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록(Groq)–엔비디아, AI 추론 기술 라이선스 계약 체결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1-06 09:00:00
AI 인프라 경쟁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AI 반도체 기업 Groq와 NVIDIA가 AI 추론(inference) 기술에 대한 비독점(non-exclusive)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록은 2025년 12월 24일 이번 합의가 고성능·저비용 추론을 글로벌 규모로 확산시키기 위한 공동 목표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력은 인수·합병도, 전략적 종속도 아니다. 기술은 공유하되 기업의 독립성은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AI 인프라 시장에서 협력의 형태가 ‘소유’ 중심에서 ‘조합’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계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경쟁의 초점이 학습(training)이 아니라 추론(inference)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의 성능 경쟁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 기업과 개발자가 직면한 핵심 과제는 모델을 얼마나 싸고 빠르게 운영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학습은 일회성 비용에 가깝지만, 추론은 서비스가 유지되는 한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비용과 사용자 경험을 동시에 좌우한다.
그록은 이 지점에서 차별화된 접근을 취해왔다. 범용 GPU와 달리 추론 특화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복잡한 스케줄링보다 결정적 실행에 초점을 맞춰 낮은 지연(latency)과 높은 처리량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 강점이다. 엔비디아가 이 기술을 ‘흡수’가 아닌 ‘라이선스’ 방식으로 선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계약의 핵심 키워드는 비독점이다. 엔비디아는 그록의 추론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그록은 특정 파트너에 묶이지 않는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자체 GPU 생태계를 유지하면서도 추론 병목을 완화할 수 있는 기술적 선택지를 확보하게 된다. 반대로 그록은 독립성을 지키면서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기술 확산 경로를 얻는다.
이는 단일 하드웨어나 단일 클라우드에 종속되는 인수 모델과는 다르다. AI 인프라가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기보다, 워크로드별 최적화 조합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사람의 이동 역시 이번 협력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Jonathan Ross와 Sunny Madra 등 그록의 핵심 인력은 엔비디아에 합류해 라이선스된 기술의 고도화와 대규모 확장을 지원한다. 이는 단순한 코드 이전이 아니라, 아키텍처 철학과 추론 최적화 노하우를 엔비디아 플랫폼 안으로 이식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그록은 Simon Edwards를 CEO로 선임하며 회사 운영의 연속성과 독립 노선을 분명히 했다. 특히 GroqCloud 서비스가 중단 없이 유지된다는 점은 기존 고객과 개발자 생태계에 대한 신뢰를 지키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번 사례는 AI 인프라 협력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 반도체·플랫폼 경쟁은 인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AI 인프라 영역에서는 기술 주기가 짧고 워크로드 변화가 빠르며 단일 아키텍처로 모든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비독점 라이선스와 인력 결합형 협력은 리스크를 낮추고 속도를 높이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추론 병목이 더 이상 일부 빅테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엔터프라이즈 AI,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 실시간 응답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에서 추론 비용과 지연은 곧 사업성의 문제다. 그록의 추론 특화 기술과 엔비디아의 광범위한 플랫폼 결합은 업계 전반이 직면한 이 병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협력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를 던진다. AI 인프라 경쟁의 승부는 누가 가장 큰 모델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인수도, 독점도 아닌 선택적 결합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추론이 병목으로 남아 있는 한, 이런 협력 모델은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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