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백악관, 90개 정책 담은 ‘AI Action Plan’ 전격 공개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7-29 11:00:00

AI 질서를 다시 그리는 기술 강국의 선언.
규제 완화, 기술 수출, 이념 중립으로 요약되는 미국의 새로운 AI 전략

2025년 7월 23일, 백악관은 “America’s AI Action Plan: Winning the AI Race”를 공식 발표했다.
총 28페이지에 걸쳐 제시된 이번 정책 로드맵은 ‘혁신 가속화’, ‘디지털 인프라 강화’, ‘국제 AI 외교 주도권 확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90여 개에 달하는 세부 정책 권고안을 담고 있다.

https://www.whitehouse.gov/articles/2025/07/white-house-unveils-americas-ai-action-plan

하지만 이 계획은 단순한 기술 진흥책이 아니다. AI를 둘러싼 글로벌 질서 경쟁에서 미국이 어떤 노선을 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 위에 국제적 협력과 규범화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그리고,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규제 완화, AI 외교, 이념적 중립성.
이제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다. 그리고 미국은 이번 플랜을 통해, 그 질서의 설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


▣ 규제 완화 → 시장 중심의 AI 혁신 촉진
America’s AI Action Plan에서 가장 먼저 강조된 축은 ‘규제의 재정렬’이다.
미국 정부는 연방 차원에서 AI 기술에 대한 사전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민간 부문의 자율적 혁신을 우선하는 시장 중심의 정책 방향을 천명했다. 이는 “기술 발전을 정부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이끄는 속도에 맞춰 정부가 지원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주요 정책 내용]
사전 인허가 최소화: AI 시스템에 대한 연방 차원의 사전 인증, 기술 심사, 등록제 도입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사후 점검 중심의 탄력적 규제체계를 적용한다. 이는 의료, 금융, 교통 등 고위험 분야에서도 신속한 도입을 위한 ‘비의무 권고’ 체계로 설정되어 있다.

주 정부 규제 완화 유도: 연방정부는 지나치게 엄격한 AI 규제를 도입한 주정부에는 기술 인프라 투자나 AI 인재 육성 자금 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방침을 언급했다. 이는 각 주가 연방 정책과 보조를 맞추도록 유도하는 전략적 수단이다.

민간 기술의 우선 수용: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AI 시스템은 가급적 민간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있는 그대로’ 도입하고, 별도의 표준이나 조달 규격 없이 시장 기술을 그대로 수용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공공조달 과정을 간소화하고, 시장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방향성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채택해온 ‘혁신 우선, 사후 규제’ 원칙과 맞닿아 있다.
기술의 잠재력을 사전에 규정하거나 차단하지 않고,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법적·행정적 대응을 가한다는 철학이다. 그리고 이는 EU가 현재 추진 중인 ‘AI Act’와 명확히 대조되는 구조다. EU는 알고리즘의 잠재 위험도를 기준으로 사전 등급을 분류하고, 고위험 AI에 대해서는 사전 허가와 기술 심사를 필수화하는 규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즉, 유럽이 ‘예방 중심의 기술 통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미국은 ‘혁신 중심의 기술 신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번 정책은 AI 산업에 대해 ‘기회의 창’을 열어주는 제도적 선언으로, 기업과 개발자 커뮤니티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진입 장벽이 대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가 ‘감독자’에서 ‘촉진자’로 전환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글로벌 AI 수출 및 외교 강화

https://www.ai.gov/

2025년 AI Action Plan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을 국제 전략 자산이자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이제 AI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동맹국과의 연대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이를 “기술 동맹 강화”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AI 외교 전략에 대한 정면 대응이기도 하다.

 ① 미국식 AI 수출 프레임워크 구축
미국은 AI 모델, API, 데이터셋 등 핵심 기술 요소에 대해 국가안보 기준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우방국에 전략적으로 공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술 판매가 아니라, 미국식 AI 윤리와 표준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오픈AI, Anthropic, Microsoft 등 주요 AI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동맹국의 정부 기관이나 공공 부문에 API 기반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전략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러한 수출의 범위에는 언어 모델, 음성 인식, 자동 번역, 시각 인식 등 다양한 핵심 기술이 포함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은 우방국을 대상으로 한 AI 수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중장기적인 기술 수출 전략을 담은 AI 수출 로드맵 가이드라인의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② 개발도상국 대상 기술 협력 확대
미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에 대해, AI 기술을 활용한 경제개발 협력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 대학과 빅테크 기업이 협력하여 현지의 AI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AWS나 Google Cloud와 같은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를 통해 국가 단위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과 기술 이전을 추진한다.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 농업 자동화, 교통 시스템 최적화 등 실용적이고 적용 가능한 공공 AI 프로젝트를 수출함으로써, 단순한 원조를 넘어선 AI 기반 인프라 수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식 기술 표준과 플랫폼을 수용하게 만드는 구조적 의존을 유도하는 방식이며, 일종의 미국판 ‘AI 일대일로’로 해석된다. 이러한 전략은 최근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AI 협력 외교에 대한 명확한 대응이자,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③ 전략적 AI 동맹 구축 강화
미국은 기존의 안보 및 기술 협의체(예: Five Eyes, QUAD, NATO 등)에 AI 협력 아젠다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특히 NATO 차원에서는 AI 기반 사이버 방어, 정보 분석, 병참 자동화 등에 대한 공동 연구가 확대되고 있으며, QUAD(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에서는 신흥 기술 윤리 가이드라인 공동 개발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최근 캐나다, 영국, 일본 등과는 AI 표준화와 리스크 평가 체계의 상호인정 협약(MRA) 체결도 논의되고 있어, 서방 중심의 기술 블록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이번 AI Action Plan을 통해 AI 기술을 단지 ‘산업 자산’으로 보지 않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하는 핵심 외교 자산으로 재정의했다. 이는 중국이 제안한 ‘글로벌 AI 협력기구’나 개발도상국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에 대한 선제적 견제이자, 기술-외교 복합 전략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미국식 AI 외교의 핵심은 윤리·표준·안보를 전면에 내세운 기술 패권 외교이며, 앞으로 AI를 둘러싼 국제 질서 경쟁은 이념보다 ‘사용권과 인프라 장악력’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 ‘이념 없는’ AI: 객관성과 중립성 중심의 기술 정책

이번 AI Action Plan에서 가장 이례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변화는, 미국 정부가 AI 정책에서 정치적·이념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AI 시스템의 공공 평가 및 정부 조달 기준에서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항목이나 기후 변화 대응성, 콘텐츠 감수성 검열, 정치적 편향 여부 등의 요소를 배제하겠다는 방침이 포함되었다. 대신 연방 차원에서는 객관적·기술적 성능, 정확도, 신뢰도, 보안성 등 순수 기술 중심의 평가 기준만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AI 개발자와 기업의 규제 부담을 줄이고, 보다 신속한 제품 상용화와 연구개발 가속을 유도하려는 정책적 선택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 정책의 정치화를 경계하는 미국식 규제 철학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접근은 최근 유럽연합(EU)의 AI 법안(AI Act)이 강조하는 ‘사회적 신뢰’, ‘인권 영향’, ‘차별 방지’ 등의 가치 기반 규제 기조나, 중국이 주장하는 ‘공공 안전’ 및 ‘사회주의 핵심 가치 기반’ AI 윤리 기준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https://www.ai.gov/

결과적으로 미국은 “정치적 중립성과 시장 친화성”을 중심에 둔 AI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자국 내 혁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AI 표준 경쟁에서 독자적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것다.


▣ ‘질서의 경쟁’에서 다시 펜을 쥐는 미국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어떤 규칙 아래, 누구의 가치에 따라 작동할 것인가가 세계 질서의 중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이 국제 질서의 도구가 된 지금, AI를 둘러싼 규범과 구조의 설계권이 국가 간 경쟁의 핵심 전선이 된 것이다.

미국이 발표한 AI Action Plan은 단지 국가 기술 전략을 넘어선다. 그것은 미국이 다시 국제 기술 질서의 설계자로 돌아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며, “기술은 자유 시장이, 규범은 민주주의가 주도해야 한다”는 철학을 재확인하는 기획이다.

이 전략은 중국이 UN 기반의 ‘글로벌 AI 협력기구’를 통해 다자주의·공공성·남반구 연대를 내세우며 AI 거버넌스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자 견제다.

미국은 ‘규제 없는 혁신’, ‘가치 중립적 기술’, ‘시장 기반의 생태계’를 내세워, AI 질서의 또 다른 버전을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진영의 디지털 질서 복원을 넘어서, AI 시대의 새로운 국제 규범 경쟁에 대한 미국식 해답이기도 하다.

이제 AI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질서의 문제다.
그리고 그 질서의 문장을 다시 써 내려갈 펜을, 미국은 쥐고 있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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