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품 시장에서의 실물자산 토큰화와 대체 불가능토큰화의 비교 연구,2026
이은미
http://dx.doi.org/10.17703/JCCT.2026.12.1.1



NFT와 RWA가 갈라놓는 예술의 두 가지 가치 질서

NFT와 RWA는 모두 블록체인을 이용해 예술을 토큰화한다. 기술의 외형만 보면 둘은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이은미의 「예술품 시장에서의 실물자산 토큰화와 대체 불가능 토큰화의 비교 연구」가 주목하는 지점은 그 안에서 실제로 무엇이 토큰화되고 있는가에 있다. NFT에서 거래되는 것은 작품과 연결된 디지털 식별과 희소성에 가깝고, RWA에서는 실물 작품에 대한 법적 소유권이나 경제적 수익권이 거래된다. 같은 ‘토큰화’라는 용어 아래 서로 다른 권리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 차이를 따라가면 NFT와 RWA의 관계를 신기술의 세대교체로 보는 관점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논문에서 NFT는 창작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문화경제를 만들고, RWA는 소유권과 규제를 중심으로 한 금융경제를 만든다. 저자는 결국 이 둘을 경쟁 모델보다 서로 다른 가치 질서를 담당하는 두 체계로 파악한다. 여기에서 논문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인 ‘공유된 아우라’와 ‘예술의 이중 경제’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논문리뷰]NFT와 RWA는 예술을 어떻게 바꾸는가: 소유권·아우라·미술시장의 새로운 토큰화
그림. NFT 거래액 추이 (출처: NonFungible.com & dappradar.com)

같은 토큰이지만 무엇을 소유하는지는 다르다

NFT를 구매하면 작품을 소유한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논문은 이 ‘소유’라는 말을 법적 소유와 블록체인상의 소유로 분리한다. 일반적인 NFT 구매자가 가지는 것은 이미지 파일 자체의 저작권이나 전통적인 의미의 물권이 아니라, 특정 디지털 대상과 연결된 온체인 인증 토큰이다. 저자는 이를 법적 소유권과 구별되는 ‘표상적 소유(representational ownership)’라고 설명한다.

이 구분은 NFT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어떤 토큰이 어느 지갑에 있는지, 언제 누구에게 이전되었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이 현실 세계의 저작권이나 작품 자체의 소유권까지 자동으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NFT가 강한 부분은 권리를 발생시키는 데 있기보다 디지털 대상의 유일성, 거래 이력, 희소성을 네트워크에서 식별하게 만드는 데 있다.

RWA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RWA의 토큰은 실물 예술품이라는 기초자산과 연결되고, 그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나 수익권 같은 법적 청구권을 수반하도록 설계된다. 따라서 블록체인만으로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을 누가 소유하는지, 누가 보관하고 보험에 가입하는지, 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작품을 매각하면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기술의 위치도 달라진다. NFT에서는 블록체인이 자산의 존재 방식을 상당 부분 구성하지만, RWA에서는 블록체인이 이미 존재하는 법적·물리적 관계를 기록하고 분배하는 인프라에 가까워진다.

표1. NFT와 RWA의 시장 구조 및 가치요인 비교
표1. NFT와 RWA의 시장 구조 및 가치요인 비교

RWA는 작품을 금융의 언어로 번역한다

논문이 RWA 구조 가운데 특히 주목하는 것은 SPV(Special Purpose Vehicle·특수목적법인) 방식이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이 작품을 직접 소유한 뒤 법인의 지분이나 작품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권리를 여러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블록체인 밖에 있는 현실의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림은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가 아니다. 화재가 날 수도 있고, 도난당할 수도 있으며, 위작 여부를 감정해야 하고, 온도와 습도가 관리되는 공간에 보관해야 한다. NFT의 스마트계약만으로는 이 일을 처리할 수 없다. 반면 SPV는 작품의 소유자이자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감정·보험·수탁·매각을 법적 절차 안에서 수행할 수 있다.

논문이 사례로 제시하는 Masterworks는 이 작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 개별 회화마다 법인을 만들고 작품을 그 법인이 보유한 뒤, 미국 SEC의 Regulation A+ 구조를 활용해 투자자들이 작품 가치 상승에 참여하도록 한다. 투자자는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는 대신 작품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예술품의 의미가 한 차례 변환된다. 회화는 그대로 미술관이나 수장고에 남아 있지만, 그 작품에서 파생된 경제적 권리는 분할되고 표준화되어 거래될 수 있다. 논문은 이 과정을 예술의 문화적 의미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문화적 가치를 ‘제도적 언어로 번역(institutional translation)’하는 과정으로 본다. 감정가, 보험가액, 보관 조건, 계약, 지분, 투자자 보호 등의 언어를 거쳐 작품은 금융 시스템 안에서도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된다.

NFT의 가격과 RWA의 가격은 서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다

논문의 표 1은 NFT와 RWA의 차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핵심은 거래 기술보다 무엇이 가격을 정당화하는가에 있다.

NFT에서는 희소성, 내러티브, 커뮤니티가 중요한 가치 요인이다. 작품을 둘러싼 관심, 작가와 컬렉터의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역사와 상징성 등이 가격 형성에 직접 관여한다. 그래서 시장 접근성도 높다. 지갑과 암호화폐가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 거래에 참여할 수 있고 온체인 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래 속도도 빠르다.

RWA에서는 다른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진다. 작품의 감정평가액, 실물 가치, 보험가액, 보관 상태와 같은 요소가 가격의 근거가 된다. 참여 과정에서도 신원 확인과 적격 투자자 심사, 법적 검증이 개입한다. 거래 속도는 느려지지만 그 대신 가격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늘어난다.

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NFT와 RWA의 차이는 ‘디지털과 실물’보다 신뢰가 만들어지는 장소의 차이에 가깝다. NFT에서 신뢰는 블록체인의 거래 기록과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다. RWA에서 신뢰는 거기에 감정기관, 보험사, 수탁기관, 법인, 금융감독기관이 추가되면서 만들어진다.

NFT의 위험이 가격 변동성과 진위 불확실성으로 제시되고 RWA의 위험이 유동성 제약과 규제 복잡성으로 제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쪽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다른 쪽은 불확실성을 제도적으로 줄이는 대신 절차와 비용을 받아들인다.

‘공유된 아우라’라는 흥미로운 역설

이 논문에서 가장 독특한 개념은 ‘공유된 아우라(shared aura)’다.

벤야민에게 아우라는 원작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지니는 유일한 현존성과 관계된다. 복제 기술이 확산되면 작품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지지만, 한 장소에 존재하는 원본의 유일성에서 비롯된 아우라는 약화된다.

NFT는 이 오래된 문제에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디지털 파일은 무한 복제가 가능하지만 블록체인 위에서 특정 토큰에 유일한 식별자를 부여함으로써 다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논문은 이를 알고리즘적 희소성과 온체인 진위성의 생성으로 본다. 물질적 유일성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네트워크가 인정하는 새로운 종류의 유일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RWA에서는 상황이 다시 달라진다. 원본 작품의 물리적 유일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대신 그 작품의 경제적 권리가 여러 사람에게 분할된다. 저자는 여기에서 아우라가 사라지는 대신 공동으로 분배될 가능성을 발견한다.

논문에서 ‘공유된 아우라’란 작품 자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뿐인 작품의 현존은 유지하면서, 그 작품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법적·경제적 자격을 다수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 명의 컬렉터가 고가의 회화를 소유하면서 문화적 상징 자본까지 독점했다면, 분할 소유 구조에서는 여러 참여자가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와 상징적 관계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이때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소유권을 분할했는데 작품의 유일성은 분할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원본을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람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저자가 Particle Collection의 뱅크시 작품 「Love Is in the Air」 사례를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물 작품 하나를 중심으로 여러 참여자가 경제적 권리와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원본과 소유자의 관계가 일대일에서 다대일로 이동한다.

예술 시장 안에 두 개의 경제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분석은 논문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예술의 이중 경제(dual economy of art)’로 이어진다.

NFT는 예술가, 컬렉터, 커뮤니티가 직접 연결되는 참여형 문화경제를 발전시킨다. 작가는 전통적인 갤러리나 경매회사를 통하지 않고 작품을 발행할 수 있으며, 커뮤니티가 작품의 가치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창작과 유통 사이의 거리가 짧아지는 방향이다.

RWA는 반대 방향에서 움직인다. 감정인, 수탁기관, 보험사, 금융기관, 감독당국이 다시 등장한다. 얼핏 보면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정신에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논문의 관심은 중앙화와 탈중앙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를 판정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종류의 가치를 거래하려 할 때 어떤 구조가 필요한지를 비교한다.

디지털 작품의 문화적 희소성을 거래하는 것과 수백억 원짜리 실물 회화의 지분을 거래하는 것은 필요한 신뢰 장치가 다르다. 따라서 NFT가 중개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RWA는 필요한 중개자의 역할을 명문화하고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예술 시장 안에 서로 다른 두 경제가 나타난다. 한쪽에서는 관심, 커뮤니티, 창작, 내러티브가 가치의 중심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정, 보험, 계약, 소유권, 수익률이 중심이 된다. 문화 자본과 금융 자본이 서로 다른 회로를 통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EU·한국의 규제가 보여주는 것은 ‘토큰의 이름’보다 권리다

논문의 표 2는 미국, 유럽연합, 한국의 규제 체계를 비교한다. 국가마다 제도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흐름이 있다. 토큰을 NFT라고 부르는가 RWA라고 부르는가보다 그 토큰이 실제로 어떤 권리를 제공하는가가 규제 판단에서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증권성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반적인 NFT는 비증권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러 사람이 수익을 목적으로 하나의 자산을 분할 소유하는 구조가 되면 증권 규제와 가까워진다. RWA가 Reg D나 Reg A+ 같은 증권 발행 절차와 연결되는 이유다.

EU 역시 순수한 비대체성 NFT와 경제적 수익권을 내포하는 토큰을 구별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예술품 토큰화를 신탁수익증권이나 투자계약증권 등의 틀 안에서 다루는 방향으로 제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표 2를 통해 드러나는 변화는 의미가 크다. 블록체인 초기에는 ‘이 토큰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질문이었다면, 제도화가 진행될수록 질문은 ‘이 토큰을 보유하면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기술적 형식보다 권리 관계가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표2. 국가별 규제 프레임워크 비교
표2. 국가별 규제 프레임워크 비교

NFT와 RWA가 결합하면 하나의 작품이 두 종류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논문의 결론은 NFT에서 RWA로의 교체가 아니다. 오히려 두 구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예술경제를 제안한다.

저자가 후속 모델로 제시하는 구조를 보면 이 아이디어가 선명하다. 하나의 실물 작품을 SPV나 신탁이 보유하고, 작품의 경제적 소유권과 수익권은 RWA 형태로 발행한다. 동시에 NFT를 통해 디지털 전시권, 커뮤니티 참여권, 로열티 분배, 특별 콘텐츠 접근과 같은 비재무적 권리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작품을 1만 개의 경제적 지분으로 분할한다고 가정해 보자. RWA 보유자는 작품 매각 시 발생하는 수익에 참여한다. 이와 별도로 NFT 보유자는 작품의 온라인 전시 행사에 참여하거나 작가 커뮤니티에 접근하고, 특정 디지털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둘러싸고 금융적 관계와 문화적 관계가 서로 다른 토큰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NFT와 RWA의 역할은 꽤 명확해진다. NFT는 작품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 강하고, RWA는 작품의 경제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분배하는 데 강하다. NFT가 문화적 참여의 인터페이스라면 RWA는 금융적 권리의 인프라가 되는 셈이다.

토큰화 이후 예술에서 달라지는 것은 ‘작품’보다 관계다

이 논문의 중요한 통찰은 토큰화를 작품의 디지털 변환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실제 작품은 그대로 존재할 수도 있다. 달라지는 것은 작품 주변에서 형성되는 관계다.

누가 작품의 진위를 증명하는가. 누가 작품을 소유하는가. 누가 작품 가치 상승의 이익을 가져가는가. 누가 작품의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는가. 누가 보관과 보험의 책임을 지는가. 블록체인은 이 질문들 가운데 일부를 자동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NFT와 RWA의 차이는 바로 이 질문들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하면서 발생한다.

NFT가 보여준 변화는 예술의 희소성을 물질에서 데이터와 네트워크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RWA는 그 다음 단계에서 실물 작품의 법적·경제적 권리를 디지털 네트워크로 가져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블록체인 예술의 중심 질문도 변화한다. 처음에는 ‘디지털 이미지가 어떻게 원본이 될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면, RWA 단계에서는 ‘하나의 원본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권리를 연결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NFT와 RWA의 결합은 예술 시장의 금융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문화적 참여권과 경제적 소유권을 분리하고 다시 조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작가, 컬렉터, 투자자, 관람자라는 기존의 역할 역시 그 과정에서 겹치기 시작한다.

이은미의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NFT와 RWA를 두 개의 블록체인 기술로 비교하기보다, 예술에서 가치와 권리가 조직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바라본다. NFT가 디지털 희소성과 커뮤니티를 통해 예술의 접근 범위를 넓혔다면, RWA는 실물 작품의 소유와 금융적 권리를 분할해 접근 범위를 넓힌다. 하나는 표현과 참여의 문을 열고, 다른 하나는 자산 소유의 문을 연다.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술의 오래된 질문 하나도 형태를 바꾼다. ‘누가 이 작품을 소유하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앞으로는 누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지며, 그 권리들은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배분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NFT와 RWA가 예술 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바로 그 질문의 이동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