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저작권 소송의 전선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논쟁의 중심은 비교적 분명했다. AI 기업이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와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 행위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가.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 등 대형 영화·TV 스튜디오가 미드저니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미드저니가 법원에 낸 새 신청서는 논쟁의 방향을 원고 쪽으로 돌린다.
미드저니는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가 자신들에게 적용하려는 기준을 스스로도 지켰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내부적으로 생성형 AI를 개발하거나, 제3자 저작물을 이용해 AI 모델을 학습하거나, AI 기반 이미지·영상 도구를 활용해 왔다면 그 사실은 공정이용 항변과 ‘부정한 손’ 항변, 즉 unclean hands 판단에 관련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미드저니는 6월 29일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담당 치안판사가 앞서 일부 증거개시를 제한한 결정이 법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사건은 디즈니 계열사와 워너브러더스 계열사가 미드저니의 이미지·영상 생성 AI가 자사 캐릭터와 저작물을 침해했다고 제기한 소송이다.
미드저니가 요구한 자료는 크게 네 갈래다. 원고들의 자체 AI 모델 개발·학습 관련 문서, 이미지·영상 생성 AI의 사용 내역, AI 정책 문서, 그리고 원고 또는 원고 측 조사자가 미드저니 서비스에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물이다.
이번 신청서의 표현은 강경하다. 미드저니는 원고들이 “공개 웹상 데이터로 AI를 학습했다는 이유로 미드저니에 광범위한 책임을 묻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들이 같은 행위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실제로 제3자 저작물을 활용해 AI를 개발하거나 내부 콘텐츠 제작에 활용했다면, 그것은 AI 학습이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저작물의 라이선스 시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원고들의 주장에 형평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쟁점은 ‘소비자용 AI’인가, ‘내부 AI’까지인가
앞서 치안판사는 미드저니의 증거개시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다만 원고들이 개발·사용한 AI 가운데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이미지·영상 출력”과 관련된 범위로 제한했다. 소비자에게 실제로 제공되는 생성형 AI 서비스와 관련된 문서라면 일부 제출할 수 있도록 했지만, 내부 연구·스토리보드·아이디어 발상·캐릭터 개발 등 비공개 용도의 AI 활용 문서는 원칙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미드저니는 이 제한이 사건의 본질을 비켜간다고 본다.
영화사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지 않는 내부 AI 도구를 개발했더라도, 제3자 이미지나 공개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에 사용했다면 그것은 업계 관행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가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아이디어 발상, 콘셉트 테스트, 스토리보드 제작, 캐릭터 실험을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했다면, 그 자체가 AI 학습과 활용에 관한 업계의 실제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드저니는 “소비자용인지 아닌지”가 공정이용 판단에서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원고들이 자체적으로 AI를 개발하면서 공개 인터넷의 이미지나 제3자 저작물을 무단으로 수집·복제했다면, 그 AI가 내부 전용이든 외부 서비스든 관련성이 있다는 논리다.
이 대목은 생성형 AI 저작권 분쟁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AI 학습의 적법성을 판단할 때 결과물이 소비자에게 판매됐는지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학습 과정에서 어떤 데이터를 가져오고, 어떤 방식으로 복제·분석·변환했는지가 더 중요한가.
미드저니의 입장은 후자에 가깝다. 내부용 AI라도 제3자 저작물을 활용해 모델을 학습했다면, 원고들이 주장하는 라이선스 시장 침해나 산업 관행 논리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원고들은 내부 AI 활용이 미드저니의 저작권 침해 여부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보고, 과도한 증거개시 요구라고 맞설 가능성이 크다. 영화·TV 스튜디오의 내부 기술 연구, 창작 실험, 제작 전략은 경쟁상 민감한 정보이기도 하다.
“원고도 같은 일을 했다면”이라는 부정한 손 항변
미드저니가 특히 강조한 법리는 ‘부정한 손’ 항변이다.
이는 형평법상 원고가 자신이 문제 삼는 사안과 관련해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행동을 했다면, 법원이 구제를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미드저니는 원고들이 자신에게 “무단 학습” 책임을 묻고 있으면서, 스스로도 유사한 행위를 했다면 이를 확인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항변을 성립시키기 위해 원고의 행위가 피고인 미드저니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줬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하느냐다.
앞선 치안판사 결정은 원고 행위가 불공정하고, 소송의 주제와 직접 연결되며, 미드저니에도 손해를 입혔다는 점까지 보여야 한다는 세 요소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원고의 AI 활용 문서가 미드저니의 부정한 손 항변에 충분히 관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미드저니는 이 기준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제9순회항소법원 판례상 부정한 손 항변은 원고의 행위가 불공정했고, 그 행위가 원고의 청구와 관련됐다는 두 요소로 충분하며, 미드저니가 별도의 직접 손해를 입증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미드저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즈니와 워너가 우리에게 ‘남의 저작물을 AI 학습에 썼다’고 소송을 걸면서, 자신들도 내부적으로 같은 방식의 AI를 만들거나 사용했다면 그 사실은 법원이 알아야 한다.”
이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별개다. 그러나 생성형 AI 저작권 소송에서 방어 전략이 더 이상 “우리 모델은 변형적이다”라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피고 AI 기업들은 저작권자의 실제 AI 활용 방식과 라이선스 전략, 내부 기술 정책까지 검증 대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프롬프트는 증거인가, 변호사의 작업물인가
두 번째 핵심 쟁점은 원고 측이 소송 준비 과정에서 미드저니에 입력한 프롬프트와 생성된 이미지다.
디즈니와 워너 측은 소장에 일부 프롬프트와 생성 이미지를 제시하며, 미드저니가 자사 캐릭터나 작품을 쉽게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드저니는 소장에 들어간 일부 사례만 볼 수 있고, 원고 측 조사자가 입력한 전체 프롬프트와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미드저니는 원고 측 조사자가 어떤 문장을 입력했고, 어떤 시도는 실패했으며, 어떤 결과물만 선택적으로 소장에 포함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정 캐릭터가 잘 생성된 사례만 제시하고, 생성이 잘되지 않은 프롬프트나 실패한 결과를 숨긴다면 배심원이나 법원이 왜곡된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선 결정은 이런 프롬프트와 결과물을 소송 대비 과정에서 만들어진 핵심 작업물, 즉 강한 보호를 받는 의견 작업물로 봤다. 변호사와 조사팀이 어떤 표현을 선택하고 어떤 결과를 소송 증거로 삼았는지는 법률 전략과 연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드저니는 이에 반발한다. “Homer Simpson, animated” 같은 프롬프트는 변호사의 법률 의견이 아니라 외부 플랫폼에 입력한 사실 정보일 뿐이며, 많아야 일반 작업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원고들이 미드저니 서비스 약관에 동의해 프롬프트와 결과물에 대한 광범위한 이용권을 부여했고, 조사자를 사실상 증인으로 지정했으며, 일부 프롬프트를 소장에 선택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에 보호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AI 소송에서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AI 서비스를 상대로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는 보통 직접 프롬프트를 입력해 결과물을 생성하고, 이를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프롬프트는 단순한 검색어가 아니다. 단어 하나, 표현 순서 하나, 파라미터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프롬프트는 단순한 입력값이면서 동시에 증거 설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원고가 성공 사례만 골라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는 생성형 AI 소송의 증거법을 새로 쓰는 문제다.
AI 저작권 소송, ‘학습 데이터’만의 싸움이 아니다
이번 미드저니 신청서는 AI 저작권 소송의 성격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단계의 질문은 “AI 모델이 저작물을 학습했는가”였다.
두 번째 질문은 “그 학습이 공정이용인가”였다.
이제는 세 번째 질문이 더해지고 있다.
“저작권자는 자신들의 저작물을 AI 학습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저작권자들이 AI 학습을 위한 라이선스 시장을 주장하려면, 실제로 그런 시장이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는지 보여야 한다. 미드저니는 원고들이 스스로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학습에 사용했다면, 이는 라이선스 시장의 실재와 시장 피해 주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영화·TV 산업이 AI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보는지, 아니면 내부 창작과 제작 효율화를 위한 도구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이번 증거개시 다툼의 배경에 있다.
디즈니와 워너는 AI가 자사 캐릭터와 프랜차이즈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AI를 활용한 시각효과, 콘셉트 개발, 번역, 더빙, 콘텐츠 추천, 제작 관리, 가상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긴장은 사실 AI 시대 콘텐츠 기업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AI는 저작권 침해의 위험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제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기업이 어느 지점까지 AI를 활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활용하는 방식과 타인이 활용하는 방식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법원의 결정이 남길 선례
미드저니의 신청은 8월 17일 심리될 예정이다. 법원이 미드저니의 손을 들어줄 경우, 디즈니와 워너는 소비자용 서비스에 한정되지 않은 내부 AI 개발·활용 기록까지 더 폭넓게 공개해야 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결정이 유지되면, 저작권자들의 내부 AI 전략은 상당 부분 소송 외부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이번 결정은 단순한 증거개시 분쟁을 넘어선다.
생성형 AI 저작권 소송에서 원고는 피고의 학습 데이터와 모델 구조를 요구한다. 피고는 원고의 AI 활용 정책과 내부 창작 시스템을 요구한다. 양쪽 모두 상대방의 기술과 데이터, 사업 전략을 들여다보려 한다.
AI 저작권 전쟁은 이제 “누가 무엇을 학습했는가”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어떤 데이터를 자유롭게 썼고, 누가 그 사용을 라이선스 시장으로 바꾸려 하며, 누가 AI를 위험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AI를 활용하고 있는가를 묻는 싸움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드저니의 신청서는 그 불편한 질문을 법정 한가운데로 끌어냈다.
“AI 학습은 침해인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구에게나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