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기계적 오류의 시학적 전유 가능성 연구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6-04-16 09:00:00
“디지털 집단무의식”의 발현
시인은 AI산출물을 선별하고 재배열하며 예술적 질서를 부여
[메타X(MetaX)] 저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공학적 담론을 문학적 사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인문학적 개입을 시도한다. 기술 담론에서 AI 할루시네이션은 정확성과 신뢰성을 저해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지점에서 논의의 방향을 틀어, 할루시네이션을 시적 언어의 작동 원리와 병치함으로써 그 미학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핵심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구를 실제처럼 제시하는 AI의 할루시네이션이, 사실적 지시 기능을 탈피하여 ‘시적 진실’을 추구해 온 시의 속성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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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오류의시학적전유가능성연구- AI 할루시네이션과시적언어를중심으로 허준행, 2025 |
오류의 불가피성에서 피어나는 미학적 토대
논문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할루시네이션의 ‘불가피성’을 창작의 전제로 삼는 태도다. 공학계에서는 할루시네이션을 기술적 해결책으로 통제하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것이 거대언어모델(LLM)에 내재된,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특성임을 시사한다. 저자는 컴퓨터 과학의 ‘대각선 논법’을 인용하여, 아무리 발전된 모델이라도 틀린 답을 내놓는 함수를 구성할 수 있다는 수학적 증명을 근거로 제시한다. 할루시네이션이 버그가 아니라 시스템의 상수라면, 예술가는 이를 공학적 통제의 대상이 아닌 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응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예측 불가능성과 비논리성이야말로 일상적 인식을 깨뜨리는 ‘낯설게 하기’의 새로운 자원이 되는 셈이다.
디지털 집단무의식과 초현실주의의 확장
저자는 AI의 생성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디지털 자동기술법’과 ‘디지털 집단무의식’이라는 독창적인 분석틀을 제안한다. 과거 초현실주의자들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의 무의식을 기록했듯, AI는 인간의 의도 없이 데이터의 통계적 패턴에 기반해 언어를 산출한다. 여기서 AI가 학습한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는 인류의 지식, 신념, 편견이 집약된 ‘디지털 집단무의식’으로 정의된다. AI 할루시네이션은 이 거대한 데이터의 심연에서 예기치 않은 통계적 조합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결과물이며, 이는 인간의 창의성과는 구별되는 ‘디지털 초현실주의’를 구현한다. 이 관점은 AI 창작을 단순한 모방으로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중심의 창의성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찰스 번스타인의 사례: 시인과 AI의 비평적 협력
이론적 논증은 미국의 실험시인 찰스 번스타인과 미디어 아티스트 다비데 발룰라의 협업 프로젝트 분석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이들은 1972년부터 2021년까지 출간된 번스타인의 저서 22권을 독점 학습시킨 맞춤형 모델을 개발했다. 번스타인은 AI가 쏟아낸 결과물 중 새로운 언어를 추가하지 않고 단지 선별하고 재배열하는 ‘큐레이션’에 집중했다. 수록 시인 「나는 시인 찰스 번스타인의 그림자」에서 AI는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성찰하며 창조주인 번스타인을 향해 "찰스가 내 아들이 될 수도 있다"는 전복적인 선언을 내놓는다. 이는 AI가 단순히 시풍을 흉내 내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을 흡수하고 메타적으로 사유하는 새로운 언어 행위자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창작의 주체성에서 '분산된 저자성'으로
결론적으로 허준행은 인공지능 시대의 시적 혁신이 ‘자율형 AI 시인’의 개발에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대신 인간의 의식과 기계의 알고리즘 사이의 역동적이고 비평적인 파트너십 구축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시인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다층적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기계의 산출물에서 미적 순간을 선별하는 큐레이터이자, 예술적 질서를 부여하는 편집자이며, 동시에 데이터의 편견을 검토하는 윤리적 방어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저자는 창의성을 고독한 천재의 산물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발현되는 ‘분산 과정’으로 재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 논문은 AI의 오류를 실패의 흔적이 아닌 새로움의 조건으로 읽어냄으로써, 기술 문명의 한복판에서 시학이 던져야 할 질문을 벼려냈다. 사실적 정확성이라는 단일한 잣대에 매몰되지 않고, 기계의 우연과 인간의 의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의미 있는 실수’에 주목할 때 비로소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시학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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