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게임 생태계가 직면한 과제들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10-07 07:00:00

"게임 제작의 민주화인가, 권리 침해의 시작인가"

최근 몇 년간 게임 개발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커졌다. 구글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 개발자의 87%가 이미 AI 에이전트를 워크플로우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 반복 작업의 자동화, 아트와 코드 작성 보조, NPC 대화문 생성 등, AI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여주고 있다. 특히 인디 개발사들에게는 비용 절감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긍정적 효과 뒤에는 창작 노동, 저작권, 그리고 플레이어 신뢰를 둘러싼 깊은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Tomb Raider 리마스터, 무단 AI 음성 논란                                                                                        최근 Tomb Raider IV~VI Remastered에서 발생한 무단 AI 음성 사용 사건은 게임 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발단은 팬 커뮤니티였다. 플레이어들이 일부 대사의 음색이 기존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고, 결국 해당 음성이 원래 성우의 녹음이 아니라 AI로 합성된 것임이 드러났다.

https://www.instagram.com/p/DO8LjXHDC1J/?igsh=a2xrbGpyamNpcHcw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인물은 프랑스어판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해 온 성우 '프랑수아즈 카돌(Françoise Cadol)'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AI 음성이 게임에 삽입된 사실을 확인하고, 개발사에 사용 중단 및 삭제 요구를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이어 브라질 포르투갈어판에서도 라라 크로프트 성우 레네 바스토스(Lene Bastos)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AI가 자신의 목소리를 무단으로 복제·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개발사는 논란이 확산되자 서둘러 해당 AI 음성을 삭제하는 패치를 진행했지만, 사건은 이미 업계 전반에 창작자의 권리와 AI 기술 충돌이라는 뚜렷한 경각심을 남겼다. 성우의 목소리와 연기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오랜 경험과 해석이 축적된 창작물이다. 이를 동의 없이 대체하는 행위는 단순한 기술적 편의가 아니라, 노동권 침해와 저작권 위반이라는 법적·윤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사실 이러한 갈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2023~2024년 할리우드 배우·성우 노조(SAG-AFTRA)는 파업을 통해 “AI가 배우와 성우의 목소리를 무단 모방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그 갈등이 단순히 영화·방송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게임 산업 전반에서도 현실화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AI 시대, 게임 생태계가 직면한 세 가지 과제                                                                                       이번 사건은 게임 산업 전반에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생산성 혁신의 명암이다.
AI는 이미 개발 현장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구글 조사에 따르면 게임 개발자의 87%가 AI 에이전트를 워크플로우에 활용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코드 작성 보조, NPC 대사 생성, QA 테스트 자동화, 아트 리소스 제작 등 다양하다. 이는 특히 인디 스튜디오와 소규모 팀에게 ‘게임 제작의 민주화’를 가능케 하는 긍정적 효과로 작용한다. 그러나 Tomb Raider 사건은 이런 효율성 추구가 잘못 적용될 경우 창작자 집단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우, 작가, 아티스트 등 게임 산업을 지탱해온 전문 인력이 ‘비용 절감’ 명목으로 대체될 때, 이는 단기적으로는 편익이 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저작권과 법적 공백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AI 학습 데이터와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 규정은 모호하다. 예컨대 성우의 목소리 데이터가 사전 동의 없이 학습되거나 합성되는 경우, 현행 법으로는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Tomb Raider 사례처럼 ‘무단 사용’이 확인되면 즉각적인 논란과 패치로 이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 성우가 실질적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단일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방송·게임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글로벌 과제다. 실제로 SAG-AFTRA(미국 배우·성우 노조)는 2023~2024년 파업을 통해 “AI가 배우와 성우의 목소리를 무단 모방하지 못하도록 계약과 법률로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처럼 법과 제도의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미국 배우·성우 노조'의 홈페이지: https://www.sagaftra.org/

셋째, 플레이어 신뢰의 중요성이다.
게임은 기술적 성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팬 문화, 커뮤니티, 브랜드 신뢰가 함께 작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목소리가 실제 성우의 연기와 해석을 통해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만약 그것이 AI로 대체된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브랜드와 제작사 전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Tomb Raider 사건이 단순한 패치 이슈를 넘어 국제적인 보도로 확산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팬덤은 “게임이 나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을 느낄 때, 더 큰 목소리로 반발한다. 이는 성우 산업의 문제를 넘어, 게임 IP 전체의 장기적 가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목소리를 잃는 순간, 신뢰도 무너진다
AI는 분명히 게임 개발의 미래를 바꿀 강력한 도구다. 코드 작성 보조에서 아트·대사 생성까지, 개발 효율성과 창작의 폭을 넓히는 잠재력은 이미 수많은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효율성과 권리 보호 모두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Tomb Raider 리마스터 사건은 이러한 기술이 창작자의 권리와 플레이어의 신뢰라는 두 축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성우의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 요소이며, 팬덤이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다. 팬 커뮤니티에서도 목소리는 “덕질과 팬심”의 일부로 인식되며, 이는 게임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 연구와 사례 또한, 성우의 진정성이 캐릭터 몰입과 장기적 팬덤 형성에 핵심적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따라서 AI 음성을 활용한다면, 최소한 사용 여부를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플레이어 신뢰를 지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결국 핵심은 “AI를 어디까지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과 책임 체계 속에서 사용할 것인가”다. 저작권과 노동권을 존중하면서도, 팬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AI는 혁신이 아니라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Tomb Raider 사건은 이 질문을 업계 전체에 던졌으며, 게임 산업이 앞으로 넘어서는 안 될 윤리적 경계선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METAX = 김하영 기자] 

[ⓒ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