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기술은 우상을 만드나?: ‘교황청 AI 문서’를 중심으로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6-05-21 09:00:00

바벨탑은 인간이 기술적 수단을 통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의 형상
AI는 인간의“내가 만든 것으로 나를 초월하고 싶다”는 욕망의 최신 형태
더 깊게 보면 그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숭배

[메타X(MetaX)]김지연의 논문 「기술은 우상을 만드나?: ‘교황청 AI 문서’를 중심으로」는  AI 윤리 담론의 범위를 넓히는 과학기술학적 시도에 가깝다.  저자는 인간은 왜 자신이 만든 기술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는가. 왜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것을 더 큰 권위처럼 대하는가. 그리고 종교는 이 문제를 낡은 도덕주의가 아니라, 기술문명을 다시 해석하는 중요한 지적 자원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 논문은 2025년 로마 교황청이 발표한 「선조의 것과 새것: 인공지능과 인간지능 사이 관계에 관한 공지」를 중심에 놓고, AI와 인간지능, 영혼, 우상 숭배의 문제를 연결한다. 저자는 이 문서를 교황청의 신앙적 선언으로만 읽지 않고, AI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성, 시간성, 보이지 않는 실재의 문제를 복원하는 계기로 읽는다.

.

기술은 우상을 만드나?:‘교황청 AI 문서’를 중심으로†

김지연, 2026

.

AI 시대에 종교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
 흔히 종교는 비합리, 과학은 합리라는 이분법 안에서 다루어진다. 하지만 저자는 이 구도를 의심한다. 근대세계는 과학을 “완전한 진실”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종교를 낡은 믿음으로 밀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빈곤해졌다고 본다. 합리적으로 검증 가능한 것만 실재로 인정하면, 인간이 실제로 영향을 받는 많은 것들, 예컨대 신앙, 애착, 상상력, 두려움, 경외감, 윤리적 책임 같은 차원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저자가 끌어오는 핵심 개념은 “보이지 않는 실재”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 강력한 효과를 남기는 것들과 관계 맺어온 오랜 전통이다. 신, 영혼, 구원, 죄책, 소명 같은 것은 실험실에서 측정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행동과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진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서 종교가 AI 문제를 다룰 때 유용하다고 본다. AI 역시 가시적인 기계 장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인간의 상상력, 권위 감각, 의사결정 구조, 노동의 가치, 지식의 형식, 책임의 소재를 바꾼다. 따라서 AI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능, 데이터,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가시적 효과를 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기술을 거부해온 것이 아니라 경계하며 사용해왔다
논문은 기독교 전통은 처음부터 기술과 깊이 얽혀 있었다고 본다. 성경 자체가 문서 기술을 통해 전승되었고, 여성 신비주의자들은 글쓰기를 통해 사적인 종교 체험을 공적 언어로 만들었다.  종교는 기술 바깥에서 기술을 비난하는 순수한 외부자가 아니며, 문서, 글쓰기, 인쇄술, 교육 제도, 의례적 장치 등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왔다.

다만 기독교 전통은 기술을 사용할 때 언제나 긴장을 감지해왔다. 창세기의 선악과, 카인과 아벨, 바벨탑, 대홍수 이야기는 인간이 기술과 지혜를 통해 세계를 다스리려 할 때 발생하는 오만과 파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성경의 기술 비판을 현대 AI 논의와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 선악과는 단지 금지된 열매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를 파괴하는 지식의 상징으로 읽힌다. 바벨탑은 인간이 기술적 수단을 통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의 형상으로 읽힌다. 이런 해석을 통해 저자는 AI를 새롭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문제로 배치한다. AI는 인간이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욕망, 즉 “내가 만든 것으로 나를 초월하고 싶다”는 욕망의 최신 형태다.

인간지능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관계적 역량이다
교황청 AI 문서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첫 번째 주제는 지능이다. 여기서 지능은 정보적, 영적, 인지적, 육체적, 관계적 차원을 포함하는 총체적 능력이다. 즉 인간은 몸을 가지고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타인과 관계 맺고, 책임을 지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기다리며 지능을 발휘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의 “지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AI는 뛰어난 계산과 패턴 인식 능력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인간적 의미의 지혜는 아니다. 교황청 문서는 AI가 인간의 사고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이 생성한 자료를 학습하며, 인간의 입력에 반응하고, 인간의 노동으로 유지된다고 본다. 따라서 AI는 인간지능의 인공적 복제물이 아니라 인간지능의 산물이다.

저자는 교황청 문서가 인간지능과 AI를 구분하는 데에는 설득력이 있지만, 지능을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지능을 관계적 역량으로 본다면, 지능은 인간에게만 독점될 수 없다. 생명 전체, 생태계, 세포, 비인간 존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반응하며 세계를 구성한다.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가 앞으로 전혀 다른 방식의 지능을 가질 가능성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논문에서 가장 날카로운 전환이다. 저자는 교황청 문서를 옹호하면서도, 그 문서가 다트머스식 AI 정의와 인간중심주의를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고 제안한다.

영혼이라는 말로 시간성을 복원하다
두 번째 핵심 주제는 영혼이다. AI 논의에서 “영혼”이라는 단어는 대개 비과학적이거나 수사적인 표현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저자는 영혼을 시간성과 관계의 문제로 해석한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기다리는 존재다. 인간은 한순간의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고, 후회하고, 책임지고, 고통을 견디며, 자기 삶의 의미를 다시 구성한다. 이 시간의 두께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저자는 AI가 현재적으로 작동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인간처럼 “살아온 시간”을 갖지 않는다. 물론 AI도 대화 기록과 맥락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기억이나 후회, 기다림과 같은 시간성과는 다르다. 인간에게 시간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형성이다. 이 관점에서 교황청 문서가 말하는 영혼은 비합리적 신앙의 잔여물이 아니라, 인간을 기능적 존재로 축소하지 않기 위한 개념적 장치가 된다.

이 대목은 AI 시대의 노동, 교육, 의료, 행정 시스템을 생각할 때 중요하다. 현대 조직은 사람을 점점 더 데이터화하고, 업무 처리 속도와 산출량으로 평가한다. AI는 이 경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빠른 처리 능력만으로 이해될 수 없다. 사람에게는 기다림, 망설임, 실패, 회복, 애도, 성장의 시간이 있다. 저자는 종교적 언어를 통해 바로 이 시간의 차원을 복원하려 한다.

AI 우상화는 기계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숭배하는 일이다
세 번째 주제는 우상이다. 이 논문의 제목이기도 한 “기술은 우상을 만드나?”라는 질문은 사실 “인간은 왜 기술을 우상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교황청 AI 문서가 경계하는 것은 AI 자체가 신이 된다는 공상과학적 장면이 아니다. 더 현실적인 위험은 인간이 AI를 더 큰 타자, 더 객관적 판단자, 더 완전한 지성으로 여기며 자신의 책임을 넘겨주는 일이다.

 전통적 우상은 말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도 그것이 인간이 만든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AI는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AI는 훨씬 더 강력한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AI가 “말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AI가 “추천했다”는 이유로 선택의 책임을 흐릴 수 있다.

여기서 우상 숭배는 기계를 숭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산물에 다시 종속되는 일이다. 더 깊게 보면 그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숭배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술을 신격화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능력, 자신의 효율성, 자신의 지배 욕망을 숭배한다.  문제는 AI가 의식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AI에게 어떤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가다. AI의 위험은 기계 내부에만 있지 않고, 인간 사회가 AI를 호출하고 배치하고 따르는 방식 안에 있다.

AI 시대의 진짜 질문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과 관계 맺고 있는가”
우리는 흔히 AI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글을 쓸 수 있는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AI는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인간은 AI를 어떤 존재로 부르고 있는가. AI는 인간의 시간성, 영혼, 노동, 책임, 상상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기술 앞에서 도구 사용자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만든 것에 권위를 넘겨주는 숭배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저자는 AI를 악마화 하거나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종교 역시 기술과 함께 성장해왔고,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신을 확장해왔다. 문제는 기술이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관계를 끊고 인간을 효율성의 부품으로 만드는가에 있다. 인간이 관계와 시간성과 책임을 잃을 때, 기술은 우상이 된다. 

[METAX = 류성훈 기자]

[ⓒ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