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중심 전략, ‘애플다운 선택’이 될 수 있을까
AI 리더십 교체…시리의 미래는 애플의 미래다
애플이 인공지능(AI) 전략의 전면적인 개편에 착수했다. 시리(Siri) 프로젝트의 리더십 교체, 로보틱스 부서와의 통합, 그리고 AI 조직의 해체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닌, 기술 패러다임 전환의 서막으로 읽힌다.
AI 대전환기에 접어든 글로벌 테크 시장에서 애플이 택한 방향은 경쟁사들과 극명하게 갈린다. 메타, xAI, 구글이 플랫폼 중심의 AI 전략을 강화하는 가운데, 애플은 제품 중심의 기능 통합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조직 개편은 혁신의 아이콘이란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일 수 있다.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서, 애플이 AI 분야에서의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일을 착수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지속된 ‘AI 후발주자’ 비판… 애플의 내부 위기감
“시리는 정말 스마트한가?”
애플의 음성비서 시리는 오랫동안 사용자 경험의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챗GPT(OpenAI), 제미나이(Google), 알렉사(Amazon) 등 경쟁 제품들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자연어 처리, 맥락 이해, 자가 학습 등 최신 AI 기능이 결여된 시리는 여전히 제한된 명령어와 반복적인 응답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다.
내부에서는 AI 부서를 비꼬아 “AIMLess(목표 없는)”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였다. 애플은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 2025년 3월, 시리의 대대적인 개선을 예고했고, 조직 전면 개편을 통해 본격적인 변화를 선언했다.
AI 리더십 교체… 팀 쿡의 선택
이번 개편의 핵심은 존 지안안드레아의 퇴장과 마이크 록웰의 등장이다. 시리 개발 총괄이었던 지안안드레아는 팀 쿡의 신임을 잃고 물러났고, Vision Pro 개발을 이끌던 록웰 부사장이 새로운 리더십을 맡았다. 동시에 AI 전담 부서는 해체되고, 기능별로 각 제품 조직에 분산 배치됐다.
이는 애플이 AI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키우기보다는, 아이폰, macOS, iOS, 비전 프로 등 기존 하드웨어 중심 생태계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정비했다는 의미다.
즉, ‘AI 자체’보다 ‘AI가 장착된 애플 제품’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쟁사들은 AI를 ‘플랫폼’으로 본다
애플이 AI를 자사 제품에 기능적으로 통합하는 전략을 선택한 반면, 주요 경쟁사들은 AI를 독립적이고 확장 가능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기업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xAI는 AI와 소셜미디어의 융합을 통한 통합 플랫폼 전략을 추진 중이다. 현재 200억 달러(약 27조 원)에 이르는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며, 이는 OpenAI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의 AI 스타트업 자금 조달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xAI는 단순 기술 개발을 넘어 AI 자체를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있다.
메타(Meta)는 메타버스 전략의 수정과 함께, Reality Labs 부문을 중심으로 XR(확장현실) 기술의 정교화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4분기 이 부문은 4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후 메타는 하드웨어 중심의 수익 모델에서 AI 기반 콘텐츠 생태계 고도화로 전략을 이동하고 있다.
구글은 자사의 다목적 생성형 AI ‘Gemini’를 중심으로, 검색, 문서, 이메일 등 생산성 도구 전반에 AI를 깊숙이 내재화하며 AI 퍼스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일 제품의 개선을 넘어, 전체 서비스를 AI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는 구조다.
아마존(Amazon) 역시 AI를 스마트 홈 생태계 전반을 지배하는 플랫폼으로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음성비서 알렉사(Alexa)는 이제 단순한 스마트 스피커가 아닌, 스마트 홈의 운영체제(OS)로 재정의되고 있다. 아마존은 생성형 AI 기반의 차세대 알렉사(Alexa+)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자연어 대화, 스마트 디바이스 간 연결, 음성 커머스 기능이 통합된 AI 홈허브 전략을 강화 중이다.
2025년 5월 1일 아마존이 발표한 실적에 따르면, ‘Alexa+’는 출시 두 달 만에 사용자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전체 보급된 Alexa 기기 수(6억 대) 대비 아직은 작은 수치지만, 아마존이 지향하는 ‘행동하는 AI 에이전트’의 전환점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적자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는, 알렉사가 단순 디지털 비서를 넘어 사용자의 일상 흐름과 구매 습관을 통제하는 전략적 인터페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플은 AI를 각 제품에 내재화해 경험의 질을 높이는 기능 중심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xAI, 메타, 구글, 아마존은 AI를 생태계 중심 플랫폼으로 키우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기술 철학의 차이를 넘어, 향후 AI 생태계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근본 전략의 갈림길로 평가된다. 경쟁사들이 AI를 통해 ‘무엇을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선도권을 노리는 동안, 애플은 자사의 하드웨어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응전하고 있는 셈이다.
제품 중심 전략, ‘애플다운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애플이 선택한 ‘기능 중심’ 전략은 리스크를 줄이고 기존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애플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하드웨어 기반의 브랜드 파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iPhone과 macOS 등은 글로벌 유저 락인을 이끄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계에 AI 기능을 정교하게 얹는 방식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의 전통적 강점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자체 AI 모델의 부재, 독립형 챗봇 서비스 부재, 오픈 에코시스템에서의 영향력 부족은 애플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밀릴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어서다.
AI 경쟁의 본질은 기술보다 ‘생태계 지배력’
현대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 성능 비교를 넘어선다. AI 경쟁은 단지 기능의 우열이 아닌 플랫폼 지배권을 둘러싼 전면전이다.
누가 더 많은 생태계 데이터를 확보하는가, 누가 더 많은 개발자와 협력 생태계를 끌어들이는가, 어떤 사회적 영향력과 윤리적 입지를 갖추는가 등 이러한 요소들이 시장 지배력에 결정적이다.
애플은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내세우며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AI 윤리와 거버넌스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그 입지는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애플은 자사의 강력한 하드웨어 생태계를 기반으로 AI를 통합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반면, 아마존, 구글, 메타, xAI는 AI를 차세대 ‘운영체제’로 보고 플랫폼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성비서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사용자의 시간과 데이터, 구매 패턴, 행동 방식을 누가 설계하고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다.
애플의 내재화 전략은 폐쇄형 생태계 안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개방형 플랫폼 경쟁에서는 다소 방어적인 행보로 비칠 수 있다.
'시리의 미래는 애플의 미래다'
결국 애플의 이번 조직 개편은 “AI가 아닌, 애플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시리는 단순한 음성비서가 아니다. 애플의 기술 철학, 사용자 경험, 생태계 통합 전략이 응축된 ‘프론트엔드’이자, 향후 AI 주도 시대에서 브랜드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는 관문이다.
2026년 시리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예고됐지만, 실질적인 혁신은 2027년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애플이 다시금 기술 선도 기업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AI 전쟁은 기술, 윤리, 경제, 사회적 영향력까지 총체적 역량을 요구한다.
애플은 시리의 정체성을 다시 설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들은 이미 AI를 ‘새로운 OS’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플랫폼 간 연동과 확장을 통해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
'애플이 과연 시리를 통해 ‘애플다움’을 AI 시대에 새롭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향후 2년간 애플의 제품, 생태계, 그리고 시리의 진화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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