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인류세 논의 분류에 의거한 ‘다중적 인류세’의 개념화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6-04-15 09:00:00
소수가 부유하고 탄소 집약적인 생활을 누리는 한국적 인류세
[메타X(MetaX)]인류세(Anthropocene)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학술 용어가 아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학적·생태적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시대를 일컫는 이 용어는, 최근 국제층서학회가 공식 지질 연대로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그 논의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한상진의 연구는 이러한 인류세 논의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서 나아가, 서구 근대성에 기반한 단일한 '지배적 인류세' 담론이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저자는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식민주의적 시간관과 불평등을 비판하며, 다중 스케일에서의 개념화인 '다중적 인류세'와 그 하위 범주로서의 '한국 인류세'라는 독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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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논의 분류에 의거한 ‘다중적 인류세’의 개념화 정채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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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논의의 사분면: 인간과 지구의 힘겨루기
저자는 인류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인간 중심주의의 정도'와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라는 두 가지 축으로 교차하여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우선 신인간중심 복원주의는 생태근대주의나 녹색성장 이론으로 대표되는데, 인간의 뛰어난 기술력과 관리 능력으로 환경 위기를 충분히 해결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를 견지한다. 반면 신인간중심 파국주의는 울리히 벡이나 해러웨이의 관점으로, 인류세의 파국적 상황을 인정하되 이를 오히려 새로운 사회적 성찰과 '해방적 파국'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의 특권을 내려놓는 흐름이 있다. 탈인간중심 복원주의는 인간을 거대한 '초객체'인 지구 시스템의 일부로 보며, 지질학적 시간성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과 복원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브뤼노 라투르 등으로 대표되는 탈인간중심 파국주의는 현대 문명의 이원론이 이미 종말을 맞이했음을 직시하고, 인간을 '대지에 묶인 자'로 규정하며 냉혹한 현실 인정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인 '지구생활자'의 등장을 예고한다. 저자는 이 중 '탈인간중심 복원주의'와 '신인간중심 파국주의'의 접점에서 행성적 위험에 대응하는 회복력 거버넌스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지배적 인류세'에 가려진 지역적 진실
기존의 인류세 담론은 모든 시공간 인식을 서구 기준으로 귀착시키는 '지구적 동시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서구 근대성의 이분법을 강화하며, 북반구가 주도해 온 식민주의적 약탈과 남반구가 겪는 차별적 피해를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는 모호한 표현 뒤에 숨긴다. 저자는 이러한 단일보편성 대신 '다원보편성(pluriversality)'에 근거한 다중적 인류세를 제안한다. 이는 인류세가 각 지역의 고유한 정치·문화·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르게 경험되고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스케일 정치의 산물이다.
한국 인류세의 궤적: 압축 성장과 탄소 불평등의 기록
저자가 구체화한 '한국 인류세'의 모습은 자본세에 비견될 만한 치열한 수탈과 성장의 기록이다. 한국 인류세의 동인은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1934년 당시 일본학자들은 이를 '조선 산업혁명'이라 칭송했으나, 정작 조선 민중의 27.5%는 굶주림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이후 1960년대 '조국근대화'의 기치 아래 전개된 수출 주도형 성장 체제는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렸으나, 그 생태적 비용은 막대했다.
수치로 본 한국의 지표는 놀랍다. 1960년부터 2018년 사이 한국의 GDP는 약 427배 성장하여 세계 경제 평균 성장세인 62배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한국은 석유 생산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2021년 기준 탄소 배출량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탄소 배출의 양극화다. 2019년 기준 한국인 1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은 14.7tCO2e이지만, 상위 1%는 180tCO2e를 배출하는 반면 하위 50%는 6.6tCO2e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인류세의 위기가 소수의 탄소 집약적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DMZ 두루미가 보여주는 '협력적 생존'의 가능성
저자는 한국 인류세의 파국적 현실 속에서도 '협력적 생존'의 실천 사례로 철원 DMZ의 두루미 이야기를 제시한다.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 먹이를 잃은 두루미들이 휴전선을 넘어 철원으로 내려온 것은, 냉전적 통제가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농민들은 논을 찾는 두루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응답했으며, 이 마주침을 통해 논은 단순한 쌀 생산 공장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가 공생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사례는 서구적 비모순법칙을 넘어 존재들 간의 복합적 관계를 긍정하는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며, 파국에 대처하는 새로운 생성적 관계의 모델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한국이 식민 지배의 경험을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룬 독특한 위상을 활용하여, 북반구와 남반구를 잇는 다중적 인류세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전 지구적 위기에 동참하는 것을 넘어, 각 지역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다원보편적 시각으로 지구 전체의 서식적합성을 증진하는 데 주도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30~50대의 전문가 그룹에게 우리가 마주한 환경 위기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닌, 역사와 정치가 얽힌 다층적인 권력 관계의 산물임을 자각하게 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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