보호 체계에서 갈린다
이 연구가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명확하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분리된 공간이 아니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 역시 가상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에게 메타버스는 미래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생활공간이다. 학교가 끝난 뒤 친구를 만나고, 자신을 표현하고, 놀이와 관계를 경험하는 장소다. 그렇다면 이 공간의 안전도 놀이터, 학교, 학원, 거리의 안전만큼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
메타버스 범죄 대응은 어느 한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은 안전 설계를 강화해야 하고, 수사기관은 전문성과 국제 공조 역량을 갖춰야 하며, 입법기관은 피해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정교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와 가정은 아이들이 피해를 숨기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현실을 닮아갈수록, 안전 역시 현실 수준으로 따라가야 한다.
아바타를 노린 범죄는 결국 그 아바타 뒤에 있는 아이를 노린다. 메타버스의 미래를 말하려면, 먼저 그 공간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