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 TV 드라마는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3-19 09:00:00
저자:
Tamar Liebes(미디어 수용 연구 분야의 대표적 학자)
Elihu Katz(Uses and Gratifications 이론의 핵심 학자)
현대 미디어 연구에서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많은 연구는 오랫동안 미디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Tamar Liebes와 Elihu Katz의 논문 「Patterns of Involvement in Television Fiction」은 미디어 효과가 단순히 콘텐츠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해석 방식이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대표적인 미디어 수용 연구로 평가된다.
이 논문은 미디어 연구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Elihu Katz가 참여한 연구라는 점에서도 학문적 의미가 크다. Katz는 이용과 충족 이론(Uses and Gratifications), 두 단계 흐름 이론(Two-Step Flow), 미디어 이벤트(Media Events) 이론 등을 발전시킨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핵심 학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행된 이 연구는 단순한 드라마 분석을 넘어, 글로벌 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연구가 진행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이 시기는 미디어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였다. 위성 방송이 확산되면서 텔레비전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유통되기 시작했고, 미국 드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시청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 드라마 「Dallas」였다. 이 드라마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동, 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방영되며 최초의 글로벌 TV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에 주목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같은 미국 드라마를 시청할 때 과연 동일하게 이해하는가라는 질문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즉 콘텐츠 자체보다 시청자의 해석 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독특한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드라마를 시청한 뒤 시청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분석하는 포커스 그룹 토론 방식이었다. 연구진은 소규모 그룹을 구성해 드라마 「Dallas」를 함께 시청하게 한 뒤,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했다. 이후 이 대화를 녹음하고 분석해 사람들이 드라마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파악했다. 총 50개 그룹의 토론이 분석됐으며, 연구 대상에는 미국 시청자, 이스라엘 키부츠 주민, 러시아 이민자, 모로코계 유대인, 이스라엘 아랍인 등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집단이 포함됐다.
연구 결과,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해석할 때 네 가지 주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첫 번째는 프레임(Frame)이다. 이는 드라마를 현실 이야기로 이해하는지, 혹은 하나의 작품으로 분석하는지에 대한 차이를 의미한다.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사건을 실제 현실과 연결해 이야기했으며, 다른 시청자들은 장르나 제작 방식 같은 작품적 요소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현실과 연결해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는 키잉(Keying)이다. 이는 드라마를 현실적으로 해석하는지, 아니면 상상적 놀이처럼 받아들이는지를 의미한다. 어떤 시청자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현실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며 토론했고, 다른 시청자는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상상적 해석을 시도했다. 특히 미국 시청자들에게서 이러한 놀이형 해석이 자주 나타났다.
세 번째는 레퍼런트(Referent)이다. 이는 시청자가 드라마 속 상황을 누구와 연결해 해석하는지를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나 집단과 연결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은 원래 저렇다”와 같은 일반적인 인간 행동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해석했다.
네 번째는 가치 지향(Value Orientation)이다. 이는 드라마 속 행동을 단순히 설명하는지, 아니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지를 의미한다. 일부 시청자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다른 시청자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평가하며 강한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 연구 결과 이러한 도덕적 판단은 특정 문화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몰입 방식의 차이였다. 연구진의 예상과 달리 가장 강하게 드라마에 몰입한 집단은 이스라엘 아랍 시청자였다. 이들은 드라마 속 상황을 현실 문제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회적 가치 기준을 적용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평가했다. 반면 미국 시청자들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고 드라마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드라마를 장르적 특성이나 연출 방식 등 작품의 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하거나 농담처럼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결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적 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사회일수록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며, 전통적 사회에서는 콘텐츠를 현실 문제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1980년대 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던 문화 제국주의 논쟁과도 연결된다. 당시 많은 연구자들은 미국 TV 콘텐츠가 세계 문화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Liebes와 Katz의 연구는 다른 결론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각자의 문화와 가치관을 통해 이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이후 미디어 수용 연구와 문화 연구, 글로벌 미디어 연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디어 메시지는 해석된다”는 관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연구로 평가된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콘텐츠 자체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의미는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유튜브, 틱톡, SNS, 그리고 생성형 AI 콘텐츠까지 포함하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 질문은 여전히 동일하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콘텐츠가 증가하는 환경에서는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현실처럼 받아들여지는지, 알고리즘 추천이 콘텐츠 해석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문화적 배경에 따라 AI 콘텐츠 해석 방식이 달라지는지 같은 문제들이 새로운 연구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논문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콘텐츠 자체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해석 방식은 문화와 가치관, 사회적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1980년대 미국 드라마 「Dallas」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오늘날 새로운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이 AI가 만든 콘텐츠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어쩌면 미래의 미디어 연구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과 AI 콘텐츠 사이의 해석 관계를 중심으로 다시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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