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제목: 사진과 인공지능 이미지의 구도론적 간극: 관람자의 시선 이동에 대한 미학적 고찰
저자: 윤석원
DOI: https://doi.org/10.47294/KSBDA.27.3.27
윤석원의 「사진과 인공지능 이미지의 구도론적 간극: 관람자의 시선 이동에 대한 미학적 고찰」은 사진과 AI 이미지의 차이를 화면에 나타난 형식만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논문이 말하는 ‘구도론적 간극’은 피사체의 배치나 원근법, 색채 구성의 차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사진을 볼 때 관람자의 시선은 이미지 안에 찍힌 대상을 지나 과거의 한 사건으로 이동한다. 반면 AI 이미지를 볼 때 시선은 이미지 밖에 존재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프롬프트와 선택 과정으로 향한다. 두 이미지가 비슷하게 보일수록, 관람자의 시선이 향하는 장소는 오히려 더 멀어진다.
사진은 처음부터 현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논문의 출발점은 “사진은 실재이고 AI 이미지는 허구다”라는 익숙한 대립을 해체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AI 이미지에서 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사진의 역사로 돌아간다. 이 이동이 중요하다. AI 이미지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사진이 과연 언제부터, 어느 정도까지 현실의 증거였는지를 다시 묻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상사진은 인물의 실제 모습을 남겼지만, 동시에 커튼, 의상, 가구, 조명과 포즈를 통해 계급과 사회적 지위를 제작했다. 사진 속 인물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그 인물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는 스튜디오가 구성했다. 사진의 흔적성과 연출성은 촬영 이후에 결합된 것이 아니라 셔터를 누르기 전부터 함께 작동했다.
존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는 서로 다른 현실의 조각들을 결합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현실을 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정치 현실을 더 공격적으로 드러냈다. 만 레이의 레이요그램 역시 카메라 없이 빛과 사물의 접촉만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사진의 정체성을 카메라나 사실적 재현에만 묶어두기 어려워진다.
저자가 이 사례들을 호출하는 목적은 AI 이미지를 사진의 범주 안에 무리하게 포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진 자체가 이미 실재의 흔적과 의미의 구성이 충돌하는 장소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진과 AI 이미지 사이에는 분명 물리적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차이를 현실과 허구의 경계로 곧바로 번역할 수는 없다. 사진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 적은 적이 없었고, AI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미지를 꺼내지 않는다.
촬영 현장의 미장센은 알고리즘의 내부로 이동했다
논문의 핵심 개념인 ‘알고리즘적 미장센’은 AI 이미지의 제작 과정을 하나의 연출 체계로 이해하게 한다. 사진의 미장센이 피사체, 배경, 조명, 렌즈, 촬영 위치를 조정했다면 AI 이미지의 미장센은 데이터 선별, 모델 학습, 프롬프트 작성, 파라미터 조절, 출력물 선택으로 구성된다.
연출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눈에 보이는 촬영 현장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기 전의 비가시적 절차로 이동했다. 사진가는 카메라 앞의 공간을 조직했지만, AI 이미지 제작자는 확률이 작동할 조건을 조직한다. 전자에서는 사물의 위치가 중요하고, 후자에서는 데이터와 언어가 이미지의 가능성을 어느 방향으로 밀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저자는 이를 ‘계산된 시각 구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계산은 완벽하게 통제된 결과를 뜻하지 않는다. 확산 모델은 확률적으로 작동하며 동일한 프롬프트에서도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그러나 그 변동 역시 무작위의 공백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학습 데이터의 분포, 모델의 가중치,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연결 방식이 결과가 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미리 형성한다.
따라서 AI 이미지의 구도는 화면 안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인물이 중앙에 놓이고 빛이 특정 방향에서 들어오기 전에, 어떤 이미지들이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었는지, 특정 문화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어떤 시각적 관습이 모델 내부에서 강하게 연결되었는지가 구도의 조건을 만든다. 구도는 사물의 배열에서 확률의 배열로 확장된다.
이 관점에서 AI 이미지의 편향 역시 결과물에 우연히 묻어나는 오류가 아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보이는지를 결정하는 미장센의 일부다. 과거의 사진 스튜디오가 계급적 기호를 배치했다면, 생성 모델은 축적된 시각문화의 규범을 확률적 중심으로 배치한다.
관람자는 대상보다 이미지의 조건을 보기 시작한다
사진 앞에서 관람자는 흔히 “무엇이 찍혔는가”, “언제 있었던 일인가”를 묻는다. 사진 속 대상은 이미지 바깥의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사진은 ‘그것이 있었음’을 향해 시선을 밀어낸다.
AI 이미지에서는 이 방향이 달라진다. 화면 속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를 물어도 이미지 안에서 답을 얻을 수 없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무엇을 학습했는가”, “어떤 프롬프트와 선택이 개입했는가”를 묻게 된다. 시선은 재현된 대상에서 생성 구조로 이동한다.
보리스 엘다그센이 AI 이미지로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수상한 뒤 상을 거부한 사건은 이러한 이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사진처럼 보였고 사진처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제작 방식이 밝혀지는 순간 작품의 외형은 그대로인데 해석의 방향은 바뀌었다. 관람자는 두 여성의 표정과 관계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표정이 어떤 데이터와 연산을 통해 구성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미지의 의미가 외형에만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AI 이미지는 생성 조건을 모르고서는 작품의 존재 방식 자체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과거에는 제작 맥락이 이미지 해석에 추가되는 정보였다면, 이제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핵심 정보가 된다.
저자는 이 변화를 관람자가 ‘증거의 수용자’에서 ‘구성 과정의 해석자’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관람자는 더 이상 이미지가 내놓은 현실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미지가 현실감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했는지 추적한다. 보는 행위가 대상 인식에서 조건 분석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우연은 촬영 순간에서 확률 공간으로 옮겨간다
논문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사진의 우연성과 푼크툼을 AI 환경에서 다시 해석하는 대목이다. 전통적 사진의 우연은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다. 우연히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사람, 예상하지 못한 표정, 순간적으로 흔들린 옷자락이 사진가의 의도를 벗어난 흔적으로 남는다. 바르트의 푼크툼은 이러한 세부가 관람자를 갑자기 찌르는 경험과 연결된다.
AI 이미지에도 제작자의 예상을 벗어난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우연은 현실에서 침입한 사건의 흔적이 아니다. 프롬프트의 모호성, 확률적 샘플링, 잠재공간에서의 결합, 출력물을 고르는 사람의 판단이 맞물려 발생한다. 저자는 이를 ‘알고리즘적 파열’로 이해한다.
사진의 우연이 세계가 카메라에 남긴 잔여라면, AI 이미지의 우연은 계산 체계가 인간의 언어와 의도를 비껴간 흔적이다. 둘 다 완전한 통제를 방해하지만, 하나는 촬영 현장의 외부에서 들어오고 다른 하나는 모델의 내부에서 출현한다. 이 차이로 인해 관람자의 감정도 달라진다. 사진의 낯선 세부는 “그 순간 정말 저것이 있었다”는 충격을 남기지만, AI 이미지의 낯선 세부는 “왜 모델은 이런 형상을 만들어냈는가”라는 탐색을 촉발한다.
결정적 순간의 의미도 변한다. 사진가가 현실에서 포착할 순간을 기다렸다면 AI 이미지 제작자는 수많은 생성 결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결정적 순간은 시간 속에서 한 번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가능한 이미지들의 집합에서 특정 결과가 확정되는 순간으로 재배치된다.
한순간의 사진에서 여러 시간이 겹친 이미지로
사진은 특정한 시점의 빛을 포착한다. 노출 시간이 길거나 합성이 사용되더라도 사진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사건의 시간과 관계를 맺는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지나간 순간의 잔여를 보는 일이다. AI 이미지에는 그와 같은 단일한 원시간이 없다. 대신 데이터가 축적된 시간, 모델이 학습한 시간, 프롬프트가 작성된 시간, 이미지가 반복 생성된 시간, 최종 결과가 선택된 시간이 겹쳐 있다. 화면은 정지해 있지만 그 기원은 하나의 순간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AI 이미지는 과거의 흔적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의 시각적 관습이 압축된 통계적 표면에 가깝다. 특정 인물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인물을 구성한 얼굴, 조명, 의복, 사진 장르의 문법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수집되었다. AI 이미지가 ‘실재를 거치지 않는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개별 피사체와 직접 접촉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실재의 기록을 간접적으로 통과한다.
저자는 이 시간 구조를 통해 사진을 ‘있었던 것’을 보존하는 매체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을 탐색하는 발생적 매체로 확장한다. 사진의 시간축이 과거에서 잠재성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셔터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닫아 이미지로 남기지만, 프롬프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 출현할 조건을 연다.
작가의 의도는 사라지지 않고 분산된다
AI 이미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는 사실은 작가의 역할이 축소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논문은 이 문제를 ‘분산된 의도’의 관점에서 다룬다. 사진에서는 의도가 촬영 위치, 노출, 프레임과 셔터 순간에 비교적 집중된다. AI 이미지에서는 의도가 프롬프트, 참조 이미지, 모델 선택, 반복 생성, 선별, 보정과 전시 맥락에 걸쳐 흩어진다.이때 창작 주체는 완성된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낸 손이라기보다 생성 조건과 선택 과정을 조직하는 주체가 된다. 알고리즘도 독립된 작가라기보다 인간의 시각문화가 데이터로 축적되고 기술적 규칙으로 재편된 협력적 장치에 가깝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제작 과정은 자동화되지만, 이미지의 책임 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결과가 한 사람의 의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데이터의 구성, 모델의 설계, 프롬프트의 방향, 결과를 채택한 판단은 여전히 이미지의 의미를 결정한다. 의도가 여러 단계로 분산되었다고 해서 의도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람자는 각각의 단계에 어떤 가치판단이 숨어 있는지를 더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
실재는 이미지의 출처에서 해석의 사건으로 이동한다
논문이 도달하는 가장 큰 전환은 실재성의 기준 변화다. 사진의 실재성이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물리적 접촉에서 나왔다면, AI 이미지의 실재성은 관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각적·해석적 효과에서 형성된다. AI 이미지에는 촬영된 원본 사건이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람자는 이미지에서 불안, 연민, 기시감이나 역사적 분위기를 경험한다. 이 감정은 허구라는 사실을 안다고 즉시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적 기원이 없는데도 현실감이 지속되는 상태는 실재성을 흔적의 속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실재를 이미지 내부에 고정된 보증서가 아니라 이미지, 관람자, 사회적 맥락이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본다. 이때 ‘실재성 회복’은 사진이 과거에 가졌던 증거의 권위를 되찾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실재처럼 작동하는지, 누가 그것을 믿게 되는지, 그 믿음이 어떤 사회적 효과를 만드는지 밝히는 일이다.
질문도 달라진다. “이 이미지는 진짜인가”라는 질문은 “이 이미지는 어떤 현실을 작동시키는가”로 이동한다. 전자는 이미지의 출처를 검사하지만, 후자는 이미지가 관람자의 감정과 사회적 판단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추적한다. AI 이미지의 정치성과 윤리는 바로 이 작동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진의 종말보다 사진이라는 질문의 확장
이 논문에서 셔터와 프롬프트는 낡은 매체와 새로운 매체를 가르는 표지가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조직하는 두 장치다. 셔터는 세계에서 하나의 순간을 잘라내고, 프롬프트는 잠재된 시각적 가능성 가운데 일부가 출현하도록 조건을 설정한다. 사진이 흔적을 선택했다면 AI 이미지는 가능성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두 매체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에는 특정한 대상과 빛 사이의 물리적 접촉이 있고, AI 이미지에는 그 접촉이 없다. 논문의 성과는 이 차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물리적 차이가 곧바로 미학적 우열이나 실재와 허구의 절대적 경계가 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사진과 AI 이미지를 연속선 위에서 바라보면 관람자의 책임도 커진다. 이미지는 더 이상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다. 관람자는 제작 과정, 데이터의 계보, 유통 구조와 권력 관계를 함께 읽어야 한다. 시선은 화면에 머무르지 않고 화면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결국 AI가 변화시키는 것은 사진의 외형보다 사진을 믿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사진은 한때 세계가 남긴 흔적으로 권위를 얻었다. 이제 이미지는 세계의 흔적뿐 아니라 세계를 구성할 가능성, 그 가능성을 계산하는 기술, 그것을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관람자의 지각까지 포함한다. 사진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이 스스로 진실을 보증한다는 오래된 믿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