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버스의 흔들림…롯데의 메타버스 전략, 시험대에 서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4-02 07:00:00

흔들리는 기업형 메타버스 플랫폼
'공간'이 아닌 '구조 설계'의 필요성

[메타X(MetaX)] 롯데가 추진해 온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가 존속 여부를 가르는 갈림길에 놓였다. 약 64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지만, 현재 투자금의 상당 부분이 손상 처리되며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된 상황이다. 조직 축소와 사옥 이전까지 이어지면서,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한 내부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롯데는 올해 1~3분기 성과를 기준으로 칼리버스의 향후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해당 플랫폼이 그룹 디지털 전략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깝다. 초기에는 유통·콘텐츠 자산을 결합한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는 전략적 실험의 성과를 검증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 실험, ‘커머스형 메타버스’
칼리버스는 롯데가 추진한 커머스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신규 서비스가 아니라, 그룹 전반의 유통과 콘텐츠 자산을 하나의 가상 공간 안에서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칼리버스는 가상 공간에서 쇼핑과 콘텐츠 경험을 결합하는 구조를 지향했다. 이용자는 단순히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환경 속에서 브랜드를 경험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에 롯데의 유통, 면세,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를 연동함으로써, 오프라인 중심의 사업 구조를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

[메타X(MetaX)] 칼리버스 세상; https://www.lotte.co.kr/pr/newsView.do?pageNo=1&srchNewsSeq=1484&srchField

이러한 점에서 칼리버스는 단순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아니라, 롯데가 구축하려 했던 ‘디지털 유통 인터페이스’에 가까웠다.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이나 앱을 넘어, 브랜드 경험과 소비를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롯데의 디지털 전환 전략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방향성이 명확한 실험 중 하나였다. 메타버스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본질적으로는 유통 기업이 자신의 비즈니스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용·전환·시장 흐름의 엇갈림
그러나 실제 운영 단계에서 칼리버스는 기대했던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문제는 하나의 실패 요인으로 설명되기보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에 있다.

첫째, 플랫폼에 충분한 트래픽이 형성되지 않았다. 메타버스 서비스의 핵심은 사용자가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얼마나 반복적으로 방문하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칼리버스는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할 만큼의 콘텐츠 밀도를 확보하지 못했고, 사용자 입장에서 다시 접속해야 할 명확한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초기 유입 이후 이용이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됐다.

둘째, 이용이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칼리버스는 가상 쇼핑, 디지털 굿즈, 브랜드 입점 등을 통해 수익 모델을 구축하려 했지만, 실제 구매 전환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용자가 공간을 경험하는 것과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과정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고, 기업 입장에서도 입점의 실질적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이는 플랫폼 확장 속도를 더욱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셋째, 외부 환경 역시 빠르게 변화했다. 2021년과 2022년 사이 급격히 확산됐던 메타버스 투자 열기는 2023년 이후 빠르게 식었고, 시장의 관심은 인공지능(AI)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메타조차 메타버스 투자에 대한 부담을 드러내며 비용 효율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메타버스는 더 이상 우선순위 투자 영역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과를 강화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용자가 머물지 않으니 수익이 발생하지 않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니 콘텐츠와 투자 역시 위축되며, 여기에 시장 환경 변화까지 더해지면서 플랫폼의 성장 동력은 빠르게 약화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현상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다. 트래픽 부진, 수익성 악화, 시장 냉각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며,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별도의 구조적 질문으로 이어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나랐나
같은 시기, 유사한 ‘메타버스’ 개념을 내세운 플랫폼 가운데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일부 서비스는 성장세가 둔화되었음에도 여전히 사용자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상당수 기업형 메타버스는 축소되거나 재조정 단계에 들어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Roblox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Roblox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를 중심으로 이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하며, 플랫폼 내부에서 지속적인 활동이 발생하는 기반을 유지해 왔다.

[메타X(MetaX)] 로블록스의 UGC 소개 페이지; https://www.roblox.com/ko/games/6946020219/The-Multiverse-Project

Epic Games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포트나이트는 게임을 중심으로 한 라이브 서비스 구조를 유지하면서 이벤트와 협업 콘텐츠를 통해 이용자 체류를 지속적으로 유도해 왔다. 메타버스적 요소는 이러한 게임 구조 위에 확장된 형태로 작동한다.

반면, 국내 대기업들이 시도한 메타버스는 다른 경로를 밟았다. SK텔레콤의 ifland는 초기 대규모 이용자 유입과 이벤트 중심 트래픽을 확보했지만, 반복 방문을 유도할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서 성장세가 빠르게 둔화됐다. 글로벌 확장 역시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고, 현재는 서비스 방향을 재조정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KT의 메타버스 플랫폼 역시 전시·홍보·기업 행사 중심으로 설계되며, 일반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방문할 동기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소비자 서비스라기보다 기업용 디지털 전시 공간에 가까운 형태로 머물렀다.

유통 기업들의 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가상 매장과 브랜드 경험 공간을 통해 쇼핑 경험의 확장을 시도했지만, 이러한 공간은 실제 구매나 장기적인 이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이벤트성 체험에 머물거나, 지속 서비스로 발전하지 못한 채 축소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들 사례는 서로 다른 산업에서 출발했음에도 공통된 패턴을 드러낸다. 초기에는 기술적 신선함과 마케팅 효과로 주목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 체류와 반복 이용을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플랫폼으로서의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대로 네이버 Z의 제페토는 다른 구조를 택했다. 제페토 역시 아바타 아이템과 패션을 중심으로 한 수익 모델을 갖고 있지만, 이는 플랫폼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이용자 간 상호작용과 자기 표현을 중심으로 한 구조가 먼저 형성되었고, 그 위에 커머스가 얹히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들과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메타X(MetaX)]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제페토; https://www.naverz-corp.com/ko/product/

결국 차이는 기능의 유무가 아니라 설계의 방향에서 발생한다. 국내 대기업 메타버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축했지만, 살아남은 플랫폼들은 ‘왜 머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메타버스의 성패를 가른 것은 '구조'였다
앞선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성과의 차이가 아니다.
메타버스의 성패는 기능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사용자 행동을 어떻게 조직했는가에 달려 있었다.

살아남은 플랫폼들은 '공간'이 아니라 '루프' 위에 구축되어 있었다. Roblox와 Epic Games는 메타버스라는 개념 이전부터 이미 반복 가능한 행동 구조를 갖고 있었다. 목표를 달성하고, 보상을 얻으며, 다른 이용자와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이용자는 그 구조 안에서 머물렀다. 메타버스는 이러한 구조 위에 덧붙여진 확장 요소였을 뿐이다.

반면 칼리버스는 이 순서를 거꾸로 택했다. 공간을 먼저 구축하고, 그 안에서 무엇이 반복될지를 나중에 채우려 했다. 그러나 사용자 행동은 빈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는다. 반복을 유도하는 장치,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함께 설계되지 않는다면 플랫폼은 유지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메타버스의 본질이 드러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다. 가상 공간을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사용자가 왜 돌아오고, 무엇을 계속하게 되는지를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결국 메타버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반복하게 만드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칼리버스가 선택한 커머스 중심 접근은 이러한 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쇼핑은 가능한 한 빠르게 끝내고 싶은 행동이며, 체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반면 메타버스는 사용자를 오래 머무르게 해야 성립한다. 이 둘을 결합하려면, 소비 이전에 체류의 이유가 먼저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리버스는 쇼핑 기능을 중심에 두고 공간을 구성하면서, 체류 구조를 후순위로 두었다. 그 결과 경험은 이어지지 않았고, 행동 역시 반복되지 않았다.

[메타X(MetaX)] 칼리버스 속 쇼핑몰; https://youtu.be/qY3fK57jSdc?t=34

여기에 시간의 문제까지 겹쳤다. 2023년 이후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 심리는 빠르게 냉각됐고, 산업의 중심은 인공지능(AI)으로 이동했다. 플랫폼이 사용자 구조를 충분히 형성하기 전에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실험이 지속될 여유 자체가 줄어들었다.

결국 칼리버스의 위기는 특정 프로젝트의 실패라기보다, 설계의 방향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례에 가깝다. 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접근을 택했다면,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유통의 디지털 전환, '공간'에서 '행동 구조'로
칼리버스 이후, 롯데를 포함한 유통 기업들은 디지털 전략의 전제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플랫폼을 직접 구축해 이용자를 모으는 방식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관계가 없으면 체류도, 수익도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고객이 왜 다시 들어오고, 무엇을 반복하게 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고객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경험을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디지털 플랫폼이라도 결국 동일한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칼리버스가 남긴 것은 실패가 아니라 질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고객과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을 통해 유지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플랫폼의 이름이 무엇이든 결과는 반복될 것이다.

결국, 640억 원이 증명한 것은 메타버스의 한계가 아니다.
행동을 설계하지 못한 플랫폼은, 어떤 형태로도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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