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특허청, AI 시대 발명자 기준 전면 재정비… “반드시 인간”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08 07:00:00
발명자 판단 기준 ‘인간의 구체적 발명 개념(conception)’으로 다시 정리
미국 특허상표청(USPTO)이 생성형 AI가 연구와 개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AI 보조 발명에 관한 발명자 규정을 전면 재정비했다. 이번 지침에서 USPTO는 발명자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AI는 발명자로 인정될 수 없다는 기존 원칙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
최근 ChatGPT, Gemini, Claude 같은 생성형 AI가 아이디어 제안부터 회로 설계, 신약 후보군 탐색까지 인간의 창의적 작업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AI가 만든 발명도 특허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확산된 상황에서, 미국은 기본 원칙을 더욱 강화하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USPTO가 이번 지침에서 강조한 핵심은 ‘발명자 판단 기준’을 다시 발명의 본질적인 개념 형성, 즉 ‘Conception’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이다. 특허 제도에서 Conception은 발명을 완전한 형태로 마음속에서 구상한 지점을 의미한다. 단순히 문제를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인 기술적 방안을 스스로 떠올려야 발명자로 인정받는다. 이 기준을 AI에 적용하면,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해줘”라고 요청하고 AI가 완성된 해법을 만들어냈다면, 그 발명은 인간의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USPTO는 AI가 제시한 결과물을 사람이 단순히 이해하거나 검토하는 것만으로는 발명자가 될 수 없으며, 문제 해결의 본질적 개념을 스스로 형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USPTO는 생성형 AI를 현미경, 분석 장비, 실험 소프트웨어와 같은 연구 도구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즉, 고도화된 도구일 뿐 스스로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AI를 이용해 발명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발명의 핵심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정교하게 구성한 주체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지침이 연구자와 기업에게 요구하는 핵심 의무다.
이번 개정 지침에는 기존의 공동발명자 판단 기준(Pannu 테스트)을 AI 보조 발명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AI는 법적 의미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 AI가 공동 발명자로 평가될 가능성 자체가 없다. AI가 관여한 발명이라도 인간 발명자끼리의 공동 발명 여부는 기존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 즉, AI는 발명자 판단에서 ‘주체’가 아닌 ‘환경 요인’으로 취급된다.
USPTO는 이번 지침이 유틸리티 특허뿐 아니라 디자인 특허, 식물 특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특히 식물 특허의 경우 “발명자가 직접 식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강조하며, AI가 대신 수행한 작업은 인간의 창작 행위로 간주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해외에서 AI를 발명자로 기재한 특허는 미국에서 우선권 주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는 다국적 기업이나 글로벌 연구기관이 국가별 규정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국제 특허 전략에서 심각한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USPTO의 조치가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개선이 아니라, AI 시대의 특허 체계를 인간 중심으로 고정하려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선언이라고 평가한다. 생성형 AI가 연구 설계를 돕고 기술 아이디어까지 생성하는 시대에, 발명자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특허 제도 전체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자들은 AI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간이 어떤 창의적 판단을 내렸는지 체계적으로 기록해야 하며, 기업은 발명 기여도를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는 R&D 문서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USPTO의 이번 지침은 AI가 발명 과정의 속도를 높이고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특허 제도는 여전히 “발명은 인간의 사고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을 흔들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성형 AI가 기술 혁신의 주도적 도구가 된 시대에도, 미국은 법적·제도적 관점에서 인간 발명자의 지위를 확고히 보호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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