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게임을 평가한다?... '경험' 없는 리뷰의 등장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3-30 09:00:00
2026년 3월, 'Resident Evil Requiem'의 리뷰 하나가 메타크리틱에 짧게 등록됐다가 사라졌다. 해당 리뷰를 쓴 것은 영국 게임 미디어 Videogamer였고, 작성자로 표기된 이름은 "Brian Merrygold"였다. 그런데 독자들이 이 이름을 검색했을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온라인 이력도, 과거 기사도, 실존의 흔적도 없었다. Gfinity의 기자 Andrés Aquino가 X에 처음 이를 지적했고, 이후 Kotaku, Engadget, PC Gamer 등 다수의 매체가 독립적으로 추가 확인에 나섰다.
Videogamer에 올라온 그의 프로필 사진 파일명은 "ChatGPT-Image-Oct-20-2025-11_57_34-AM-300×300.png"였고, 프로필 소개에서는 그를 'iGaming 및 스포츠 베팅 분야의 숙련된 애널리스트', 즉 도박 사이트 전문가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후 프로필 사진의 파일명과 소개글은 수정됐지만, 이미 다수의 매체가 원본을 확인하고 보도한 뒤였다.
리뷰 본문을 보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Resident Evil Requiem'에 9점을 부여한 이 글은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실제 플레이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묘사는 거의 없었다. 트레일러나 개발사 공개 자료만으로도 쓸 수 있는 내용이었다. 독자들은 이 리뷰가 "AI 냄새가 난다"고 표현했고, 조사 결과 Videogamer에는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짜 바이라인이 여러 개 더 존재하고 있었다. "Shooter Orson", "Steven Danielson" 등 다른 필명들도 모두 2025년 10월에 생성된 X 계정을 가지고 있었고, 프로필 사진은 마찬가지로 AI 생성 이미지였다.
배경에는 소유권 변경이 있었다. Videogamer는 2025년 8월 갬블링 SEO 에이전시, 'Clickout Media'에 인수됐고, 2026년 2월에는 기존 편집팀이 전원 해고됐다. 그 직후부터 AI 생성 콘텐츠가 게임 섹션을 채우기 시작했다. 메타크리틱은 사태를 인지한 직후 해당 리뷰를 포함한 Videogamer의 2026년 리뷰 전체를 삭제했고, 공동창업자 Marc Doyle는 "메타크리틱은 AI가 작성한 평론을 허용하지 않으며, 위반 시 해당 매체와 즉시 관계를 끊겠"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건 자체는 빠르게 수습됐다. 그러나 이 소동이 남긴 질문은 생각보다 크고 불편하다.
AI는 게임을 평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리뷰의 무엇을 신뢰해왔는가.
게임 평론이란 무엇인가
게임 리뷰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구조를 갖는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분석하고, 점수나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 세 단계는 순서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맞물려 있다. 플레이 경험이 분석의 근거가 되고, 그 분석이 있어야만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경험이 없으면 분석은 추론이 되고, 추론 위에 얹힌 평가는 의견이 아니라 인상에 가까워진다.
평론가의 신뢰는 텍스트 바깥에서 먼저 만들어진다. 독자는 리뷰를 읽기 전에 이미 몇 가지를 확인한다. 누가 썼는가, 그 사람이 어떤 게임을 얼마나 다뤄왔는가, 어떤 매체 소속인가. 편집부의 검수를 거쳤는가도 암묵적으로 신뢰의 일부가 된다. 즉, 리뷰에 대한 신뢰는 단순히 글이 잘 쓰여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글 뒤에 실재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경험이 있느냐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산업적으로 중요해지는 지점이 바로 메타크리틱 같은 리뷰 집계 플랫폼이다. 메타크리틱은 공신력 있는 매체의 리뷰를 모아 수치화한 점수를 산출하고, 이 점수는 단순한 참고 지표를 넘어 게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는 구매 결정을 내릴 때 이 점수를 참조하고, 일부 퍼블리셔와 개발사의 계약에는 메타크리틱 점수가 인센티브 조건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리뷰 하나가 숫자 하나가 되고, 그 숫자가 실질적인 이해관계로 연결되는 구조다.
결국 게임 리뷰는 텍스트가 아니라 경험을 통과한 판단이다. 잘 쓰인 문장이 리뷰를 리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뒷받침하는 경험과 책임 있는 주체가 리뷰를 리뷰로 만든다. 이 정의는 당연하게 여겨져 왔지만, AI 리뷰의 등장은 이것이 사실 당연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AI 리뷰의 등장
Brian Merrygold의 'Resident Evil Requiem'리뷰는 형식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게임의 세계관을 언급했고, 캡콤의 역사적 맥락을 짚었으며, 호러 장르의 미덕을 이야기했다. 문장은 유창했고, 구조도 갖춰져 있었다. 나쁜 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AI가 리뷰를 생성하는 방식은 크게 복잡하지 않다. 공개된 트레일러, 개발사의 공식 보도자료, 게임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인터넷에 이미 쌓여 있는 무수한 리뷰들의 언어 패턴을 조합하면 리뷰처럼 보이는 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장르의 관습적 표현을 알고, 평가의 구조를 모방하고, 적당한 톤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의 생성형 AI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과물은 그럴듯하고, 때로는 인간이 쓴 평범한 리뷰보다 더 매끄럽게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텍스트 안에는 없는 것이 있다. 컨트롤러를 쥐고 느꼈던 긴장감, 특정 구간에서 반복해서 죽으며 발견한 패턴, 처음 보스를 쓰러뜨렸을 때의 감각 등 게임이라는 매체가 전달하려는 것의 상당 부분은 화면 밖에서 벌어진다. 플레이어의 몸과 시간을 통과한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포착되는 것들이다. AI의 리뷰는 그 경험이 없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발생하지 않은 경험을 언어로 흉내 낸 텍스트, 근거 없이 구조만 갖춘 판단이다.
이것이 단순한 품질 문제가 아닌 이유는, 품질만 따지면 AI 리뷰가 통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Brian Merrygold의 리뷰는 독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메타크리틱의 집계 시스템을 통과했다. 문장이 어색하거나 정보가 틀려서 걸린 것이 아니었다. 파일명에 "ChatGPT"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작성자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발각됐다. 글 자체가 아니라 그 바깥의 실수가 단서였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 리뷰 시스템이 어디에 취약한지를 정확히 가리킨다.
피해의 층위
AI 리뷰가 메타크리틱에 등록됐다는 사실이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가짜 글이 올라왔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시스템에 연결된 이해관계가 생각보다 실질적이고, 피해의 층위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개발사에게 돌아간다. 메타크리틱 점수는 게임 산업에서 오랫동안 계약의 언어로 사용돼 왔다.
2012년, Obsidian Entertainment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hris Avellone은 'Fallout: New Vegas'의 계약 구조를 공개했다. 퍼블리셔 Bethesda와의 계약에는 메타크리틱 85점 이상을 달성할 경우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게임은 84점으로 마감됐다. 단 1점 차이로 Obsidian은 보너스를 받지 못했고, 그 직후 대규모 해고와 프로젝트 취소가 이어졌다. 이 사례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메타크리틱 점수를 인센티브 조건으로 명시하는 계약은 업계에서 드물지 않은 관행이었다. 이 구조 안에서 리뷰 하나의 점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와 스튜디오의 생존에 직접 닿아 있다.
독자와 소비자 입장에서의 피해는 더 조용하게, 그러나 더 넓게 퍼진다. 게임 리뷰를 참고해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 글 뒤에 실제 플레이 경험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독자는 신뢰를 가장한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린 셈이 된다. 문제는 AI 리뷰가 나쁜 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Brian Merrygold의 리뷰가 발각된 것은 글의 품질 때문이 아니었다. 작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실수로 남겨진 파일명이 단서가 됐다. 글 자체만 보면 의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플랫폼 차원의 문제는 구조적이다. 메타크리틱은 매체 단위로 신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 번 인증된 매체의 리뷰는 별도의 글 단위 검증 없이 집계된다. Videogamer는 20년 이상 운영된 매체였고, 그 신뢰를 담보로 AI 리뷰가 시스템을 통과했다. 메타크리틱 공동창업자 Marc Doyle가 "매체가 매각되거나 편집진이 교체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은, 현재의 검증 구조가 매체의 이름을 확인할 뿐 그 안의 사람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불편한 지점이 나온다. 이 방식은 악용하기 쉽다. 비용은 낮고, 적발은 어렵고, 이해관계는 크다. 이번에는 파일명이라는 실수 때문에 발각됐지만, 그 실수가 없었다면 리뷰는 그대로 집계됐을 것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균열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Videogamer의 AI 리뷰 사태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디지털 환경에서 게임 평론의 신뢰 기반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AI 리뷰는 그 균열이 새로운 형태로 표면화된 것에 가깝다.
선행 사례들은 적지 않다. 리뷰 봄베이딩(특정 게임에 대해 조직적으로 낮은 점수를 대량 투하하는 행위)은 게임과 무관한 이유로 점수를 조직적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수년째 반복돼 왔다. 'The Last of Us Part II', 'Horizon Forbidden West', 최근 'Marathon'에 이르기까지, 유저 리뷰 섹션은 집단적 감정 표출의 공간으로 변질되는 일이 잦았다.
협찬 미공개 리뷰와 퍼블리셔와의 유착 의혹도 주기적으로 불거졌다. 검증되지 않은 소규모 매체가 메타크리틱에 이름을 올리는 구조도 이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리뷰 시스템의 신뢰는 선언된 것이었지,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그 위에 AI가 등장했다. 이번 사건이 이전의 문제들과 다른 점은, AI가 평론의 형식 자체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리뷰 봄베이딩은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협찬 문제는 관계를 추적하면 포착된다. 그러나 AI가 생성한 리뷰는 의도가 보이지 않고, 관계도 없으며, 글만 보면 구별하기 어렵다. 평론의 권위가 기대온 요소들(필자의 이름, 이력, 소속 매체, 편집부 검수 등)이 모두 위조 가능한 레이어가 됐다.
이것은 게임 평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창작 영역을 넘어 평론의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것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판단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진입이 이번처럼 조용하고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리뷰 플랫폼은 앞으로 신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는다. 매체 이름이 아니라 사람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글의 형식이 아니라 경험의 흔적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경험은 복제되지 않는다
Brian Merrygold가 실존 인물인지는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온라인 이력도, 게임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흔적도 없었고, 그의 프로필 사진은 AI가 생성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가 쓴 리뷰는 실재했고, 한동안 메타크리틱의 점수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사건은 빠르게 수습됐고, 메타크리틱의 리뷰는 삭제됐으며, Videogamer는 메타크리틱에서 퇴출됐다. 깔끔한 마무리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이 드러낸 것은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AI는 리뷰의 형식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 장르의 언어를 알고, 평가의 구조를 모방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AI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리뷰를 리뷰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그것은 경험이다. 컨트롤러를 쥐고 보낸 시간, 특정 구간에서 반복해서 실패하며 쌓인 감각, 게임이 끝난 뒤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잔상, 이런 것들은 공개된 자료를 아무리 많이 학습해도 생성되지 않는다. 경험은 요약될 수 있어도, 복제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결론이 너무 쉽게 안도감을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할 것은 "AI가 경험 없이 리뷰를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까지 리뷰를 읽으면서 정말로 경험을 신뢰해왔는가"다. 유명한 필자의 이름이 있다고 해서, 매체 로고가 붙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 뒤에 실제 플레이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 믿음이 구조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었다. Brian Merrygold 사건은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전제 위에 서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평론의 신뢰는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증명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건이 게임 산업에, 그리고 평론이라는 행위 자체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Brian Merrygold가 실존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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