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골프 저작권 분쟁의 전환점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3-12 07:00:00
산업 성장 뒤늦게 맞은 지식재산권 재정렬
[메타X(MetaX)] 한국 스크린골프 산업은 단순한 실내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했다. 센서 기술과 고해상도 그래픽, 3D 모델링이 결합하면서 도심 한복판에서도 실제 골프장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골프 대중화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산업이 커질수록 갈등도 함께 커졌다.
실제 골프장의 코스와 경관을 디지털로 복제해 수익을 올리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업계 1위 골프존은 골프장 운영사와 코스 설계사들을 상대로 10년 넘는 법적 공방을 이어왔고, 그 결과는 한국 저작권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중요한 판례로 남게 됐다.
스크린골프 시스템은 항공 촬영과 3D 모델링을 통해 실제 골프장의 홀 배치, 벙커와 해저드 위치, 지형, 조경 요소를 정밀하게 재현한다. 초기에는 일부 골프장들이 이를 홍보 수단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린골프 시장이 실제 골프장 시장에 맞먹는 규모로 성장하고, 스크린골프 업체들이 코스 이용료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골프장과 설계사들은 자신들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여 만든 공간이 허락 없이 상업화되고 있다고 보기 시작했고, 이 갈등은 곧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 소송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중요한 분기점은 2020년 대법원 판결이었다. 당시 소송의 핵심은 골프장 운영사가 골프존을 상대로 자사 골프 코스를 무단으로 스크린골프 콘텐츠화한 것이 불법인지 다투는 것이었다. 운영사 측은 자신들의 골프 코스가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건축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골프 코스의 창작자는 운영사가 아니라 설계자이며, 운영사가 설계자로부터 저작권을 적법하게 양도받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기서 논의를 끝내지 않았다.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부정경쟁방지법상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무단으로 이용한 행위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골프장은 부지 선정, 지형 분석, 조경, 잔디 관리, 시설 조성 등에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여 경제적 가치를 가진 공간을 만든 만큼, 이 성과를 동의 없이 디지털로 복제해 사업에 활용한 골프존의 행위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해치는 부정경쟁행위라는 것이다. 이 판결로 골프존은 운영사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게 됐다.
이 2020년 판결은 의미가 컸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골프장의 경제적 성과는 보호했지만, 정작 코스를 설계한 설계사의 창작적 권리 자체를 정면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전환점이 된 것이 2026년 2월 대법원 판결이다. 이 판결은 골프 코스 설계가 저작권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창작물인지 여부를 정면으로 다뤘고, 결과적으로 설계사의 손을 들어준 역사적 선고가 됐다.
이 소송은 국내외 유명 코스 설계사들이 골프존을 상대로 제기했다. 이들은 골프존이 자신들이 설계한 수십 개 골프 코스를 무단으로 디지털화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골프존은 이에 대해 골프 코스는 경기 규칙, 안전성, 지형 조건 등 기능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설계자의 예술적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특히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의 특성상 설계 자유도가 제한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설계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2심은 골프 코스의 차별성이 주로 기능적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저작물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이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골프 코스 설계가 단순한 토목 설계가 아니라, 티잉 그라운드와 페어웨이, 벙커, 해저드, 그린의 형태와 위치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선택하고 배치하고 조합한 결과물이라고 봤다. 따라서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이 표현돼 있다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골프 코스 저작물성 판단의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법원은 개별 요소 하나하나보다 전체적인 선택, 배치, 조합의 유기적 구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즉 단순히 벙커 하나, 홀 하나의 모양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전략성과 난이도, 심미성을 만들도록 결합됐는지가 창작성을 판단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경기 규칙이나 지형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해서 창작성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제약이 있더라도 설계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고, 그 차이가 창조적 개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골프존은 이 과정에서 이른바 ‘파노라마의 자유’와 ‘공정이용’ 논리를 내세웠다. 골프장이 야외에 개방된 공간인 만큼 이를 촬영하거나 재현하는 행위는 허용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원제 골프장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공장소로 보기 어렵고, 실제 공간을 단순히 촬영하는 것과 이를 데이터화해 3D 시뮬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2차적저작물로 만드는 것은 법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공정이용 주장 역시 상업성이 강하고, 실제 골프장과 코스 설계의 경제적 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판결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우선 골프존은 소송 대상이 된 일부 골프 코스의 서비스를 즉각 중단해야 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특정 코스 몇 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크린골프 업계가 실제 골프장 기반 콘텐츠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다른 설계사나 골프장까지 비슷한 소송에 나설 경우 서비스 가능한 코스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곧 이용자 선택권 축소와 서비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비용 구조 변화도 피하기 어렵다. 설계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저작권료는 곧 운영비 상승을 의미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 이용료 인상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특히 가맹점 중심 구조를 가진 스크린골프 산업에서는 본사 부담이 점주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미 업계에서는 저작권료 부담이 커질 경우 중소 사업자의 경영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함께 연쇄 소송 가능성도 커졌다. 이번 판결은 골프존에 대한 판결이지만, 법리 자체는 카카오VX나 SG골프 등 다른 업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업계 전반이 저작권료 협상 혹은 추가 소송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 업체는 버틸 수 있더라도, 중소 업체들은 시장 재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손해배상액과 로열티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다. 설계사 측은 골프존이 코스 서비스를 통해 얻은 수익과 설계사의 권리 침해 규모를 고려해 대규모 손해배상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표준 라이선스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설계가 단체들은 복제, 홍보, 2차적저작물 활용, 리노베이션 등 이용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로열티 기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골프 코스 설계를 명시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이른바 ‘버디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스크린골프와 시뮬레이션 기술이 성장하면서 골프 코스 설계의 창작적 가치와 경제적 권리를 별도로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국제적으로도 선도적인 판례로 평가될 수 있다.
산업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는 실제 코스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가상 코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가상 코스는 저작권 분쟁 부담이 적고, 실제 지형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재미 요소를 넣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시에 스크린골프 업체와 설계사, 골프장 간의 정당한 라이선스 계약 체계를 제도화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소송보다 협상과 표준화가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더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골프존 판례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실제 공간을 디지털로 정밀하게 재현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공간에 담긴 창작성과 투자 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스크린골프 산업은 이제 단순히 기술력과 콘텐츠 수로 경쟁하는 단계를 넘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성숙한 산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번 판결은 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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