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이미지, 텍스트, 예술작품의 공공 자산이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났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예술가의 손을 거친 문화유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러한 자유가 작가를 지우고, 플랫폼을 부자로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할까?'
법은 끝났지만, 윤리는 이제 시작이다
퍼블릭 도메인은 법적으로 저작권 보호가 만료된 콘텐츠이지만, 그 자유는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14조 제2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저작자의 사망 후에도 그 저작물 이용은, 생존 시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해야 한다.”
법의 보호는 끝났을지 몰라도,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문화적 맥락에 대한 예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퍼블릭 도메인을 사용할 때, 단순히 '자유롭게'가 아니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
‘공유에는 윤리가 필요하다’는 말은 단순한 도덕적 외침이 아니다. 이는 문화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원칙이다.
퍼블릭 도메인을 다룰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네 가지 윤리 원칙이 있다.
이 네 가지는 법이 강제할 수 없는, 그러나 문화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공공에서 얻었다면, 공공에 돌려줘야 한다
퍼블릭 도메인에서 이익을 얻었다면, 그 일부는 반드시 다시 공공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본 원리다.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자유는 누군가의 창작과 시간이 쌓인 결과이며,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이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공공 자산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몇 가지 실질적인 환원 모델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퍼블릭 도메인 기반 NFT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비율을 디지털 아카이브나 문화유산 보존에 자동 기부하는 구조가 있다. 이는 예술을 수익 모델로 활용하면서도 그 가치를 다시 사회에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또한, 이미지 플랫폼이 콘텐츠 업로드 시 자동으로 작가명, 창작 연도, 출처 등 메타데이터를 연동하도록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순한 기술적 기능이지만, 이는 창작자 지우기를 방지하고 문화적 맥락을 보존하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윤리적 기준을 충족한 활용 사례에 ‘퍼블릭 공유 인증마크(Public Use Certified)’를 부여하는 제도도 검토할 만하다. 이는 단지 홍보용 라벨이 아니라, 공유 자산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문화적 신뢰의 증표가 될 수 있다.
결국, 공공 자산을 통해 이윤을 얻었다면 그 일부는 공공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는 단지 공정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디지털 공유지의 윤리적 기반이다.
문화기관도 ‘자유’와 ‘기준’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퍼블릭 도메인을 둘러싼 논의에서 종종 간과되는 축이 있다. 바로, 공공의 콘텐츠를 보존하고 제공하는 문화기관과 교육 플랫폼의 윤리적 역할이다.
“자유롭게 사용하세요”라는 한 줄 안내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공공성은 ‘접근의 개방’뿐 아니라 ‘사용의 책임’을 함께 안내할 때 완성된다.
대표적인 국외 사례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의 ‘Open Access’ 정책이다. 이들은 소장품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누구나 자유롭게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개방했지만, 그 사용 방식에 대한 가이드도 함께 제공한다. 이미지 다운로드 시 작가명, 창작 시기, 문화적 배경 등의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콘텐츠를 사용할 때는 ‘감사의 문구’를 삽입할 것을 권장한다.
이는 퍼블릭 도메인을 단순한 ‘무료 리소스’가 아닌, 역사적 맥락이 담긴 문화 자산으로 존중하게 만드는 실질적 장치다.

국내에도 이에 상응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공공누리’ 제도다.
공공누리는 저작물의 이용 조건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출처 표시 및 상업적 이용 가능 여부 등을 체계적으로 명시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자신이 접근한 자료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화기관은 단지 콘텐츠의 소유자나 보관자가 아니라, 공공 콘텐츠의 윤리적 해설자이자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퍼블릭 도메인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유가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선, 문화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퍼블릭 윤리’를 위한 사회적 설계가 필요하다
이제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퍼블릭 도메인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기반이 시급하다:
퍼블릭 도메인은 모든 창작자와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의 ‘공유지’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공 자산으로 유지되기 위해선, 단순히 법적 자유가 아니라 윤리적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퍼블릭 도메인, 문화의 ‘무주택자’를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퍼블릭 도메인은 누구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모두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것을 먼저 선점한 이들이 디지털 자산으로 사유화한다면, 퍼블릭 도메인은 더 이상 '공공의 것'이 아니다.
“공짜로 쓸 수 있다는 말은, 누군가의 시간과 삶이 공공에 기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 기술보다 더 필요한 것은 태도다. 공공의 자산은 공동체의 신뢰 위에서만 존속할 수 있다.
책임 있는 공유가 바로, 진짜 자유다. 퍼블릭 도메인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문화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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