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ystematic Review on the Evolving Aesthetics of NFT Art」. 2026
Xinge Kong, Reza Moayer Toroghi
https://doi.org/10.3390/arts15050098

이미지의 미학에서 시스템·공동체·소유 경험의 미학으로

2021년 NFT 열풍을 설명하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투기였다. JPEG 파일이 수십억 원에 거래되고, 가격은 작품보다 희소성과 유명세에 반응했다. 다른 하나는 미술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블록체인이 디지털 원본, 소유권, 작가와 수집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Xinge Kong과 Reza Moayer Toroghi의 2026년 논문 「A Systematic Review on the Evolving Aesthetics of NFT Art」는 이 두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를 판정하기보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 NFT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작품’의 범위가 달라진 것은 아닌가. 저자들은 2020~2025년 연구 3,239건을 수집한 뒤 심사를 거쳐 NFT 예술의 미학을 직접 다룬 18편을 분석한다.

논문의 논점은 여기에서 출발해 ‘탈중앙화된 미학(decentralized aesthetics)’이라는 개념으로 이동한다. NFT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에서 시선을 조금씩 바깥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리뷰]NFT 예술에서 ‘작품’은 어디까지인가
[논문리뷰]NFT 예술에서 ‘작품’은 어디까지인가
[논문리뷰]NFT 예술에서 ‘작품’은 어디까지인가
그림.검토된 문헌에서 나타난 NFT 아트의 주요 미학적 특성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작품 밖으로 이동한다

기존 미학의 기본 단위는 대체로 작품이다. 색, 구성, 형식, 기술, 표현을 보고 그 안에서 미적 가치를 찾는다. 실제 NFT 연구에도 색채, 밝기, 복잡도 같은 시각적 속성을 수치화해 가격과 비교하려는 연구가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연구들을 함께 놓으면 그림이 달라진다. NFT의 가격과 선호에는 이미지 자체뿐 아니라 커뮤니티 규모, 희소성, 소유자의 정체성,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가 개입한다. PFP NFT를 구매한 사람은 이미지를 감상하는 동시에 그것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특정 집단에 가입하며, 다른 보유자와 자신의 소유 사실을 공유한다. 작품을 산다는 행동과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행동이 겹친다.

흥미로운 사례가 희소성이다. 일반적인 수집품 시장에서는 희귀할수록 가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논문이 검토한 연구에서는 희소성이 지나치면 오히려 공동체 형성을 방해해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작품이 너무 희귀하면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희소성과 사회적 규모가 충돌한다.

NFT의 가치가 물건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흔들리는 지점이다.

벤야민의 ‘아우라’가 블록체인에서 이상하게 되살아난다

NFT 연구자들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의외로 오래된 이론들을 불러온다. 칸트, 발터 벤야민, 아서 단토, 하워드 베커, 관계미학과 개념미술까지 등장한다.

특히 벤야민의 ‘아우라’가 재미있는 문제를 만든다. 디지털 파일은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전통적인 논리라면 원본의 독특한 현존은 약해진다. NFT는 파일의 복제를 막지 않는다. 대신 어느 토큰이 공식적인 소유와 출처를 가지고 있는지 기록한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는 블록체인이 디지털 작품에 새로운 종류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반대쪽에서는 NFT가 작품을 거래 가능한 금융자산으로 만들어 오히려 아우라를 더 빠르게 소진한다고 주장한다. 개념미술에서도 비슷한 역설이 생긴다. 물질적 작품에서 벗어나려 했던 ‘비물질화’의 전통이 NFT에서는 토큰의 강한 소유권과 결합한다.

NFT가 기존 미술제도를 없앴다는 주장도 논문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큐레이터 대신 플랫폼이 등장하고, 갤러리 대신 SuperRare 같은 선별형 마켓이 등장한다. 블록체인은 출처를 증명하지만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과 큐레이션은 새로운 문지기가 될 수 있다. 탈중앙화를 외치면서 다른 장소에 중심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작가는 그림을 만드는 사람에서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이 흐름은 작가의 역할도 바꾼다.

생성형 NFT에서 작가는 결과 이미지 수천 장을 하나씩 제작하지 않는다. 규칙, 변수, 알고리즘과 생성 범위를 만든다. 인터랙티브 작품에서는 관객의 행동까지 작품에 포함된다. 스마트컨트랙트가 작품의 변화나 생성 조건을 실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논문은 작가를 system designer, 즉 시스템 설계자로 표현한다. 저자의 의도는 최종 이미지에만 존재하지 않고 코드와 규칙에도 들어간다. 여기에 공동체가 추가된다. Discord나 소셜미디어에서 수집가와 관계를 만들고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유지하는 활동도 작품의 가치 형성에 영향을 준다.

그 결과 작가는 제작자, 프로그래머, 연출자, 커뮤니티 운영자의 경계에 놓인다.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도 자연스럽다. 앞으로 예술교육에서 작가에게 코딩과 플랫폼 운영, 공동체 설계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NFT라는 특정 시장이 사라지더라도 이 질문은 생성형 AI와 인터랙티브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남는다. 작가를 ‘이미지를 직접 만든 사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업이 이미 늘고 있기 때문이다.

‘탈중앙화된 미학’에서 작품은 하나의 경험 시스템이 된다

논문이 앞선 논의를 모아 제안하는 개념이 탈중앙화된 미학이다.

14쪽의 모형에서 저자들은 NFT 경험을 지각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문화적 층위로 나눈다. 지각 층위에서는 이미지보다 생성 과정과 변화가 중요해진다. 인지 층위에서는 알고리즘과 스마트컨트랙트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작품 해석에 포함된다. 정서적 층위에는 공동제작, 소유, 희소성, 가격 변동이 들어간다. 사회문화적 층위에서는 아바타와 컬렉션이 정체성과 집단 소속을 표시한다.

따라서 이 모델에서 작품은 화면에 보이는 JPEG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지 + 코드 + 소유 기록 + 거래 + 플랫폼 + 공동체 + 참여 경험이 하나의 미적 시스템을 구성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미학의 변화는 결국 작품의 경계가 넓어지는 과정이다.

이 지점이 논문의 가장 생산적인 주장이다. NFT가 훌륭한 예술인가를 묻는 대신, NFT 이후 우리가 무엇을 ‘작품’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NFT보다 오래 남을 질문

다만 이 논문의 결론을 그대로 확정하기에는 증거가 얇다. 최종 분석 대상은 18편이고 연구 상당수가 NFT 시장이 급팽창했던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들 역시 장기 추적 연구와 문화권 간 비교 연구가 부족하다고 인정한다. 더구나 방법론 부분에서는 학위논문을 제외한다고 명시했지만, 실제 분석표에는 Coppelli의 연구가 포함되어 있고 참고문헌에서는 이를 석사학위논문으로 표시한다. 선정 기준과 실제 표본 사이에 작은 불일치도 보인다.

그래서 이 논문이 입증했다고 말할 수 있는 범위는 “NFT가 새로운 미학 체계를 완성했다”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가치가 이미지 내부에서 코드, 소유, 플랫폼, 공동체와 참여로 분산되는 현상을 하나의 틀로 묶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NFT 시장보다 넓다. 생성형 AI, 게임, 메타버스, 인터랙티브 아트에서도 작품은 완성된 물체보다 행동을 발생시키는 규칙과 관계의 구조에 가까워지고 있다. NFT는 그 변화를 과장된 가격표와 함께 먼저 드러낸 실험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논문이 향하는 곳도 결국 NFT 자체보다 그 이후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