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am Deck 이후, Valve는 왜 ‘Steam Machine’을 꺼냈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1-13 11:00:00
[메타X(MetaX)] 최근 해외 매체와 업계 분석을 중심으로 Steam Machine의 재등장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한동안 과거의 실패 사례로만 기억되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구체적인 출시 일정이나 세부 사양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Valve가 다시 이 이름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Steam Machine은 Valve에게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2015년, 거실용 PC 콘솔이라는 개념으로 시도되었지만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고, 이후 Valve 하드웨어 전략의 시행착오를 상징하는 사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이름을, 그것도 콘솔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 다시 꺼냈다는 점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선택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려는 재도전일까. 아니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한 판단일까.
Valve는 왜 지금, 다시 ‘Steam Machine’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재도전’이라는 해석이 어색한 이유
Steam Machine의 재등장을 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석은 ‘재도전’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이번 선택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업계가 기억하는 2015년형 Steam Machine은 분명한 실패 사례로 남아 있다. OEM 중심의 분산 설계로 인해 제품 간 경험의 일관성이 무너졌고, 가격과 성능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 콘솔과 PC의 장점을 모두 취하겠다는 기획은 결과적으로 어느 쪽의 정체성도 분명히 확보하지 못한 채 흐려졌다.
그렇기에 같은 이름을 다시 꺼낸 Valve의 선택은 더욱 눈에 띈다. 과거의 실패를 알고 있는 Valve가, 아무런 전제 변화 없이 동일한 이름을 반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번 Steam Machine을 단순한 재도전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와 지금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차가 있고, 그 사이 Valve의 하드웨어 전략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팀 머신 그 자체가 아니다. Valve가 그 이전에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확인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확인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제품이 바로 Steam Deck이다. Steam Deck은 대중적 히트작이라 부르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 제품이었지만, Valve가 설정한 전략을 검증하기에는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다.
Steam Deck의 성공, ‘히트’가 아닌 ‘적중’
Steam Deck의 성과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이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있다. 대중적 히트라는 잣대를 적용한다면 Steam Deck은 분명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콘솔과 비교할 만한 판매량을 기록하지도 않았고, 캐주얼 유저나 일반 소비자층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점만 놓고 보면 Steam Deck은 ‘성공작’이라 부르기 망설여지는 제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Valve가 이 제품에 기대했던 역할은 처음부터 달랐다. Steam Deck은 모든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기기가 아니었다. 이미 Steam 라이브러리를 보유한 PC 게이머, 그리고 데스크톱이라는 공간적 제약 없이 동일한 Steam 경험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용자가 명확한 타겟이었다. Steam Deck은 이 제한된 목표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그 범위 안에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Valve가 얻은 성과는 단순한 판매 지표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Steam Deck을 통해 SteamOS는 실험 단계의 운영체제가 아니라, 실제 사용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중심의 PC 게임 경험 역시 콘솔형 인터페이스로 재구성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스토어를 하나의 구조로 통합해 통제하는 방식 또한 사용자 저항 없이 성립할 수 있음이 검증되었다.
이 지점에서 Steam Deck의 성공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시장을 장악한 결과가 아니라, Valve가 다음 단계를 검토할 수 있게 만든 성공이었다. SteamOS는 더 이상 휴대용 기기에 한정된 실험적 선택지가 아니었고, 하드웨어를 직접 통제하는 전략 역시 충분히 현실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내부 확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확신이 도달한 결론은 분명했다. 이 구조는 휴대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Steam Deck 이후, Valve에게 ‘확장’이라는 선택지가 열리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team Machine, 실패의 반복이 아닌, 확장
이번에 다시 언급되는 Steam Machine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제품으로 보기 어렵다. 전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Steam Machine이 OEM 중심의 분산 설계와 불명확한 포지션 속에서 흔들렸다면, 이번 선택의 핵심은 직접 통제에 있다. Valve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그리고 스토어까지 하나로 묶는 방식을 이미 경험했고, 그 방식이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 확인의 중심에는 Steam Deck이 있었다. Steam Deck 이후 성숙해진 SteamOS는 더 이상 실험적 운영체제가 아니다. 안정성, 입력 체계, 인터페이스 구성 등에서 ‘콘솔형 경험’으로의 재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이 검증되었다. 이 변화는 Steam Machine의 목표를 분명히 한다. 이번 Steam Machine은 콘솔을 대체하려는 기기가 아니라, 거실이라는 공간에서 Steam 경험을 완성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확장의 방향 역시 명확해진다. Steam Deck이 개인의 휴대 환경을 대상으로 했다면, Steam Machine은 공유된 공간, 즉 거실이라는 고정 환경을 겨냥한다. 이는 제품의 진화라기보다, 동일한 전략이 다른 공간으로 적용되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이 확장은 단번에 등장한 것도 아니다. 흐름은 비교적 분명하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Steam Deck은 출시 이후 점진적으로 안착하며 SteamOS가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검증했다. 이 시기 Steam Deck은 일회성 실험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관리되는 하드웨어라는 인상을 남겼고, SteamOS 역시 휴대 환경을 넘어 다양한 사용 조건을 염두에 둔 방향으로 고도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누적되면서, 2024년을 전후로 업계에서는 SteamOS를 휴대용 기기 전용 운영체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점차 늘어났다. 외부 디스플레이 연결 환경, 컨트롤러 중심 인터페이스의 안정화, 데스크톱 모드와 게임 모드의 병행 구조 등은 SteamOS가 특정 폼팩터에 종속되지 않는 기반 운영체제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2025년 11월, Valve는 새로운 Steam Machine을 공식 공개하며 이러한 흐름을 명확히 했다. 이 발표를 통해 Valve는 Steam 하드웨어 전략이 단발성 실험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Steam Deck 이후의 하드웨어 확장이 휴대용을 넘어 고정형 환경까지 이어질 것임을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왜 지금, ‘Steam Machine’인가
종합하면, Steam Machine의 등장은 하나의 신제품 출시라기보다 Valve가 Steam이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택에 가깝다. Steam Machine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Steam Deck을 통해 검증된 전략이, 처음으로 고정형 공간까지 확장된 결과다.
Steam Deck은 질문이었다. PC 게임 경험을 하드웨어 단위로 통제해도 되는가, 그리고 그 경험을 콘솔형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2025년 11월 공식 공개된 Steam Machine은 그 질문 이후에 나온 첫 번째 명확한 답변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기의 성공 여부가 아니다. Valve가 이제 Steam을 단일 기기나 폼팩터가 아니라, 공간 단위의 플랫폼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팀 머신의 재등장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미 확인된 가능성을 다른 환경으로 옮기는 단계에 가깝다. ‘기기’에서 ‘공간’으로. 바로 그 이동이,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스팀 머신’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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