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CEO들이 다시 성장 말하는 이유..."방어에서 재설계로"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1-16 11:00:00
전 세계 기업 경영자들의 시선이 다시 ‘성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Deloitte가 Fortune과 공동으로 실시한 2026년 글로벌 CEO 서베이에 따르면, 글로벌 CEO들의 경기 낙관론은 1년 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비관론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정학적 갈등과 관세, 사이버 위협이 여전히 상존하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방어 중심의 경영 기조에서 벗어나, 전략 재설계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경제를 낙관적으로 바라본 CEO 비중은 28%로, 전년(14%) 대비 두 배 증가했다. 반면 비관적 전망은 58%에서 32%로 크게 줄었다. 이는 고금리·고물가와 전쟁 리스크가 장기화됐던 2024~2025년 국면을 지나, 기업들이 점진적인 회복 신호를 감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낙관은 전면적 회복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산업과 지역별로 엇갈리는 비대칭 회복을 전제로 한 조심스러운 판단에 가깝다.
지역별로 보면 CEO들은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반면, 유럽은 완만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아시아·APEC 지역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 CEO들은 글로벌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자사와 산업 전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수출과 공급망 기반의 성장 경험, 그리고 AI·디지털 전환을 통한 생산성 개선 여지가 여전히 크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리스크 인식에서는 단기와 중장기가 명확히 구분된다. CEO들이 현재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꼽은 요인은 사이버 공격이었다. 이는 즉각적인 운영 중단과 기업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뒤를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불안, 관세 문제가 이었다. 반면 중·장기 리스크로는 지속가능성 요구와 규제 강화, 글로벌 공급망 붕괴 가능성,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부상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부담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재편을 요구하는 구조적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CEO들의 투자 전략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CEO의 38%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투자 축소 대신 선택적 투자 유지와 재배치를 택했다. 절반에 해당하는 50%는 가격 인상보다는 내부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45%는 공급망 확장과 다각화, 현지화를 동시에 추진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성장과 방어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회복탄력성을 전제로 한 ‘선별적 성장 전략’으로 해석된다.
AI 전략 역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실험적 기술이 아니라, 핵심 프로세스와 자원 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영 요소로 자리 잡았다. CEO의 41%는 AI 인프라 구축과 데이터·규제 체계 정비에 집중하고 있으며, 69%는 이미 명확한 AI 사용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윤리적 AI 문화 정착을 조직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AI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비용 절감이나 운영 효율성뿐 아니라, 직원들의 AI 활용 수준이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이는 AI 전환의 성패가 기술 도입 여부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실제 채택과 활용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이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인재 전략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재 전략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CEO들이 꼽은 것은 특정 기술 숙련도가 아니라, 성장 마인드셋과 학습 능력, 감성지능과 협업 역량,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다. 이는 기업 조직이 단일 전문성을 축적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조직으로 전환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 CEO들은 이러한 변화에 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글로벌 평균 대비 높은 낙관론과 함께, 사이버 위협과 지정학 리스크를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면서도, 공급망 재편과 비용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딜로이트의 2026년 글로벌 CEO 서베이는 하나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다. 기업들은 위기가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위기를 전제로 한 방어적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구조를 다시 설계할 준비에 들어갔다. 성장은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그 방식은 과거보다 훨씬 선택적이고 정교하다. 2026년은 경기 반등의 해라기보다, 기업 전략이 ‘적응’에서 ‘재구성’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CEO들이 다시 성장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 재설계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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