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일본 iOS를 바꾼 이유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5-12-29 11:00:13
규제 대응 속 플랫폼 주도권 유지
[메타X(MetaX)] 애플이 일본 시장에서 iOS 운영 원칙을 수정한 이유는 단순한 규제 순응이 아니다. 겉으로는 일본의 모바일 소프트웨어 경쟁법(MSCA)에 따른 제도 대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통제 구조의 재설계에 가깝다. 애플은 대체 앱마켓과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보안·승인·책임 체계를 도입하며 통제의 중심축을 옮겼다.
이번 조치는 애플이 더 이상 “모두 차단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규제 환경을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대신 애플은 “허용하되 조건을 세분화한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즉, 문은 열었지만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한 기준과 책임은 더 촘촘해졌다.
겉으로 보기에 애플은 오랫동안 고수해온 원칙을 내려놓은 듯 보인다. 대체 앱마켓 허용, 외부 결제 승인, 앱스토어 외 배포는 모두 애플이 수년간 방어해온 핵심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번 변화는 독점의 포기가 아니라 독점 방식의 전환에 가깝다. 애플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하지만, 애플이 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증(Notarization), 앱마켓 운영 승인, 강화된 아동·청소년 보호 요건은 모두 새로운 형태의 관문이다. 과거에는 앱스토어 하나가 유일한 관문이었다면, 이제는 다층적이고 분산된 관문 구조로 바뀌었다. 통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뀌었다.
개발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도 마찬가지다. 외부 결제나 대체 앱마켓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생겼지만, 그 선택은 곧 책임의 이전을 의미한다. 결제 사고, 환불 분쟁, 소비자 보호, 미성년자 결제 문제에 대한 법적·운영상 책임은 더 이상 애플이 대신 떠안지 않는다. 과거에는 애플 인앱결제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일정 부분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그 보호막은 사라진다. 이는 “애플을 벗어날 자유를 주되, 애플이 지고 있던 책임도 함께 넘긴다”는 구조다. 대형 글로벌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중소 개발자에게는 선택 자체가 부담이 될 가능성도 크다.
애플이 이번 발표에서 유독 강조한 미성년자 보호 역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윤리적 메시지를 넘어, 규제 당국을 향한 방어 논리다. 애플은 경쟁을 허용하되,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업계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이 논리는 향후 일본을 넘어 EU나 미국에서 유사한 규제 압박이 등장했을 때 그대로 활용 가능한 표준 대응 모델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단순한 예외 시장이 아니라 실험장이 됐다. 애플은 일본을 통해 어디까지 허용해야 규제가 멈추는지, 어떤 안전장치를 붙여야 정치적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개발자와 이용자의 반응이 어떻게 갈리는지를 실증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일본의 iOS는 이제 하나의 운영체제가 아니라, 정책 실험용 iOS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애플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애플은 플랫폼 권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중앙집권적 통제에서, 현재의 조건부 개방과 규칙 설계로, 그리고 앞으로는 국가별로 다른 iOS 운영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애플은 더 이상 하나의 규칙으로 전 세계를 관리하지 않는다. 대신 법과 문화, 정치 환경에 맞춰 플랫폼을 조정하는 능력 자체를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일본 iOS 변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개발자에게는 기회이자 시험대이며, 애플에게는 규제를 견디는 방식이 한 단계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모델이 일본에만 머무를지, 아니면 iOS의 새로운 표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하나다. 애플은 개방을 선택했지만, 주도권은 내려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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