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노동자’의 꿈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기술의 상징에서 투자자 외면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2025년 1분기 글로벌 로보틱스 투자 흐름은, 기술적 한계와 수익화 실패로 인해 휴머노이드를 고부가가치 특수 영역에 한정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산업의 미래’가 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투자 흐름이 보여주는 경고
2025년 1분기,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에 투자된 자금은 약 22.6억 달러. 그러나 그 중 70% 이상이 물류·의료배송·시설 점검 등 단일 업무에 특화된 스페셜라이즈드 로봇에 집중됐다. 반면, 인간형 다기능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투자 비중이 현격히 낮았다.
이는 로봇 산업이 더 이상 ‘범용성’보다는 즉시 적용 가능한 실용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이며, 휴머노이드의 상업화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반영한다.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수십 개의 액추에이터와 수십여 종의 센서를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술적 복잡성은 실험실을 벗어나 공장·물류·서비스 현장의 까다로운 속도·안정성·내구성 요구를 동시에 충족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Agility Robotics의 ‘Digit’은 물류창고에서 박스 집기·운반 등 반복 작업 시연에 성공했으나, 공식 사양상 완전 충전 시 약 1~2시간만 연속 운용이 가능해 실제 현장에서는 배터리 교체나 충전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국제 안전 규격과 각국의 인증 절차가 여전히 정비 중이다.
ISO 13482:2014(개인 돌봄·서비스 로봇 안전기준)는 제정되었다. 하지만 고도 자율 휴머노이드에 대한 구체적 인증·테스트 프로세스는 불완전 수립 단계로, 채택·실증 단계가 지연되는 중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대규모 상업 배치를 결정하기 전에 통과해야 할 안전·규제 리스크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R&D는 치솟고, 수익은 아직
주요 휴머노이드 개발사들은 설계 단계부터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Figure AI는 2024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6억 7,500만 달러를 조달했으며, Beyond Imagination 역시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Apptronik은 프로덕션 확대를 위해 3억 5,000만 달러를 확보했다.
하지만 한 대당 제작 비용이 수십만 달러로 추정되면서 생산비용이 전체 판매가의 과중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 같은 높은 단가 구조는 기업들이 투자 회수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실험실 단계를 넘어서는 대규모 상용배치를 지연시키는 주요 장애물로 작용한다.
2025년 1분기 글로벌 로보틱스 투자 시장의 움직임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단가가 10만 달러 이하로 하락하고, 대량 생산이 안정화되길 기대하는 추세이다. 그 전까지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고부가가치 R&D와 특수 서비스 영역에 머무를 것이라 시장은 판단하고 있다.
운영의 효율성 문제: 고성능이냐, 지속성이냐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축 관절 제어와 고성능 센서 융합을 위해 대량의 전력을 소모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예컨대 Boston Dynamics의 Atlas는 3.7 kWh 배터리로 혼합 작업을 수행할 때 최대 1시간가량만 연속 운용할 수 있다. Spot 로봇은 완전 충전 기준 약 90분 연속 작동에 그친다. 이러한 배터리 제약은 중부하 작업일수록 운용 시간을 더욱 단축시키며,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연속 가동률 유지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물류 창고용 AGV나 의료 배송 로봇 등 스페셜라이즈드 기기는 엣지 AI 기반 전력 관리 최적화와 경량화 설계를 통해 한 번 충전으로 최소 8시간 이상 연속 운용이 가능해 휴머노이드 대비 5배 이상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휴머노이드를 현장에 배치할 경우 잦은 배터리 교체나 충전 스테이션 복귀가 필수적이다.
Atlas와 Spot은 완전 방전 후 재가동까지 1.5~2시간의 충전이 소요된다. 이는 충전 설비 투자와 생산성 중단에 따른 운용 비용을 증가한다. 반면, AGV는 작업 중 짧은 휴지 시간마다 5~10분 내외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회 충전(opportunity charging)’ 방식을 도입해 비교적 지속 운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서비스별 운영 효율성 차이는 휴머노이드가 상용 자동화 시장에서 수익화 모델을 확립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범용’ 대신 ‘특수’
시장과 투자자들은 범용 휴머노이드의 ‘만능성’보다 검증된 ‘효율성’에 집중하고 있다.
2025년 1분기 글로벌 로보틱스 투자액 중 70% 이상이 단일 업무에 특화된 스페셜라이즈드 로봇에 유입되었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빠른 상용화와 명확한 수익 모델을 갖춘 설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휴머노이드는 높은 R&D 비용과 실환경 적응성, 규제 충족 문제 등으로 대규모 상용 수익화를 입증하지 못함에 따라 고급 연구·개발 단계에만 집중된다.
스페셜라이즈드 로봇이 제조·물류·헬스케어 자동화의 주류로 자리 잡는 동안, 휴머노이드는 재난 구조, 고난도 외과 수술 지원, 우주·원자력 시설 점검 등 고부가가치 R&D 및 특수 서비스 영역으로 전략적 편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방향성은 개발 기업들이 고가 기술의 효용을 입증할 수 있는 제한된 시장에서 우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다층적 제약에 갇힌 휴머노이드 상용화
휴머노이드 로봇은 만능 자동화의 상징이지만, 현실 무대에선 다층적 제약에 발목이 잡혀 있다.
기술 경쟁을 위해 투입된 천문학적 R&D 예산과 복잡한 메카트로닉스 설계는 제작 단가를 끌어올렸고, 배터리 소모량·가동 시간·안전·규제 압박이라는 사슬에 묶여 대규모 상용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장과 투자자는 이른바 ‘고난도 특화’ 영역에서만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치를 찾고 있다. 재난 구조·외과 수술 보조·우주·원자력 점검 같은 고부가가치 사례에 국한된 채, 전통 제조·물류·헬스케어 자동화 시장은 검증된 효율성과 명확한 ROI를 제공하는 스페셜라이즈드 로봇이 계속해서 주도권을 쥘 전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넓은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작 단가를 수만 달러 이하로 낮출 대량 생산 구조를 갖추고, 배터리·에너지 관리를 혁신 및 통일하고, 고도 자율 휴머노이드 로봇에 걸맞은 안전·인증 프레임워크를 완비할 필요가 있다.
휴머노이드가 넘을 세 가지 문턱
휴머노이드 로봇이 진정한 산업 자동화의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최소 세 가지 핵심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제작 단가의 혁신이다. 현재는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한 대당 제작 비용이 고비용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대규모 상업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지목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며, 가격 또한 수만 달러 이하로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둘째는 에너지 효율과 배터리 관리의 고도화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축 관절과 고성능 센서로 인해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이면서도 저전력을 구현할 수 있는 액추에이터 기술 개발이 시급하며, 동시에 작업 중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기회 충전(opportunity charging)’ 방식의 도입과 같은 자율 충전 시스템의 상용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성 확보와 규제 체계의 정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일부 국제 표준은 존재하지만, 고도 자율을 구현하는 휴머노이드에 적용할 수 있는 정교한 인증 프레임워크와 실증 절차는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국제적 합의에 기반한 통일된 안전 기준과 현장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신뢰성 검증 체계가 마련되어야만, 기업들은 보다 자신 있게 시장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이처럼 휴머노이드의 산업적 도약은 단순한 기술 고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작, 에너지, 안전이라는 세 축의 균형 있는 진전이 이뤄질 때, 비로소 인간형 로봇은 실험실 밖의 진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신화가 산업의 현실을 만나기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은 한때 모든 산업을 바꿀 기술로 주목받았지만, 현재는 엄격한 현실 검증의 문턱에서 좌절 중이다.
기술은 존재하지만, 비용, 규제, 운영 효율성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해결되지 않는 한, 휴머노이드는 여전히 ‘연구소의 영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제 로봇 산업은 ‘누가 가장 인간 같은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는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범용성보다 전문성이, 신기함보다 실용성이 승부처가 된 시대.
휴머노이드가 진정한 산업 파트너로 거듭나기 위해선, 현실의 요구에 맞는 전략적 축소와 기술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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