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전이 드러낸 자율주행의 진짜 시험대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1-06 11:00:00

정전이 시험한 자율주행의 한계
웨이모, “안전 최우선 설계가 대도시 위기 상황에선 병목이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자율주행 기술의 진짜 시험대를 드러냈다. 문제는 사고나 센서 오류가 아니었다. 전력·신호·교통 질서라는 도시 인프라 자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이 과연 사회적 행위자로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자율주행 기업 Waymo는 2025년 12월 23일, 당시의 운영 경험과 개선 계획을 공개하며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했다.

사태는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새벽(현지시각) 시작됐다. 전력망 운영사 Pacific Gas and Electric(PG&E)의 광범위한 장애로 샌프란시스코 전체의 약 3분의 1 지역이 정전에 들어갔고, 수천 개 교차로의 신호등이 동시에 꺼졌다. 도시는 순식간에 ‘신호 없는 공간’으로 변했고, 경찰이 직접 교차로에 배치돼 교통을 통제해야 할 정도로 혼란이 커졌다. San Francisco Department of Emergency Management는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권고하며 도시가 사실상 비상 대응 체제로 전환됐음을 알렸다.

이 환경은 자율주행 차량에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다. 신호 체계와 통신 인프라, 그리고 다른 운전자들이 따를 것이라는 암묵적 질서가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 ‘웨이모 드라이버’는 암전된 교차로를 교통법규에 따라 사거리 정지(4-way stop)로 인식하도록 설계돼 있다. 개별 상황만 놓고 보면 안전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규모였다. 웨이모는 정전 당일 7,000개가 넘는 암전 교차로를 통과했다. 초기 상용화 단계에서 안전성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된 ‘확인 요청(confirmation check)’ 절차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유효했지만 도시 전반이 동일한 상태에 빠지자 누적 지연을 만들었다. 그 결과 차량의 판단 속도가 느려졌고, 이미 혼잡한 교통 흐름에 추가적인 병목을 발생시켰다. 안전을 위해 만든 장치가 대도시 위기 상황에서는 시스템적 비효율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웨이모가 이번 사안을 공개하며 강조한 핵심은 기술의 성숙 단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웨이모는 “과도한 신중함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는 내부 판단을 드러냈다. 이는 안전 기준을 낮추겠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 인식의 차원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개별 교차로의 상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집단적 비정상 상태’에 들어갔음을 시스템이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이에 따라 웨이모는 지역 단위 정전 정보를 차량에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암전 상황이 예외가 아닌 지속적 조건일 경우 보다 결단력 있는 주행 판단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이는 규칙 기반 대응에서 맥락 기반 판단으로 자율주행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전이 장기화되자 웨이모는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차량은 도로 가장자리에 안전하게 정차한 뒤 순차적으로 차고지로 복귀했다. 웨이모는 이 조치가 구급차와 소방차 등 긴급 차량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자율주행 서비스가 공공 인프라의 일부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번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자율주행 기술의 평가 기준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평상시 주행 성능이나 사고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프라 붕괴, 재난, 혼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핵심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웨이모가 강조해온 1억 마일 이상의 완전자율주행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고장 난 도시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웨이모는 이번 경험을 “더 신뢰받는 운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자율주행이 실험 단계를 넘어 공공 시스템의 일부로 검증받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자율주행의 성패는 더 이상 도로가 완벽할 때가 아니라, 도시가 고장 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정전은 그 변곡점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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