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 챗봇을 닮아가는 인류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6-05-13 09:00:00
기술봉건주의와 디지털 농노의 탄생
[메타X(MetaX)]정혜욱의 논문 「특이점의 도래와 위태로운 삶: AI, 무의식, 간극의 주체」(2025)는 AI가 인간의 사고와 언어, 욕망의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주체는 어떻게 위태로운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기술자유주의와 기술봉건주의라는 새로운 권력 구조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결여'를 상실하고 기계적 효율성을 좇는 '챗봇'으로 변모해가는 현상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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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점의 도래와 위태로운 삶: AI, 무의식, 간극의 주체 정혜욱,2025 - |
신자유주의에서 기술자유주의로: 인간은 이제 자신을 최적화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인간에게 “너 자신을 하나의 기업처럼 관리하라”고 요구했다면, 기술자유주의는 인간에게 노동력과 경력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인지, 감정, 시간, 집중력까지 기술을 통해 최적화해야 할것을 요구한다.. 스마트워치로 수면을 관리하고, 앱으로 감정을 추적하고, AI로 생산성을 높이며,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루틴에 따라 자신을 계속 개선해야 한다. 이때 기술은 인간에게 “더 효율적인 존재가 되라”고 명령하는 체제의 일부가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쉽게 지치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뒤처진다는 감각에 시달린다. 보통 이런 문제는 “자기관리 부족”이나 “멘탈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논문은 이러한 증상을 기술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하는 압박이 몸과 마음에 새겨진 흔적으로 읽는다. 다시 말해 증상은 실패가 아니라, 체제의 모순이 인간에게 새겨진 흔적이라는 것이다.
기술봉건주의와 디지털 농노의 탄생
논문은 플랫폼 자본주의를 넘어 기술봉건주의의 문제까지 암시한다. 플랫폼은 시장 참여자를 넘어 시장 자체를 소유하고 통제하고 있다. 전통적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시장 안에서 경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플랫폼 기업은 사람들이 거래하고, 말하고, 일하고, 자신을 보여주는 디지털 공간 자체를 장악한다. 이 공간은 일종의 디지털 토지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살아가지만, 그 토지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작성자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보다, 기술을 소유하고 설계하고 규칙을 정하는 권력 구조에 주목한다. 그래서 AI 시대의 불평등은 단순한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가 아니라, 소유와 통제의 문제다. 많은 논의가 “AI를 잘 활용해야 살아남는다”는 식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런 말은 겉으로는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를 개인 역량의 문제로 축소한다. 하지만 논문은 AI 시대의 위태로운 삶은 개인이 게으르거나 시대에 뒤처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플랫폼과 알고리즘을 소유한 자들이 인간 활동의 조건 자체를 재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생성형 AI와 무의식의 외부화: 책임 없는 무의식의 출현
생성형 AI는 인간의 언어 패턴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하고 변형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작동한다. 지젝에 따르면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는 주체의 무의식을 외부화(externalization)하며, 이 과정에서 '책임 없는 무의식'이 출현한다. 주체는 AI 시스템에 판단과 소통을 대리시킴으로써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AI가 한 것"이라는 식의 책임 회피가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주체의 실존적 개입과 도덕적 책임은 증발하고,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결여된 기계적 판단의 권위만이 강화되는 위기를 맞이한다.
챗봇을 닮아가는 인간과 '성(性)'적 간극의 소거
AI의 진짜 위협은 기계가 인간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챗봇처럼 변해가는 것'에 있다. 인간은 본래 갈등, 모순,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불가능성'을 통해 주체로 형성된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기계적 효율성과 최적화된 응답으로 대체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구성하는 근본 모순을 제거하려 한다. 인간이 자신의 결핍과 간극을 상실한 채 시스템이 제공하는 매끄러운 흐름에 순응할 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던 실존적 고뇌와 주체적 자리는 소거되고 만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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