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부동산 시장, 클릭 한 번으로 열리는 새로운 시대 개막
딜로이트, 부동산 토큰화 시장 2035년까지 4조 달러 성장 전망
2025년, 부동산 시장이 디지털 혁명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블록체인 기반 기술이 금융 산업의 변방을 넘어 본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 탈중앙화금융(DeFi)을 거쳐, 이제 가장 고전적이고 견고하던 자산 시장 — 부동산 — 에까지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2025년 4월 딜로이트 금융서비스센터(Deloitte Center for Financial Services)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 변화를 수치로 입증한다. 글로벌 부동산 토큰화 시장이 2035년까지 4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단순히 하나의 기술 트렌드를 넘어, 실물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유동성 제약을 풀어내다
부동산은 오랫동안 '비유동성'의 대명사였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일은 천문학적 거래비용, 긴 시간 소요, 복잡한 법적 절차를 수반했다. 이로 인해 부동산은 소수의 투자자들만 접근 가능한 '닫힌 시장'이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반 토큰화 기술은 이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토큰화(Tokenization)는 부동산 등의 실물자산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쪼개어 블록체인 상에 등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토큰은 특정 실물자산의 소유권 일부를 나타내며,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토큰화된 실물자산 시장은 연평균 27%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부동산이 주요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큰화된 부채 증권, 사모 부동산 펀드, 미개발 토지 분야에서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동산 투자에 '소액 참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수백만 달러가 필요했던 시장이 이제는 몇 백 달러, 몇 천 달러 단위로 쪼개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투자자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을 넘어, 부동산 시장의 가격 형성 메커니즘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금융 안정성과 새로운 위험
하지만 토큰화는 '기회'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유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가격 변동성 또한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부동산은 '느린 가격 조정' 특성 덕분에 금융위기 속에서도 상대적 안정성을 보여왔다. 그러나 토큰화된 부동산은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시장 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경제 위기나 금융 시장 변동성이 심화될 때 부동산 토큰 가격도 주식처럼 급락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부동산 시장이 가지고 있던 '버퍼(buffer)' 역할을 약화시키고, 전통 금융 시스템과 실물 자산 시장 간의 연동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규제적 측면에서도 과제가 존재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담보권 설정 등 핵심적인 법적 절차가 오프체인(off-chain)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토큰화가 진정한 의미의 자산 이전을 실현하려면, 블록체인 상 기록이 법적 효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각국 법제도 개편을 필요로 하며,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글로벌 자산 시장의 재편
부동산 토큰화가 가져올 가장 큰 파장은 '국경'의 개방이다. 지금까지 부동산 투자는 주로 자국민이나 일부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토큰화된 부동산은 누구나, 어디서든, 클릭 한 번으로 글로벌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선진국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촉진하는 한편, 신흥국 시장에도 막대한 자본 유입을 일으킬 수 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고성장 시장들은 부동산 토큰화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 유치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대규모 자본 유입이 부동산 가격 버블을 조장하거나, 급격한 자본 유출이 금융 불안을 초래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신흥국 정부와 규제당국은 부동산 토큰화가 가져올 '양날의 검'을 신중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장 접근성을 열되,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부동산 토큰화, 글로벌 표준 전쟁의 서막
부동산 토큰화 시장은 이제 단순한 성장 단계를 넘어 ‘표준’을 둘러싼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 진입했다. 스타트업부터 전통 금융기관까지, 전 세계가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방위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INX, tZERO, Securitize가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토큰 발행과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며 시장 초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소유권 인증, 거래 정산, 투자자 보호 프로토콜을 통합 관리하며, 단순 기술 제공을 넘어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표준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JP모건과 시티은행 같은 대형 은행들도 자체 디지털 자산 거래소를 개발하며 대응하고 있다.
국내 전통 금융의 진입: SK증권과 신한투자증권(Co-opetitor)
이러한 흐름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통 금융기관들이 토큰 증권(Security Token) 등 부동산 토큰화 경쟁에 뛰어들며 주목받고 있다.
SK증권은 부동산 수익권 기반 디지털 증권(DABS) 플랫폼을 개발해 부동산 토큰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다양한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소액 분산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SK증권의 주요 경쟁자로는 신한투자증권이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부동산을 포함해 예술품 등 다양한 대체자산을 토큰화하는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자체 수탁 인프라와 거래 플랫폼을 통합 구축해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디지털 수익증권을 미래 핵심 사업 영역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 SK증권과 치열한 경쟁-협업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플랫폼 전쟁 가열: 카사코리아와 펀블(Competitor)
스타트업 영역에서도 부동산 토큰화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카사코리아는 국내 최초로 상장형 부동산 수익증권 플랫폼을 선보였다. 상장형은 거래소를 통한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한 형태를 의미한다. 카사코리아는 상업용 빌딩을 디지털 증권화해 소액 투자자를 위한 시장을 열었다. 2020년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이후, 카사코리아는 투자 대중화를 이끌며 부동산 시장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었다.
카사코리아와 경쟁하는 펀블(Funble)은 부동산 수익을 기반으로 디지털 수익증권을 발행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역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펀블은 투자자 수요에 맞춘 상품 다변화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결론: 블록체인 혁명의 실물 경제 침투
부동산 토큰화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을 만드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실물 자산의 소유 방식, 거래 방식, 자산 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혁신이 전통적 금융 상품에 국한되었다면, 부동산 토큰화는 실물 경제의 핵심 자산, 즉 '토지'와 '건물'이라는 오프라인 기반 자산군을 디지털 네트워크로 흡수하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추상적인 금융 상품이 아닌, 현실 세계의 물리적 자산까지 삼키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신호다.
이 변화는 기술 혁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부동산 토큰화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내재된 '자산 접근성의 불평등' 문제를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고액 자본을 가진 소수만이 고급 부동산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토큰화는 몇 만 원 단위의 소액 투자자에게도 동일한 자산 클래스에 대한 접근권을 부여한다. 이는 자산 소유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글로벌 투자 자본의 이동 방식을 전례 없이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기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산을 디지털 토큰으로 분할하고 유통하는 구조는 기존 부동산 시장이 가지고 있던 '완충 작용'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인 부동산 시장은 상대적으로 거래 속도가 느려 경제적 충격에 완만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보였지만, 토큰화된 부동산은 금융시장과 비슷한 속도로 심리에 따라 급격히 변동할 수 있다.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지면서, 시장 충격이 양쪽을 동시에 강타할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향후 10년, 부동산이라는 고전적 자산 카테고리는 블록체인 기술과 만나면서 그 본질적 정의를 다시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자산 소유는 물리적 등기부상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기록된 스마트 계약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자산 가격은 오프라인 거래가 아닌, 디지털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데이터 흐름의 일부로 재구성될 수 있다. 부동산과 블록체인의 만남이 순조롭게 연착륙할 경우, 자산 유동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 밖 위험 신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신중함 또한 필수적이다.
부동산 토큰화는 실물 경제와 디지털 금융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금융 상품 하나가 아닌 전 지구적 자산 소유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블록체인 혁명의 초입에 서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충격파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부동산과 블록체인이 일으키는 여파는 앞으로 수년간 금융 시스템, 자산 관리, 글로벌 경제 질서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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