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박물관에 간 이유 — 넷마블·넥슨, 왜 지금 ‘아카이빙’에 나섰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6-05-12 11:00:43

넷마블과 넥슨, 박물관으로 향한 게임사들
사라지는 게임, 어떻게 남길 것인가

[메타X(MetaX)] 게임이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갔다. 한때 오락실 구석에서 버튼 소리와 함께 소비되던 기기들, 방 안의 모니터 앞에서 밤새 플레이되던 게임들이 이제는 박물관의 조명 아래 놓이고 있다. 화면은 꺼졌지만, 그 앞에 붙은 설명문은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오락의 흔적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술과 감각,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만든 문화의 기록이라고.


넷마블과 넥슨, 박물관으로 향한 게임사들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눈에 띄는 흐름도 이 변화와 맞닿아 있다. 

https://netmarblegamemuseum.org/

넷마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넷마블게임박물관은 2025년 3월 문을 열었고, 2026년 4월 국내 게임 관련 박물관 가운데 처음으로 ‘제1종 전문박물관’에 등록됐다.

서울시 사립박물관 실사를 거쳐 전문 박물관의 요건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업 홍보관 개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게임 자료와 전시의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확인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넥슨의 움직임도 비슷한 방향을 향한다. 제주에 있던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넥슨뮤지엄’으로 리브랜딩해 2026년 5월 12일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기존의 컴퓨터 기술사 중심 공간에서 벗어나, 넥슨이 30년간 축적한 게임 IP와 플레이어의 경험을 함께 보여주는 체험형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넥슨은 이 공간을 단순히 게임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과 추억이 살아 있는 게임 문화 거점으로 설명한다.

https://computermuseum.nexon.com/

그렇다면 왜 지금 게임은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세대의 변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게임을 경험한 세대는 이제 소비력과 추을 동시에 가진 성인 세대가 됐다. 이들에게 게임은 더 이상 부모 몰래 하던 놀이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자, 친구 관계의 매개였고, 특정 시대의 감각을 공유하게 해준 문화적 장치였다. 레트로 게임, 고전 IP, 리마스터, 굿즈 소비가 계속 확장되는 배경에도 이 세대적 기억이 놓여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다. 물론 게임은 여전히 과몰입, 확률형 아이템, 사행성 논란과 함께 이야기된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은 e스포츠, 캐릭터 IP,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 교육 콘텐츠와 연결되며 문화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서도 최근 1년간 게임 이용률은 50.2%로 나타났다. 이용률 자체는 하락했지만, 이는 게임이 일상적 여가의 하나로 자리 잡은 이후 이용 방식과 접점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읽을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기업 전략이다. 박물관은 기업의 과거를 정리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미래 이미지를 설계하는 공간이다. 넷마블에게 박물관은 게임을 세대 간 소통의 문화자산으로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넥슨에게 뮤지엄은 자사의 IP를 단순한 상품 목록이 아니라, 플레이어와 함께 축적해 온 기억의 체계로 재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다시 말해 박물관은 기업의 사회공헌, 브랜드 신뢰, 문화적 정당성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간이다.


사라지는 게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러나 게임 아카이빙의 의미는 기업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게임은 보존이 특히 어려운 매체다. 책이나 영화와 달리 게임은 하드웨어, 운영체제, 서버, 계정, 패치, 조작 방식, 이용자 커뮤니티에 의존한다. 같은 제목의 게임이라도 어떤 버전으로, 어떤 기기에서, 어떤 업데이트 이후에 플레이했는지에 따라 경험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서버가 종료되는 순간 플레이 경험 자체가 사라진다. 게임 보존이 단순히 파일 하나를 남기는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해외에서도 이미 중요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https://gamehistory.org/87percent/

미국 비디오게임역사재단과 소프트웨어보존네트워크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출시된 고전 게임의 87%가 상업적으로 접근 가능한 상태가 아니며, 보존 측면에서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 게임이 거대한 산업이 되었음에도, 정작 과거의 게임을 정상적으로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다. 게임은 빠르게 팔리고 빠르게 사라지는 매체였지만, 이제는 그 속도 자체가 문화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점에서 게임 박물관은 단순히 오래된 기계를 모아두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기 쉬운 디지털 문화를 붙잡는 장치다. 게임의 원본 파일, 개발 문서, 콘셉트 아트, 패키지, 서버 구조, 플레이 영상, 이용자 기록, 커뮤니티 반응까지 함께 보존될 때 비로소 게임은 하나의 역사로 남을 수 있다. 게임의 역사는 결과물만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플레이하고 해석한 사람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아카이빙은 '추억 전시'가 아니라, 미래의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초 작업에 가깝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 흐름은 더 분명해진다. 닌텐도는 2024년 10월 일본 교토 우지시의 옛 생산 공장을 리노베이션해 닌텐도 뮤지엄을 열었다. 닌텐도는 이 공간을 자사가 출시해 온 다양한 제품과 놀이의 역사를 발견하고 체험하는 장소로 설명한다. 화투에서 닌텐도 스위치에 이르는 긴 역사를 하나의 문화적 서사로 묶어낸 것이다. 이는 게임 기업이 자사의 역사를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놀이 문화의 변천사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반면 같은 흐름 안에서도 결이 다른 사례가 있다.

https://www.computerspielemuseum.de/en/Museum/47-About-the-museum.htm

독일 베를린의 컴퓨터게임박물관(Computerspielemuseum)은 1997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전문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3만 5천 점 이상의 게임과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등 소장하고 있으며, 국제박물관협의회와 독일박물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닌텐도 뮤지엄이 한 기업의 헤리티지를 정리한 공간이라면, 베를린의 박물관은 특정 브랜드에 속하지 않는 게임 문화 전체를 공공의 자산으로 보존하려는 시도다. 운영 재원 역시 다르다. 베를린시의 문화투자프로그램과 독일복권기금이 상설 전시 구축을 지원했다. 게임 아카이빙이 기업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공공 문화 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선 선례다.

두 사례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한다. 닌텐도 뮤지엄이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는가"를 묻는다면, 베를린의 박물관은 "게임이라는 매체가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가"를 묻는다. 넷마블과 넥슨의 시도는 두 질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기업이 시작을 끊었다는 점은 의미 있다. 그러나 게임 아카이빙이 진정한 공공 문화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결국 민간의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베를린이 보여준 것처럼, 공공의 재원과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홍보관을 넘어 문화 인프라로
결국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게임 박물관은 기업의 브랜드 전시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공공적 문화 인프라로 확장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추억 전시를 넘어 연구자와 교육자, 개발자, 이용자가 활용할 수 있는 자료 보존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특정 기업의 성공 서사뿐 아니라 실패한 게임, 사라진 서비스, 이용자 문화, 논란의 역사까지 함께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로서의 게임을 말하려면, 빛나는 성과뿐 아니라 그 과정의 복잡한 흔적까지 함께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https://netmarblegamemuseum.org/ko/exhibition/permanent

이 지점에서 국내 게임 박물관의 과제도 분명해진다. 기업이 운영하는 박물관은 자연스럽게 자사 IP와 브랜드를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산업 전체를 균형 있게 기록하는 데에는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은 게임 아카이빙에 필요한 핵심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한 주체이기도 하다. 개발 과정의 원자료, 서비스 운영 기록, 패치와 업데이트의 이력, 이용자 반응을 분석한 자료는 대부분 게임사 내부에 남아 있다. 여기에 외부 커뮤니티와 플랫폼에 흩어진 이용자 문화의 기록까지 함께 연결될 때, 게임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 경험으로 보존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기업이 보유한 자료를 어디까지 공공적 방식으로 열고, 외부의 이용자 기록과 어떻게 연결해 해석 가능한 형태로 정리할 수 있는가에 있다. 국내 게임 박물관이 홍보관을 넘어 문화 인프라가 되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 단계의 역할을 증명해야 한다.


게임은 어떻게 역사로 남는가
게임은 이미 문화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다만 문화가 되었다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영화나 음악, 문학이 문화로 인정받아 온 과정에는 언제나 기록과 보존, 해석의 체계가 함께 있었다. 작품이 남고, 제작 과정이 정리되고, 그것을 둘러싼 관객의 경험과 사회적 반응이 축적될 때 비로소 하나의 장르는 역사로 다뤄질 수 있다. 게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게임은 기술 환경과 서비스 조건에 따라 쉽게 사라지는 매체다. 그래서 게임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낡은 기기와 패키지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술 조건, 이용자 감각, 산업 구조, 놀이 문화를 함께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일회성 전시나 기업의 성과 정리에 가두지 않는 일이다. 성공한 작품뿐 아니라 사라진 게임, 실패한 서비스, 이용자 커뮤니티와 개발 과정까지 함께 남겨질 때, 게임 박물관은 한 시대의 놀이와 기술을 보존하는 문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게임은 더 이상 지나간 놀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기술 변화의 증거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동시대 문화가 작동해 온 방식 그 자체다.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간 것은 단지 낡은 게임기가 아니라, 게임을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 문화로 바라보기 시작한 변화, 그 자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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