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원전’이 AI의 심장을 살린다

X 기자

metax@metax.kr | 2025-11-03 09:00:00

구글·넥스트에라, 아이오와 유일 원전 ‘듀언 아놀드’ 재가동

AI 인프라 시대의 전력 전쟁이 시작됐다. AI 데이터센터의 ‘항상 켜진 전력(always-on power)’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미국 에너지기업 넥스트에라 에너지(NextEra Energy)와 구글(Google)이 손잡고, 2020년 폭풍 피해로 폐쇄됐던 아이오와 주의 유일한 원자력 발전소 ‘듀언 아놀드 에너지 센터(Duane Arnold Energy Center, DAEC)’를 2029년 재가동하기로 했다.

600메가와트(MW)급 규모의 이 원전은 구글의 클라우드 및 생성형 AI 인프라를 위한 핵심 전력원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1974년 가동을 시작한 듀언 아놀드 원전은 45년간 아이오와 주 전력의 약 2%를 담당하던 지역 핵심 전원이었다. 그러나 2020년 여름, ‘데레초(Derecho)’라 불리는 초대형 강풍 피해로 냉각탑이 파손되며 조기 폐쇄됐다.

구글은 넥스트에라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며 “이미 완전 가동된 경험이 있는 원전을 재활성화하는 것이 대규모 원자력 전력을 가장 빠르게 확보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약으로 구글은 25년간 DAEC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구매비용을 전액 부담하며, 넥스트에라는 원전 재가동을 위한 인프라 및 기술 투자에 착수한다.

2029년 초 재가동이 목표이며, 이는 미국 내에서 사실상 최초의 ‘상업용 원전 재가동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AI는 멈추지 않는다, 전력도 그래야 한다”

AI와 클라우드 인프라의 급성장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특히 AI 모델 학습과 실시간 추론에 필요한 GPU 팜(GPU farm)은 전력소비량이 일반 서버보다 5~10배에 달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탄소중립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24시간 안정 공급 가능한 전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는 간헐성이 높아 AI 클라우드 인프라의 ‘항상 가동(Always-on)’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이에 원자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원전은 무탄소·대용량·연속 전력 공급이 가능하며, 구글의 경우 “AI의 성장은 새로운 전력 패러다임을 요구한다”고 공식 발표에서 강조했다.

넥스트에라 에너지는 미국 내 최대 재생에너지 사업자이자 원전 운영사로, 이번 재가동을 통해 ‘클린에너지 포트폴리오’에 원자력을 다시 포함시키는 전략적 전환을 택했다.

지역경제와 주민 불안 사이

듀언 아놀드 원전이 위치한 린카운티는 이미 관련 산업 인력과 설비 기반을 보유하고 있어, 재가동 시 수천 개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아이오와 주 정부도 “AI 인프라와 지역 전력산업의 동반 성장”을 공식 환영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안전성·폐기물 처리·규제 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2020년 강풍 피해 당시 냉각탑 붕괴와 연료봉 제거 과정이 지역에 충격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넥스트에라 측은 NRC(미 원자력규제위원회) 승인 절차를 거쳐 모든 설비를 최신 안전기준으로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AI 전력 식민지화’ 논란

이번 프로젝트는 기술적 도전만큼이나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원전 재가동을 주도하는 주체가 ‘공공기관’이 아닌 ‘글로벌 테크기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AI 기업이 특정 지역의 전력자원을 사실상 전유해 버릴 위험”을 지적한다. 실제로 구글의 PPA는 일반 소비자보다 훨씬 낮은 단가로 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지역 전력요금이나 전력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원전의 장기 운영 리스크를 감안할 때, 전력 인프라가 ‘AI 산업의 종속 변수’로 변하는 구조적 문제도 제기된다.

원전 르네상스의 서막인가

미국에서는 미시간주의 팔리세이즈(Palisades) 원전이 재가동을 추진 중이며, 프랑스·일본·한국 등도 중단 원전의 복귀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EDF는 2030년까지 14기의 신규·재가동 원전을 계획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신한울 3·4호기 재개 등 ‘원전 복권’ 흐름에 올라탔다.

AI 전력수요 폭증과 맞물린 이번 흐름은 사실상 ‘AI-Nuclear Alliance(인공지능-원자력 동맹)’의 세계적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원전이 AI의 ‘두뇌 공급망’이 된다

듀언 아놀드의 재가동은 단순한 지역 에너지 복원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것은 AI 인프라가 전력 시스템의 중심을 재편하는 첫 실험이자, ‘디지털 산업=전력 산업’으로 수렴해 가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의 시작이다.

향후 10년간 글로벌 빅테크들은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직접투자, AI 데이터센터 전력 자급 프로젝트, 전력망 최적화용 AI 시스템 개발 등으로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제 기업들은 ‘AI를 움직이는 전기’의 주도권을 두고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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