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를 고집한 게임 플랫폼, GOG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2-09 11:00:00
'비효율'이 플랫폼의 가장 단단한 신뢰가 되다
[메타X(MetaX)] GOG.com은 복제 방지 장치(DRM)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온 PC 게임 디지털 유통 플랫폼이다. 이용자는 구매한 게임의 설치 파일을 직접 내려받을 수 있고, 계정 없이도 설치할 수 있으며, 플랫폼이 사라져도 게임은 남는다. 2008년 고전 게임 복원으로 시작해, '구매한 게임을 소유한다'는 개념을 끝까지 유지해온 드문 사례다.
PC 게임 유통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면, GOG는 이미 주변부로 밀려났어야 할 플랫폼에 가깝다. Steam을 중심으로 한 독점적 시장 구도는 공고해졌고, 구독 모델과 클라우드 게임의 확산은 ‘구매’라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다. 편의성과 접근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환경에서, 속도와 규모 어느 측면에서도 GOG가 우위를 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점유율, 화제성, 성장 지표 모두 GOG의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플랫폼은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이용자층은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문제는 GOG가 왜 크게 성공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왜 시장에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가다.
GOG는 애초에 ‘성장형 플랫폼’이 아니었다
GOG는 출발부터 Steam과 같은 범용 디지털 마켓을 지향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많은 게임을 빠르게 유통하는 대신, 어떤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가를 먼저 규정했다. 2008년 출범 당시 플랫폼의 이름이 Good Old Games였다는 점은 이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작 경쟁보다는, 유통망에서 밀려난 고전 PC 게임을 복원하고 현대 환경에서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데서 플랫폼의 역할을 정의했다.
이 같은 선택은 모회사였던 CD Projekt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CD Projekt는 The Witcher IP를 직접 유통하며, 기존 퍼블리셔 중심 구조와는 다른 경로를 실험해왔다. GOG는 이 과정에서 단순한 내부 판매 채널을 넘어, DRM-free 유통과 직접 판매 모델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능했다.
플랫폼 경쟁의 기준이 규모, 속도, 독점 계약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GOG는 이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확장을 전제로 한 설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형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자체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GOG는 성장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고, 그 선택 덕분에 탈락 경쟁에서도 비켜나 있었다.
사용자를 최대화하지 않고, 선택했다
디지털 게임 유통에서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은 구매 인증과 실행을 통제하는 장치다. 게임을 실행할 때마다 계정 로그인이나 서버 인증을 요구하고, 특정 런처를 통해서만 설치·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자동 업데이트, 클라우드 세이브, 부정 복제 방지 등 여러 기능을 묶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플랫폼은 DRM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GOG는 이 전제를 거부하고 DRM-free를 선택했다. 게임은 인증 절차 없이 실행되며, 이용자는 설치 파일을 직접 내려받아 보관할 수 있다. 계정이 사라지거나 플랫폼이 종료되더라도, 구매한 게임은 이용자의 손에 남는다. 대신 플랫폼은 사용자 경험을 강하게 통제할 수 없고, 자동화된 편의 기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DRM-free는 철학적으로는 ‘소유권’을 강화하지만, 상업적으로는 불리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GOG의 정책은 단순한 기능 차별을 넘어 사용자 필터로 작동한다. 편의성과 통합 경험을 중시하는 다수는 자연스럽게 이탈한다. 반대로 GOG에 남는 이용자층은 분명하다. 게임을 ‘서비스’가 아닌 ‘소유 자산’으로 인식하고, 오프라인 플레이를 전제로 하며, 설치 파일을 직접 보관하는 문화에 익숙한 사용자들이다. GOG는 이들을 최대한 늘리기보다, 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설계된 플랫폼에 가깝다.
그 결과는 카탈로그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GOG의 전체 타이틀 수는 대형 플랫폼에 비해 제한적이며, DRM을 요구하는 퍼블리셔가 많기 때문에 AAA급 대작의 동시 출시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대신 이탈률은 낮고, 재구매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GOG는 고객을 넓게 모으는 대신, 처음부터 고객을 걸러냈다. 그리고 그 선택 자체가 플랫폼의 정체성이 됐다.
원칙을 증명하다
GOG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DRM-free가 과거의 선언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이후 플랫폼을 둘러싼 일련의 선택들은, GOG의 원칙이 상황에 따라 수정되는 구호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기준임을 보여준다. 시장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GOG는 ‘유행을 따라갈 것인가, 원칙을 재확인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후자를 택해 왔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보존(preservation)이다. GOG는 고전 게임을 단순히 다시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일찍부터 인식해 왔다. 2024년 발표된 GOG Preservation Program은 그 인식이 정책으로 구체화된 결과다.
GOG는 2024~2025년에 걸쳐 다수의 클래식 타이틀을 프로그램에 편입하고, 최신 운영체제에서 안정적으로 구동될 수 있도록 호환성 수정, 안정성 개선, 품질(QoL) 보정을 지속적으로 적용해왔다. 비용 대비 수익을 고려하면 효율적인 사업이라 보기 어렵지만, GOG는 이 영역을 수익원이 아니라 플랫폼의 역할로 정의했다. 보존은 선택지가 아니라 정체성에 가까웠다.
2026년 초 이슈가 된 Linux 네이티브 지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데스크톱 OS 시장에서 Linux의 점유율은 여전히 소수에 머물러 있지만, Steam Deck 이후 PC 게임 환경에서 그 존재감은 분명히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OG가 GOG Galaxy의 Linux 네이티브 지원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힌 것은, 단순한 기능 추가라기보다 방향성의 재확인에 가깝다. “사용자 통제권”과 “플랫폼 종속 최소화”라는 가치가 DRM-free와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점을, 기술 선택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다. 실제로 이 소식은 2026년 초 커뮤니티와 해외 매체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GOG Galaxy의 ‘선택적 설계’ 또한 시간이 지나며 더욱 의미를 갖게 된 사례다. GOG Galaxy는 GOG가 2014년 공개한 PC 게임 관리용 클라이언트로, 라이브러리 통합, 업데이트 관리, 친구 목록 등 일반적인 런처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다른 플랫폼과 달리, 이 클라이언트는 GOG 이용의 필수 조건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즉, GOG는 클라이언트를 제공하면서도, 이를 플랫폼의 관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2020년대 중반에 들어 대부분의 PC 게임 유통 플랫폼이 ‘클라이언트 = 플랫폼’ 구조로 수렴한 것과는 분명한 대비다. GOG에서는 여전히 설치 파일을 직접 내려받아 보관·설치하는 방식이 유지되며, 런처 실행이나 계정 인증은 필수가 아니다.
이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이다. 이용자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의 안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대신, 플랫폼 바깥에서도 구매한 게임을 계속 소유할 수 있다. GOG Galaxy는 편의를 위한 선택지일 뿐, 소유의 조건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선택 가능성’이야말로, 지금에 와서 GOG의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요소가 됐다.
결국 GOG의 생존 방식은 최근 몇 년간 더욱 선명해졌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전략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칙을 다른 국면에서 반복적으로 증명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 반복이, GOG를 단순한 스토어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남게 만드는 것이다.
작은 플랫폼일수록 신뢰는 생존 조건이다
GOG.com의 경쟁력은 규모나 독점 타이틀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플랫폼이 반복적으로 지켜온 하나의 약속에서 비롯된다. “구매한 게임은 언제든 설치할 수 있다”는 전제다. 설치 파일 제공, 클라이언트 비강제, 계정 접근이 차단되더라도 로컬 백업 파일은 유효하다는 구조는 이 약속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한다.
이 약속이 중요한 이유는, GOG가 작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대형 플랫폼은 일시적인 논란이나 정책 변경에도 이용자를 유지할 수 있지만, GOG처럼 대안적 위치에 선 플랫폼은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존립 근거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GOG의 역사에는 이 약속이 시험대에 오른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020년 발생한 Devotion 판매 철회는 그중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Devotion은 대만 인디 스튜디오 Red Candle Games가 개발한 1인칭 공포 어드벤처 비디오 게임으로, 198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가족 붕괴와 종교적 집착을 은유적으로 다루며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게임 내 일부 그래픽 요소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되며, 2019년 중국 내에서 큰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이 여파로 Devotion은 주요 유통 플랫폼에서 사실상 퇴출됐고, 2020년 말 GOG는 해당 타이틀을 단독으로 유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GOG는 출시 하루 만에 판매를 철회했다. 이유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우려"였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후, 커뮤니티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논란의 핵심은 사과문의 내용이 아니었다. GOG가 공개적으로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스스로 철회했다는 사실 자체였다. 커뮤니티가 문제 삼은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GOG가 그동안 강조해온 원칙(외부 압력보다 이용자와의 약속을 우선한다는 태도)이 실제 상황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Devotion 사건은 GOG가 사과를 잘못해서 비판받은 게 아니다. 원칙을 한 번이라도 접었을 때, 신뢰가 얼마나 빠르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같은 해 말 출시된 'Cyberpunk 2077'은 기술적 완성도 문제로 전례 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콘솔 버전의 심각한 성능 저하로 인해 주요 플랫폼에서 환불 사태가 이어졌고, 일부 스토어에서는 판매 중단 조치까지 내려졌다.
이 게임은 GOG의 모회사 CD Projekt Red가 개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해 충돌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GOG는 모회사 타이틀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예외를 두지 않았고, 플랫폼 차원의 환불 정책을 그대로 적용했다. 게임의 완성도 문제와 플랫폼의 약속을 분리하려는 선택이었다. GOG는 이 사건을 통해 “자사 퍼블리셔의 타이틀이라도 플랫폼 원칙은 예외가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2021년의 Hitman GOTY Edition 사태는 원칙의 경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 사건이다. DRM-free를 전제로 판매된 타이틀에서 온라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GOG는 즉각 판매를 중단했다. 수익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원칙 위반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이 대응은 GOG가 DRM-free를 마케팅 문구가 아닌 계약 조건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일련의 사례들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GOG가 판매하는 것은 방대한 게임 카탈로그가 아니라, 약속의 일관성이다. 그리고 작은 플랫폼일수록 그 일관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에 가깝다.
대안이 아니라, 사라지면 곤란한 위치
현실적으로 PC 게임 유통 시장의 중심은 Steam이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Steam을 사용하고, GOG만을 독점적으로 선택하는 이용자는 소수에 가깝다. 점유율이나 화제성만 놓고 보면 GOG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플랫폼처럼 보인다.
그러나 GOG의 실제 위상은 ‘대안’이라기보다 기준선에 가깝다. DRM-free라는 선택지를 시장에 남겨두고, 디지털 게임에서도 ‘소유’라는 개념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계정과 클라이언트를 통해 이용자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가 당연해진 환경에서, GOG의 존재는 그 권한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이 점에서 GOG는 사용 빈도와 무관하게 의미를 갖는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콘텐츠가 내려가도 DVD는 남고, 음악 플랫폼에서 곡이 삭제돼도 로컬 MP3 파일은 남는다. 마찬가지로 계정이 차단되거나 서비스 정책이 바뀌더라도, GOG에서 내려받은 설치 파일은 이용자의 손에 남는다. GOG는 많은 사람이 쓰는 플랫폼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에 가깝다.
그래서 GOG는 사라지지 않는다
GOG는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았고, 커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급변하는 시장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플랫폼이 되기를 포기했기에, 일부에게는 끝내 대체할 수 없는 선택지로 남았다. 성장과 확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지 않은 설계, 원칙을 반복적으로 검증해온 결정들이 지금의 GOG를 만들었다.
GOG는 시장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디지털 유통의 전제가 흔들리고, ‘소유’라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질수록 그 존재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편의가 권리를 잠식할 때, 선택지가 사라질 때, GOG는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GOG는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해서가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심을 차지하지 않았기에, 중심이 무너질 때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플랫폼.
GOG는 그런 방식으로, 오늘도 PC 게임 시장의 바깥에서 기준선을 지키고 있다.
[METAX = 김하영 기자]
[ⓒ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