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 훈련 콘텐츠의 경쟁력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가상현실(VR)과 확장현실(XR) 기반 훈련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주로 ‘얼마나 실제처럼 보이는가’였다. 실제 현장과 유사한 공간을 만들고, 위험한 상황을 시나리오로 구현하며, 훈련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대응 절차를 익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경찰, 소방, 군, 산업안전 분야에서 XR 훈련이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는 반복하기 어렵거나, 때로는 너무 위험해 재현하기 힘든 상황을 가상환경 안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훈련은 화면의 사실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훈련자는 가상현장 안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가. 어떤 정보를 먼저 인지해야 하는가. 다음 행동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가. 훈련 과정에서 시스템은 충분한 피드백을 제공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XR 훈련은 ‘그럴듯한 시뮬레이션’에 머물 수 있다.

연세대학교 디지털미디어연구실 이상원 교수 연구팀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XR 경찰 훈련 콘텐츠를 단순한 가상현장 구현물이 아니라, 사용자의 인지와 판단, 행동을 고려해 설계해야 하는 ‘훈련 경험’으로 보고 기존 콘텐츠의 UX를 분석·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디지털미디어연구실 이상원 교수 연구팀
연세대학교 디지털미디어연구실 이상원 교수 연구

XR 훈련의 다음 단계는 더 정교한 그래픽만이 아니다. 실제 현장처럼 보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용자 경험 설계다.

XR 기반 교육·훈련 콘텐츠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찰 훈련에서는 범죄 현장 대응, 위험 인물 제압, 민원 대응, 현장 진입, 위기 상황 판단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XR로 구현될 수 있다. 소방 분야에서는 화재와 재난 대응이, 군 분야에서는 전술 훈련과 장비 조작이, 산업안전 분야에서는 추락·폭발·화재 등 고위험 상황 대응이 XR 훈련으로 개발되고 있다.

XR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위험 상황을 안전하게 반복할 수 있고, 훈련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동일한 상황을 여러 훈련자에게 반복 제공할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훈련자의 반응과 행동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교육 방식과 다른 가능성을 갖는다.

물론 XR 훈련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과 훈련 품질의 기준이 정립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동안 XR 훈련에서는 현실적인 그래픽, 공간 구현, 시나리오의 사실성, 장비 성능, 몰입감이 주요 평가 요소로 다뤄졌다. 당연히 이 요소들은 중요하다. 다만 경찰 훈련과 같은 고위험 직무훈련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훈련자가 실제 현장처럼 판단할 수 있는가"다. 경찰 현장은 정해진 절차만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다. 여러 정보가 동시에 들어오고, 위험 신호와 시민 반응, 동료의 위치, 법적 절차, 안전 확보 여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순간적인 판단이 과잉 대응을 막기도 하고, 위험을 줄이기도 한다. 따라서 XR 경찰 훈련은 사건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판단을 훈련시키는 경험이어야 한다.

UX는 흔히 앱이나 웹사이트의 사용 편의성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XR 훈련에서 UX는 단순히 메뉴가 편한지, 버튼이 잘 보이는지를 뜻하지 않는다. XR 훈련의 UX는 훈련자가 가상환경 안에서 정보를 인지하고,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이해하는 전체 경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위험 인물이 등장하는 경찰 훈련 상황을 생각해보자. 훈련자가 위험 요소를 너무 늦게 인지하면 훈련은 실제와 달라진다. 반대로 시스템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미리 알려주면 훈련자는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행동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면 자신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알기 어렵다.

즉 XR 훈련에서 UX는 훈련 효과와 직접 연결된다. 정보 제시가 부적절하면 상황 인식이 흔들린다. 조작이 어색하면 훈련자는 현장이 아니라 기기에 집중하게 된다. 피드백이 부족하면 경험은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음 행동이 불명확하면 실제 대응 역량을 기르기 어렵다.

좋은 XR 훈련은 사용자를 몰입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훈련자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사고 흐름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디지털미디어연구실은 XR 환경의 사용자 경험을 분석하기 위한 UX 휴리스틱 원칙을 개발하고, 이를 기존 XR 경찰 훈련 콘텐츠에 적용했다. 휴리스틱 평가는 사용자가 시스템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점검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이를 XR 경찰 훈련 맥락에 맞춰 적용했다.

분석의 초점은 훈련자의 경험 흐름이었다. 연구팀은 훈련에 필요한 정보가 적절한 시점에 제공되는지, 사용자의 행동에 충분한 피드백이 주어지는지, 조작과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훈련 과정에서 다음 행동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상황 변화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지, 훈련자가 자신의 판단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기존 XR 훈련이 “공간이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가”, “사건 시나리오가 얼마나 현실적인가”를 주로 물었다면, UX 휴리스틱은 “훈련자가 그 상황을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묻는다. 같은 공간, 같은 사건, 같은 훈련 목표라도 정보 배치와 피드백 구조가 달라지면 훈련 경험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기존 콘텐츠를 개선했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추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동일한 훈련 상황 안에서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더 명확히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UX를 재설계했다.

이번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현직 경찰이 평가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XR 경찰 훈련 콘텐츠는 연구자나 개발자의 관점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 현장을 경험한 경찰이 느끼는 어색함은 일반 사용자의 불편함과 다를 수 있다. 경찰 현장에는 절차, 긴장, 위험 인식, 시민 대응, 동료와의 협업, 법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연구팀은 현직 경찰이 기존 XR 훈련 콘텐츠와 UX 개선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 조작의 불편함을 넘어 더 본질적인 문제가 확인됐다. 정보가 제시되는 방식이 실제 현장 흐름과 맞는지,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지, 행동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단서가 충분한지, 시스템 피드백이 훈련자의 판단을 돕는지, 가상환경 속 사건 전개가 실제 대응 경험과 맞닿아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현직 경찰의 참여는 XR 훈련 콘텐츠 개선의 방향을 더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훈련 콘텐츠는 개발자가 보기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 실제 훈련자가 현장 대응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경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선된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더 좋은가”를 묻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연구팀은 어떤 변화가 실제 훈련 과정에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필요한 정보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지, 다음 행동을 판단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지, 시스템 피드백이 상황 이해에 도움이 되는지, 훈련 흐름이 조작 부담으로 끊기지 않는지, 훈련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더 명확히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평가 지점이었다.

이 과정은 XR 훈련 콘텐츠 개선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훈련 콘텐츠의 품질은 시나리오 수나 그래픽 수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라도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시점에 제시하며, 사용자 행동에 어떤 피드백을 주느냐에 따라 훈련 효과는 달라진다. 이처럼 XR 훈련에서 UX 개선은 단순한 사용성 보완이 아니다. 훈련자가 실제처럼 판단하도록 만드는 핵심 설계다.

이번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XR 콘텐츠의 현실성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XR 훈련에서 현실감은 오랫동안 시각적 사실성과 연결되어 왔다. 실제 공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했는가, 인물과 사물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이는가, 소리와 움직임이 얼마나 몰입감을 주는가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경찰 훈련에서 현실성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현장에서는 보이는 것보다 판단해야 할 것이 많다. 위험을 예측해야 하고, 주변 상황을 읽어야 하며, 절차와 안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시민의 반응과 동료의 위치, 거리, 소리, 물체, 감정의 변화까지 종합해야 한다. XR 훈련이 이 판단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면 화면은 실제처럼 보여도 훈련은 실제 같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XR 훈련의 현장감은 다음 단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얼마나 실제처럼 보이는가에서 얼마나 실제처럼 인지하는가로, 얼마나 사건을 잘 재현했는가에서 얼마나 현장 판단을 유도하는가로, 얼마나 몰입감이 높은가에서 얼마나 훈련 목표에 맞게 행동을 이끄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XR 훈련의 성패는 이제 그래픽의 사실성만이 아니라, 판단 경험의 사실성에 달려 있다. 경찰 훈련은 일반적인 직무교육과 다르다. 현장에서 판단이 늦거나 잘못되면 시민과 경찰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위험 신호를 놓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상황을 오해하면 과잉 대응이 발생할 수 있다. 절차를 놓치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경찰 XR 훈련에서 UX는 단순한 편의성이 아니다. 훈련자의 주의 배분, 상황 인식, 판단 품질, 행동 선택, 피드백 학습을 지원하는 안전 설계다. 좋은 UX는 훈련자를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과 유사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필요한 단서는 제공하되, 정답을 대신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 피드백은 명확해야 하지만, 훈련 중 몰입을 깨지 않아야 한다. 조작은 직관적이어야 하지만, 실제 행동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연세대 디지털미디어연구실의 연구는 이 복잡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 가능한 기준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동시에 경찰 훈련 콘텐츠에만 머물지 않는 확장 가능성도 갖는다. 소방, 군, 의료, 재난 대응, 항공, 원전, 제조 현장 등 고위험 직무훈련 분야에서도 XR 콘텐츠 개발은 늘어나고 있다. 이들 분야의 공통점은 단순 지식 습득보다 상황 판단과 행동 훈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많은 XR 훈련 콘텐츠들이 여전히 현실적인 장면 구현에 집중한다. 건물을 실제처럼 만들고, 장비를 3D로 재현하고, 사고 상황을 시나리오로 넣고, 훈련자는 정해진 절차를 수행한다. 이 방식은 기본 훈련에는 유용하지만, 고도화된 직무훈련으로 가려면 사용자의 인지와 판단, 행동 흐름까지 설계해야 한다.

앞으로 XR 훈련 시장의 경쟁력은 단순 제작 능력에서 평가·개선 능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콘텐츠가 더 몰입감 있는지보다, 어떤 콘텐츠가 실제 판단 능력을 높이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피드백 구조가 학습에 효과적인지, 어떤 정보 제시 방식이 현장 대응에 도움이 되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연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년도 문화체육관광 연구개발사업인 ‘XR 공간 반응형 콘텐츠 최적화를 위한 멀티모달 UX 평가 플랫폼 기술 개발’ 과제(RS-2024-00361757)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한때 XR과 메타버스는 주로 가상공간, 아바타, 몰입형 소셜 경험의 관점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면서 XR의 실질적 활용처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훈련이다. 훈련은 XR의 강점과 잘 맞는다. 위험한 상황을 안전하게 재현할 수 있고, 반복 훈련이 가능하며,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특히 경찰·소방·군·산업안전처럼 실제 경험이 중요하지만 위험과 비용이 큰 분야에서는 XR의 활용 가치가 크다.

다만 XR 훈련이 실제 현장에 안착하려면 단순한 기술 체험을 넘어야 한다. 헤드셋을 쓰고 실감형 공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훈련자가 어떤 역량을 기르는지, 어떤 판단을 연습하는지, 어떤 행동 피드백을 받는지 명확해야 한다. 이 점에서 연세대 디지털미디어연구실의 연구는 XR의 실용적 진화 방향을 보여준다. XR은 더 이상 보여주는 기술만이 아니다. 훈련 경험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