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순환과 생태계 재편의 가능성
게임 산업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호황’으로 비친다. 게임의 글로벌 시장 매출은 매년 증가하며, 2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대규모 해고, 스튜디오 폐쇄, 프로젝트 중단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며 업계 종사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화려한 성장 지표와 달리 실제 산업 내부에서는 ‘호황’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3년의 실상
글로벌 게임 시장 규모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해 매년 1,8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2022년 약 1,840억 달러, 2023년 1,87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25년에는 2,000억 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분명 성장세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호황’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소수의 초대형 흥행작에 집중되는 반면, 다수 프로젝트는 투자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 부문은 정체가 뚜렷하다. 시장조사기관 Sensor Tower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 수는 전년 대비 약 7% 감소했으며, 안드로이드 기반 매출은 정체 상태다.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신규 게임 판호 발급은 일부 회복되었지만 외자 게임 승인은 제한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미성년자 이용 시간 제한과 콘텐츠 검열 규제는 여전히 강력하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진출 전략을 크게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AAA 대작 개발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개발 예산은 수억 달러에 이르며, 하나의 실패가 회사 전체를 뒤흔드는 구조가 됐다. 실제로 소니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 Concord 는 출시 직후 판매 부진으로 서비스가 조기 종료되었고, 개발사 파이어워크 스튜디오가 폐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구조적 압박은 곧바로 인력 감축으로 연결됐다. 위키피디아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전세계 게임사에서 3만 5천 명 이상의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EA, 라이엇게임즈, 유비소프트, 유니티 같은 글로벌 대기업부터 엔씨소프트·넷마블 같은 한국 대형사, 그리고 수많은 중소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해고와 프로젝트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즉, 시장 총량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실패 리스크와 구조적 불안정이 심화된 지난 3년이었다. 그래서 업계 종사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호황’보다는 오히려 ‘긴장과 불확실성’에 더 가깝다.
불확실성의 확산, 안정 지향적으로
최근 3년간 게임 업계의 변화는 단순히 실적 부진이나 해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력 구조 자체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4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게임 산업에서 29세 이하 종사자 수는 2020년 약 3만 5천 명에서 2022년 2만 4천 명으로 30% 이상 감소했다. 반대로 50세 이상 종사자는 같은 기간 60%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노령화”로만 해석할 수 없다. 사실 산업 현장에는 50대 이상의 경험 많은 인력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기 프로젝트 운영, 대규모 조직 관리, 안정적 서비스 운영 등에서 이들의 노하우는 큰 자산이 된다. 문제는 이들이 늘어나는 동안 젊은 세대의 유입이 급격히 줄어들어, 업계의 연령 분포가 한쪽으로 편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다양성이 확보된 것이 아니라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세대 간 균형이 흔들리면 제작 문화 역시 보수화된다. 기획과 경영의 중심이 기성 세대 혹은 기존 집단에 집중되면서, 위험 부담이 큰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성이 검증된 후속작, 리메이크, 혹은 기존 장르의 반복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실제로 넥슨 대표가 “기존 방식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도 업계 전반이 안정 지향적 선택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겹친다. 업계는 겉으로는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력자 채용도 활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내부 기득권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구조가 강해지면서 외부 인력의 진입로가 좁아지고 있다. 그 결과 젊은 창작자가 도전할 기회는 줄고, 중장년층 역시 새로운 감각을 흡수할 통로를 잃는다. 결국 연령 편중은 창작 다양성의 결핍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고착화된 인력 구조 속에서, 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조정 수단은 결국 인력 감축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대규모 해고 사태와 구조적 변화의 맥락이 연결된다.
대규모 해고와 구조적 변화
지난 2~3년간 전 세계 게임 업계는 이례적인 규모의 인력 감축을 경험했다. 위키피디아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해고 인원은 약 35,000명 이상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22년 약 8,500명, 2023년 약 10,500명, 2024년 약 14,600명이 해고되었으며, 2025년에도 이미 7개월 동안 약 4,000명 수준의 해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집계된 최소치일 뿐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프로젝트 취소, 비공식적 구조조정, 계약직·하청 스튜디오 인력 축소 등까지 합산할 경우 실제 해고 규모가 40,000명에서 많게는 50,000명대 이상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부 LinkedIn 기반 산업 분석가들은 “기록되지 않은 인원까지 고려하면 공식 수치보다 수천에서 만 단위 이상 많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대규모 해고는 단순히 일시적 불황의 징후로만 보기 어렵다. 팬데믹 특수기에 급격히 늘어난 인력을 줄이는 조정, AI와 자동화에 따른 직무 대체, 투자자 압박 속 단기 성과 중심 구조 등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결과다. 결국 게임 회사가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은 인력 감축이기 때문에, 위기 국면마다 구조조정은 반복적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을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다. 해고는 종사자 개인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산업 전반으로 보면 기존 성장 공식이 무너지는 가운데 게임 업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신호로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지닌 인재들이 소멸되지 않고, 다시 창작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인력 순환과 생태계 재편의 가능성
단기적으로 봤을 때, 대규모 해고는 분명히 인력과 노동자 개인에게 고통을 안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인력 유출이 오히려 창작 다양성의 토양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게임업계에서 해고된 개발자들이 인디게임 스튜디오를 창업하거나 유럽·북미 등 외국 시장의 소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존 메이저 IP 중심의 균일한 콘텐츠 양산 구조가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가능하게 하려면, 제도적 안전망 및 투자 인프라, 정책적 지원이 필수다. 한국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Startup Policy 2025” 등을 통해 재창업(리-챌린지, re-challenge) 경로를 강화하고, 벤처 투자 환경에서 ‘공동 책임’(joint liability)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oreaTechDesk 또한, 정부 예산안에서 콘솔 게임 개발 지원 예산이 확대되었고, MCST(문화체육관광부)가 국내 게임업계 인력 및 서비스 게임 분야의 R&D를 포함한 콘텐츠 산업 예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즉, 해고된 인력들이 단순히 이탈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디 혹은 스타트업 생태계 등으로 순환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적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되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현실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실업 지원, 창업 및 재도전 지원 제도, 정부 및 민간 투자 유치, 후속 프로젝트와 퍼블리싱 지원 등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함께 하는 생태계를 향해
‘호황’이라는 단어는 단지 매출이나 시장 규모 수치만으로 과장되기 쉬운 표현이다. 진정한 호황은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이 조화롭게 작동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연령과 세대, 문화적 배경이 혼합될 때만 산업은 다양한 목소리와 실험적 시도를 담아낼 수 있다.
대규모 해고를 단순한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재편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다만 전환점이 될 것인지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인지는 이 변화 속에서 인재가 소멸되지 않고, 연령과 경험, 조직 규모 등의 경계를 넘어선 창작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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