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 비평 전통에서 본 안티 NFT 예술 실천 연구」 ,2026
강경석의 논문은 NFT를 새로운 디지털 미술 형식으로 설명하기보다, 1960~70년대 개념미술이 제기했던 소유, 진본성, 접근의 문제를 다시 검토하는 대상으로 본다. 특히 기존 연구가 NFT와 개념미술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에 주목했다면, 이 논문은 둘 사이의 이념적 단절에 초점을 맞춘다. NFT와 블록체인을 직접 사용하면서 그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는 레아 마이어스, Right-Click Save, 롭네스의 작업을 ‘안티 NFT 예술’로 묶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침과 스마트 컨트랙트, 비슷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교는 솔 르윗과 로렌스 와이너의 ‘지침’과 블록체인의 ‘스마트 컨트랙트’다.
둘 다 미리 정해진 규칙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르윗의 지침은 실행자의 해석을 허용한다. 같은 지침을 여러 사람이 실행하면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그 차이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와이너 역시 작품을 예술가가 만들 수도, 다른 사람이 만들 수도, 아예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선언하며 결정권을 수용자에게 넘겼다.
반면 스마트 컨트랙트는 해석의 여지를 줄이고 특정 조건에서 미리 정해진 결과를 자동 실행한다. 개념미술의 지침이 규칙을 통해 인간의 판단을 열어놓았다면, 스마트 컨트랙트는 규칙을 통해 판단을 코드로 고정한다.
NFT는 비물질적이지만 ‘소유의 논리’를 다시 만든다
저자는 이 차이를 ‘탈물질화’와 ‘재물질화’의 관계로 설명한다.
개념미술은 작품을 물리적 오브제에서 해방시키면서 유일한 작품을 소유하고 거래하는 미술시장의 논리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르윗의 벽화처럼 탈물질화된 작품 역시 인증서를 통해 다시 시장에 편입되었다. 중요한 점은 르윗의 인증서가 작품 자체보다 공식적으로 다시 실행할 권리를 보증했다는 것이다. 인증서가 없어도 누군가는 같은 지침으로 벽화를 실행할 수 있었다.
NFT는 반대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 토큰을 연결해 ‘원본’과 ‘소유자’를 다시 설정한다. 저자가 이를 재물질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물리적 물체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배제 가능한 소유의 구조가 디지털 영역에 다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기록하는 것과 진실은 다르다
![[논문리뷰]NFT는 정말 디지털 원본을 만드는가? 개념미술로 읽는 안티 NFT 예술](https://metax-images-bucket.s3.ap-southeast-2.amazonaws.com/articles/2026/08/nft-nft-img-1-20260830-foauwy.webp)
논문은 NFT의 진본성 주장에 ‘오라클 문제’를 끌어들인다.
블록체인은 어떤 지갑이 언제 토큰을 민팅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갑의 소유자가 실제 작품의 창작자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NFT의 이미지나 영상도 대부분 블록체인 내부가 아니라 외부 서버나 IPFS 등에 저장된다. 따라서 토큰은 남아 있어도 그것이 가리키는 콘텐츠는 변경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논문 7쪽의 ‘Oracle Problem Concept Diagram’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온체인에는 토큰과 스마트 컨트랙트가 있지만, 실제 미디어 파일과 창작자의 신원은 오프체인에 있다. 결국 기록의 정확성과 기록이 가리키는 현실의 진실성은 다른 문제다.
미술관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한 제도 권력

NFT는 갤러리나 큐레이터 없이 누구나 작품을 거래할 수 있다는 탈중앙화의 이상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작품의 검색, 노출, 인증, 거래는 오픈씨 같은 마켓플레이스에 크게 의존한다.
논문은 여기서 개념미술의 ‘제도 비판’을 미술관에서 플랫폼으로 확장한다. 과거 미술관과 큐레이터가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했다면, 오늘날에는 검색 알고리즘, 인증 배지, 인터페이스, 플랫폼 정책이 작품의 가시성과 거래 가능성을 결정한다.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장소와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안티 NFT 예술의 세 가지 전략
![[논문리뷰]NFT는 정말 디지털 원본을 만드는가? 개념미술로 읽는 안티 NFT 예술](https://metax-images-bucket.s3.ap-southeast-2.amazonaws.com/articles/2026/08/nft-nft-img-1-20260830-a5335x.webp)
레아 마이어스의 〈Certificate of Inauthenticity〉는 NFT의 인증 논리를 그대로 사용해 ‘비진품’을 인증한다. NFT가 진본성을 보증할 수 있다면 비진본성도 보증할 수 있다는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인증 자체의 권위를 흔든다. 〈Is Art〉에서는 블록체인 참여자들이 작품의 예술 여부를 계속 바꿀 수 있게 함으로써 예술의 지위를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협상되는 상태로 만든다.
Right-Click Save는 다른 방식으로 NFT의 소유 개념을 공격한다. NFT 소유자는 토큰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동일한 이미지를 언제든 복사할 수 있다. 특히 밈이 계속 복제되고 변형되는 과정 자체가 ‘디지털 이미지는 복제 가능하다’는 주장을 수행한다. 저자는 이를 와이너의 수용자 중심적 개념미술과 연결한다.
롭네스의 Trash Art와 NFT 소각은 가치와 영속성을 문제 삼는다. NFT를 접근 불가능한 주소로 보내면 소유와 거래 가능성은 사라지지만, 소각했다는 기록은 블록체인에 영구적으로 남는다. 소유는 사라지지만 소유가 사라졌다는 흔적은 남는다. 저자는 이를 라우션버그와 구스타프 메츠거의 파괴 예술 계보와 연결하며, 디지털 시대에 예술이 반드시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확장한다.
NFT 이후에도 남는 질문
이 논문의 핵심은 NFT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를 판정하는 데 있지 않다. NFT 열풍이 약해져도 디지털 예술에서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인지, 소유권과 접근권은 왜 같아야 하는지, 기술은 어디까지 진본성을 보증할 수 있는지라는 질문은 남는다.
논문에는 결론을 별도의 표로 정리하지 않았지만, 전체 논지는 세 가지 안티 NFT 전략으로 압축할 수 있다. 마이어스는 인증과 제도의 논리를 내부에서 비틀고, Right-Click Save는 복제와 공유를 수행하며, 롭네스의 소각은 소유와 영속성의 가치에 종점을 만든다.
결국 이 논문이 보여주는 것은 같은 기술적 형식이 반드시 같은 가치관을 낳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규칙, 인증, 토큰, 스마트 컨트랙트의 의미는 그 자체보다 누구에게 권한을 주고, 무엇을 희소하게 만들며, 무엇을 공유 가능하게 만드는가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