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상자산 붐이 불러온 역설”… 미 시민사회, ‘국가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 요구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18 10:00:26
[메타X(MetaX)] 미국 전역의 시민·환경·소비자 단체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 산업을 떠받치는 데이터센터 확산에 대해 전면적인 국가 차원의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데이터센터의 무분별한 건설이 에너지·수자원·기후·고용 구조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충분한 규제 체계가 마련될 때까지 신규 승인과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요구는 2025년 12월 8일 미 의회에 전달된 공개서한 형태로 제기됐다. 서한에는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수백 개 단체, 수백만 명의 시민을 대표하는 조직들이 공동 서명했으며, 데이터센터 확장이 “우리 세대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환경·사회적 위협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서한의 핵심 문제의식은 생성형 AI와 크립토 산업의 급성장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그 비용을 지역사회와 시민들이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향후 5년간 데이터센터가 지금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경우,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약 3천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 사용 문제 역시 심각한 쟁점으로 제기됐다. 서버 냉각을 위해 사용되는 물의 양이 급증하면서, 데이터센터가 1,850만 가구가 사용하는 물과 동일한 수준의 물을 소모할 수 있다는 분석도 포함됐다. 이는 가뭄과 기후 변화로 이미 물 부족을 겪는 지역사회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데이터센터 확산이 단순한 산업 이슈를 넘어 구조적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의 56%가 화석연료 기반이라는 점을 들어, AI 인프라 확장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기요금 상승도 직접적인 피해로 거론됐다. 서한에 따르면 미국의 전기요금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21.3% 상승했으며, 이 급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전력 수요 증가라는 분석이다. 단체들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와 중소상공인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용 문제 역시 빠질 수 없는 쟁점이다. 서한은 AI 업계 임원의 발언을 인용해, AI가 향후 5년 내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을 대체하고, 전체 실업률을 최대 20%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지만,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이들 단체는 데이터센터 산업이 사실상 규제 공백 상태에서 확장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AI와 크립토 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유로, 연방·주 정부가 환경·수자원·전력·지역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프로젝트를 승인해 왔다는 것이다.
서한은 미 의회에 대해 “지역사회, 가족, 환경,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포괄적 규제 체계가 마련될 때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승인과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라, AI 인프라의 사회적 비용을 재평가하자는 요구로 해석된다.
이번 요구는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오픈AI 등 빅테크 기업들이 초대형 데이터센터 투자를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가운데, 시민사회는 “AI 주도권 경쟁이 환경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인도·중동·동남아 등에서 ‘AI 공공 인프라’ 담론이 확산되는 것과 달리, 미국 내에서는 AI 인프라가 지역 갈등과 비용 전가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서한은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국가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 요구는 기술 발전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속도와 규모 중심의 AI 확산 모델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AI 인프라가 경제 성장과 혁신을 이끄는 동시에, 그 비용과 위험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답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다.
미 의회가 이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생성형 AI 시대의 경쟁력이 단순한 데이터센터 숫자가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정당성까지 포함하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인프라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공정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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