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인공지능 미술 감상과 문화자본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6-03-26 09:00:00
문화자본이 높을수록 AI 미술의 부정적 감정 완화
[메타X(MetaX)]본 논문은 AI 미술을 둘러싼 담론을 기술적 찬사에서 사회문화적 비판의 영역으로 확장한 연구다. 비록 특정 스타일의 이미지에 국한된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디지털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AI 시대의 새로운 예술적 위계를 분석한 점은 학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기술이 보급되었다고 해서 감상의 평등까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저자의 경고는, AI 미술의 심미성이 단지 이미지의 아름다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보유한 자본과 이해력에 의해 구조적으로 매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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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자의 문화자본에 따른 인공지능 미술의 심미적 감상에 관한 척도 개발 연구- 예술 수용 조사(ARS)를 중심으로, 한웨이, 2025. |
기술적 대중화 시대의 새로운 장벽, 문화자본
오늘날 인공지능(AI) 기술은 창작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기술적 민주화'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표면적인 현상 뒤에 숨겨진 '심미적 격차'라는 현실에 주목한다. 기술이 예술 생산의 경로를 확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을 심미적으로 수용하고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은 여전히 개인이 보유한 '문화자본'에 의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즉, 누구나 생성할 수는 있으나 누구나 같은 깊이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수용 단계에서의 차이가 새로운 형태의 심미적 위계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창작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AI 미술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
기존의 인공지능 미술 관련 연구들이 주로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혹은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와 같은 생산자 중심의 논의에 매몰되어 있었던 반면, 본 연구는 '누가, 어떻게 이를 감상하고 평가하는가'라는 수용자 중심의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문화자본론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예술 형식인 AI 미술에 적용함으로써, 전통 예술에서 나타나던 계급적 취향의 분화가 첨단 기술 예술의 영역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디지털 문화자본'의 정의와 AIARS의 개발
저자는 AI 미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미술사 지식뿐만 아니라 생성 알고리즘, 데이터 처리 방식 등 컴퓨터 기반의 기술적 논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해석 능력을 '디지털 문화자본'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현대 사회의 새로운 심미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기존의 예술 수용 조사 ARS(Art Reception Survey) 척도를 확장하여 AI 미술의 기술적 특수성을 반영한 전용 평가 도구인 'AIARS'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였으며, 여기에는 알고리즘에 대한 흥미와 기술적 이해도가 심미적 평가의 핵심 요소로 포함되었다.
심미적 수용의 6가지 차원: 문화자본이 감상에 미치는 영향
706개의 유효 표본을 바탕으로 실시된 실증 분석 결과, 문화자본의 총량은 AI 미술 감상의 6가지 차원(인지적 자극, 부정적 감정, 전문 지식, 자기 참조, 예술성 평가, 긍정적 매력) 모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문 지식, 예술성 평가, 인지적 자극 차원에서 문화자본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관찰되었다. 문화자본이 높은 감상자는 AI의 생성 원리를 하나의 '전문 지식'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예술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문화자본이 높을수록 AI 미술이 주는 기술적 낯섦에 의한 '부정적 감정'은 완화되는 포용력을 보였는데, 이는 풍부한 자본이 새로운 미적 경험에 대한 수용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AI 미술이 비인간적 주체에 의해 생성된다는 점 때문에 감상자가 자신의 삶과 작품을 연결 짓는 '자기 참조' 차원에서는 다른 요소에 비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심미적 위계의 재생산과 미래 예술 교육의 이정표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포인트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획득 자본'이 가정환경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 자본'보다 AI 미술 감상에 더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이는 교육과 문화적 접근성 향상을 통해 심미적 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자는 "기술의 평등성이라는 겉모습이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가리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향후 예술 정책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한다. 단순한 미술 기법 교육을 넘어 기술 리터러시와 예술적 감수성을 동시에 기르는 '융합적 교육'이 심미적 평등을 실현하는 핵심 경로가 되어야 하며, 전시 기획에서도 작품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알고리즘과 데이터 설계 과정을 대중에게 어떻게 해설하느냐가 감상자의 수용 수준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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