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규제 완화, 웹3 산업육성 동시겨냥 전략적 행보
2025년 4월 25일, 일본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나왔다. 문부과학성의 나카하라 히로히코 전략관은 이날 회의에서 "AI가 생성한 '지브리풍' 그림은, 단순히 작풍이나 아이디어가 유사할 뿐이라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식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 발언은 오픈AI가 3월 25일 새롭게 추가한 챗GPT 이미지 변환 기능이 출시된 이후, '지브리풍' 스타일 이미지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AI로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물론 나카하라 전략관은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상 "정부 차원의 방향성을 미리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성형 AI와 스타일 모방, 보호 대상은 '표현', 자유로운 것은 '스타일'
생성형 AI는 대규모 데이터셋을 학습해 특정 스타일이나 작풍을 재현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AI가 다양한 작품 스타일을 학습하면서 특정 작가나 스튜디오의 느낌을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단순한 '아이디어'나 '스타일'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저작권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표현(expression)'만을 보호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입장을 통해 이 원칙을 재확인했다. 즉, "작풍이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 범위 안에 있으며, "구체적인 표현을 베끼는 것"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 발전을 막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법 체계를 존중하는 절충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일본이 규제를 완화하는 이유, "Web3·AI 신산업 육성"
이번 정부 견해는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선다. 일본은 이미 2022년부터 'Web3·AI 국가 전략'을 발표하고, 스타트업, 디지털 콘텐츠, 메타버스, NFT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규제 완화였다.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한다는 반성 위에, 일본은 AI·Web3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환경을 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지브리풍' 견해 발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 기반 창작 활동에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해, "AI 콘텐츠 생태계"를 조기에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창작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오히려 산업 전체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경계하고 있다.
전통 창작자와 AI 창작자 사이,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전통적인 애니메이션·만화 창작자들은 이미 AI가 자신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출해 왔다.
특히 일본처럼 '작가 개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스타일 모방도 일종의 침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표현 복제"가 아닌 한, 고유의 스타일 자체는 법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이다.
이는 창작자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창작자 층(특히 젊은 AI 활용 창작자)을 성장시키고, AI 기반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국제 경쟁력 있는 분야로 육성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스타일모방은 자유' , 하지만 표현 복제는 침해
물론 일본 정부도 무제한 자유를 허용한 것은 아니다. 나카하라 전략관은 구체적으로 "특정 장면, 구도, 캐릭터,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는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스타일모방이고, 어디부터가 표현 복제인가"라는 경계선을 어떻게 정하느냐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문제는 향후 법적 분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생성형 AI 규제 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럽연합(EU) 은 생성형 AI에 대해 출처명시, 학습데이터 제한 등 강력한 규제안을 준비 중이다. 미국 은 사안별로 탄력적으로 판단하지만, "상당한 유사성(substantial similarity)"이 인정될 경우 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이번 입장을 통해, "AI 창작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차별화된 노선을 분명히 했다.
이런 노선은 향후 일본이 Web3·AI 창작 산업에서 국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일본, '창작 자유국가'를 향해 내달리나
일본은 이번 견해를 통해 '창작 자유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AI·Web3 기반의 디지털 창작 스타트업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급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통 창작자와 AI 창작자 간의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면 '콘텐츠 생태계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앞으로 일본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통해 글로벌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기존 창작자의 권익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신(新) 저작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균형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AI·Web3 전략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다.
'지브리풍' 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일본 정부가 밝힌 ‘지브리풍 AI 그림 저작권 침해 불인정’ 견해는, 단순한 법적 해석 그 이상이다.
이는 일본이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준비하는, "Web3·AI 시대 글로벌 창작 패권"을 향한 전략적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갈등과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창작의 자유"라는 무기를 들고 AI 시대의 거대한 전환기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지브리풍' 논란은 어쩌면, "AI 창작 자유국가= 일본"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첫 장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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