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0억의 약속, 그리고 배신...'창의성을 샀지만 버렸습니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5-06 11:00:00

크래프톤·언노운월즈 사태가 게임 산업에 던지는 질문

[메타X(MetaX)] 크래프톤은 2021년 게임 스튜디오 언노운월즈를 약 5억 달러, 한화로 7,500억 원에 인수했다. 배틀그라운드 하나로 글로벌 시장을 뚫은 한국 게임사가, 해저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 시리즈로 전 세계 팬을 끌어모은 소규모 스튜디오에 그 돈을 쓴 이유는 분명했다. 서브노티카를 만든 팀의 창의성과 개발 방식, 그 독립적인 문화를 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4년 뒤, 미국 법원은 크래프톤이 바로 그 창의성이 돈이 되려는 순간, 그것을 없애려 했다고 판결했다. 2026년 3월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이 선고한 이번 판결은 단순한 기업 분쟁의 결말이 아니다. 인수 계약서에 창의성을 명시해 놓고도 왜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가. 이 사건은 게임 산업이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드러냈다.


서브노티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언노운월즈는 이례적인 스튜디오였다. 공동창립자 찰리 클리블랜드와 맥스 맥과이어가 이끄는 이 팀은 규모가 작았고, 개발 방식도 달랐다. 서브노티카는 2014년부터 스팀 얼리 액세스로 공개됐고, 개발 과정 내내 플레이어 커뮤니티와 호흡하며 방향을 다듬었다. 완성된 게임을 팔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했다. 2018년 정식 출시된 서브노티카가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데는 이 방식이 결정적이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클리블랜드를 "창의적 비전의 원천"이라 표현하고, 맥과이어를 "천재 엔지니어"라 묘사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https://store.steampowered.com/app/264710/Subnautica/

크래프톤은 이 사실을 알고 언노운월즈를 인수했다. 2021년 체결된 인수 계약에는 스튜디오의 독립 경영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었고, 창립자들과 CEO 테드 길 등 핵심 경영진이 운영권을 보유하며,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이들을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크래프톤이 이 조건을 수용한 것은 단순한 관례가 아니었다. 서브노티카의 성공 공식이 언노운월즈의 자율적 개발 방식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서에는 언아웃 조항도 포함됐다. 서브노티카 2가 일정 성과 기준을 달성하면 최대 2.5억 달러, 약 3,300억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조항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크래프톤이 인수 시점에 이 팀의 가능성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방증한다. 창의성을 믿었기에 그 창의성의 결과물에 거액의 성과급을 약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이 보이자 약속이 흔들렸다
균형이 깨진 건 서브노티카 2의 흥행이 현실로 다가오면서였다. 2025년 8월 얼리 액세스 출시를 앞두고 크래프톤 재무팀이 작성한 수익 전망서에는 예상 판매량 167만 장이 적혀 있었다. 이는 곧 언아웃 지급액이 약 1억 9,000만~2억 4,000만 달러 수준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인수 당시 약속한 3,300억 원이 현실이 되는 시나리오였다.

크래프톤 내부에서 먼저 경고가 나왔다. 법무팀은 경영진에게 "정당한 해고 사유가 있더라도 언아웃 지급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계약서 상의 의무는 해고 사유와 별개로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이 경고를 무시했고, 2025년 6월부터 ChatGPT에 대응 방안을 묻기 시작했다.

'6월 2일, 박(Park)은 슬랙(Slack)을 통해 김(Kim)에게 "정당한 사유에 의한 해고(dismissal with cause)"를 하더라도 언아웃 지급 의무는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크래프톤을 "소송 및 평판 리스크"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김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ChatGPT를 찾았다. AI 챗봇이 언아웃을 취소하기는 "어렵다"고 답하자, 김은 박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 델라웨어 법원 공식 판결문 발췌; https://courts.delaware.gov/Opinions/Download.aspx?id=392880

판결문에 따르면 이후 약 한 달간 크래프톤은 ChatGPT의 권고 사항 대부분을 실행에 옮겼다. 처음에 ChatGPT는 언아웃 취소가 어렵다고 답했으나, 김 대표가 유도 질문을 반복하자 언아웃을 회피할 구체적인 실행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크래프톤은 이를 토대로 내부 태스크포스 '프로젝트 X'를 가동했다. 스팀 퍼블리싱 접근 권한을 빼앗고, 팬들을 향해 선제적 여론전을 펼쳤으며, 핵심 인력을 법적으로 압박하는 조치가 순서대로 집행됐다. 김 대표가 ChatGPT와 나눈 대화, 그리고 이를 사내 임원들과 공유한 메신저 기록은 이후 소송 과정에서 그대로 법정 증거가 됐다.

2025년 7월, 크래프톤은 테드 길 CEO를 포함한 언노운월즈 경영진 3명을 전격 해임했다. 표면적 이유는 "서브노티카 2를 성급하게 출시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의 로리 윌 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6년 3월 16일 선고된 판결에서 법원은 테드 길의 즉각 복직을 명하고, 크래프톤의 위법한 통제로 지연된 기간인 258일만큼 언아웃 산정 기간을 연장했다. ChatGPT와의 대화를 핵심 증거로 채택한 이 판결은, 크래프톤이 처음부터 언아웃을 회피할 목적으로 해임을 기획했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확인시켰다. 인공지능이 범행 도구가 아니라, 내부 의도를 기록한 증인이 된 셈이다. 


크래프톤만의 문제는 아니다
크래프톤 사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결말이 법정까지 갔다는 점이 아니다. 진짜 특별한 것은, 이 사건의 구조가 게임 산업 어디에서나 반복적으로 목격된다는 점이다. 대형 자본이 창의적 스튜디오를 인수한 뒤 그 창의성을 통제하려 드는 패턴은 방향이 조금 다를 뿐, 결말은 언제나 비슷하다.

https://www.destinythegame.com/en/YearOfProphecy#Renegades

소니는 2022년 번지 스튜디오를 36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스튜디오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번지는 '데스티니 시리즈'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가능성을 증명한 스튜디오였고, 소니는 그 노하우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데스티니 2'의 성과가 기대치를 밑돌기 시작하자 약속은 빠르게 조건부가 됐다. 2023년 10월 100명 가량이 해고됐고, 2024년 7월에는 220명이 추가로 짐을 쌌다. 전체 인력의 17%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후 소니는 독립 운영을 보장했던 번지를 결국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 구조에 직접 편입시켰다. 인수 당시의 약속이 재무 성과 앞에서 얼마나 빨리 휘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라인게임즈는 오랜 국내 팬덤을 가진 IP인 '창세기전'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개발사를 세우고 레그 스튜디오에 리메이크 작업을 맡겼다. 2024년 출시된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흥행에 실패했고, 레그 스튜디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됐으며, IP는 모기업 라인게임즈가 가져갔다. 스튜디오는 도구였고, IP가 목적이었다는 구조가 사후에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물론, 성과가 나빠서가 아닌 경우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탱고게임웍스는 2023년 1월 'Hi-Fi Rush'를 출시했다. 아무 예고 없이 공개된 이 게임은 리듬 액션이라는 생소한 장르임에도 비평가와 플레이어 양쪽에서 광범위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2024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탱고게임웍스 폐쇄를 발표했다. 105명이던 전체 직원 중 일부만 다른 베데스다 산하 팀으로 이동했고, 대다수는 해고됐다. 공식 이유는 '전략적 재편'이었다.

이 폐쇄에서 가장 기묘한 대목은 후일담이다. 2024년 8월, 탱고게임웍스를 인수한 곳은 다름 아닌 크래프톤이었다. 흩어진 105명 중 50여 명이 크래프톤 품에서 다시 모였고, 'Hi-Fi Rush'의 개발 권리도 함께 이전됐다. 크래프톤은 인수 발표 보도자료에서 이 결정이 "창의적인 게임성을 발굴하고 크리에이터를 존중하는 크래프톤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김창한 대표는 "상업적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https://www.krafton.com/news/press/%ED%81%AC%EB%9E%98%ED%94%84%ED%86%A4-%EA%B2%8C%EC%9E%84-%EA%B0%9C%EB%B0%9C%EC%82%AC-%ED%83%B1%EA%B3%A0-%EA%B2%8C%EC%9E%84%EC%9B%8D%EC%8A%A4-%EA%B0%9C%EB%B0%9C-%EC%9D%B8%EB%A0%A5/

그리고 해당 보도자료가 나온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크래프톤 내부에서는 언노운월즈 경영진을 몰아내기 위한 '프로젝트 X'가 가동됐다.

그렇다면 크래프톤·언노운월즈 사태는 무엇인가.
번지처럼 성과가 나빠서 문제가 된 것도, 탱고게임웍스처럼 전략이 바뀌어서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과가 너무 좋아서 문제가 됐다. 창의성을 믿었기에 3,300억 원을 약속했고, 창의성이 실현되려 하자 그것을 억누르려 했다. 방향만 달랐을 뿐이다.

인수 전에는 어디서나 비슷한 말이 나온다. 자율성을 보장하겠다, 독립 경영을 유지하겠다, 창의성을 존중하겠다. 그리고 인수 후에는 재무 목표가 설정되고, 성과 압박이 시작되고, 어느 시점엔가 통제가 따라온다. 성과가 나빠서든, 너무 잘 나와서든, 전략이 바뀌어서든.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말은 하나다.


7,500억짜리 청구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6년 3월 판결은 1단계, 즉 "누가 경영권을 갖는가"에 대한 결론일 뿐이다. 남은 2단계 소송에서는 크래프톤의 고의적 통제가 언노운월즈의 성과 달성을 위법하게 방해했는지, 그에 따른 손해배상 규모가 얼마인지를 다룬다. 그리고 그 금액은 서브노티카 2의 흥행 결과에 직결된다. 창의성을 억누르려 했던 쪽이, 이제 그 창의성의 결과물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판결문은 언노운월즈 공동창립자 찰리 클리블랜드를 "창의적 비전의 원천"이라고 표현했다. 법원이 굳이 그 표현을 선택한 것은, 이 사건의 핵심이 계약 위반이나 절차적 부당함이 아니라 창의성 그 자체를 둘러싼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크래프톤은 7,500억 원을 주고 창의성을 샀다. 그 창의성이 약속한 대가를 청구하려는 순간, 대가를 피하려 창의성을 멈추려 했고, 법원은 그 시도를 막아섰다.

이 사건은 대형 자본이 인디 스튜디오를 인수할 때 진짜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킬 의지가 진짜로 있는지를 묻고 있다. 

판결문은 나왔다. 하지만 이 판결은 크래프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을 약속하며 스튜디오를 사들이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같은 패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약속에 답하지 않는 한, 게임 산업은 또다시 같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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