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 “상호작용처럼 느끼는 착각”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4-20 09:00:00
Tilo Hartmann, PSI 개념 확장… ‘지각된 상호작용’ 이론 제시
AI·챗봇 시대, 관계의 본질은 ‘실제’가 아닌 ‘인지’로 이동
[메타X(MetaX)]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사람과만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AI 챗봇, 게임 캐릭터, 가상 아바타 등 비인간적 존재와의 상호작용이 일상화되면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경험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Tilo Hartmann은 기존의 파라소셜 인터랙션(PSI) 개념을 확장하며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도 대화하고 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이다.
파라소셜 인터랙션은 실제 상호작용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마치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경험을 의미한다. 뉴스 앵커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유튜버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하르트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파라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상호작용처럼 느끼는 수준을 넘어, 그 경험이 실제 커뮤니케이션처럼 해석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대상이 나를 인식하고 있으며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지각될 때, 인간은 그것을 ‘실제 대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개념 확장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과거 방송 중심 환경에서는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일방향 구조였지만, 오늘날 AI와 인터랙티브 시스템은 사용자에게 반응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비상호성이라는 전제는 약화되고, 상호작용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정성의 개념도 변화한다. 과거에는 인간이 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정성이 확보되었지만, 현재는 인공지능이나 가상 캐릭터가 인간처럼 느껴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진정성 역시 ‘지각된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르트만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지각된 거리’와 ‘지각된 진정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변수를 제시한다. 지각된 거리는 사용자가 대상과 얼마나 가깝다고 느끼는지를 의미하며,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호작용은 현실적인 책임과 감정을 동반하게 된다. 반대로 거리가 멀게 느껴질수록 사용자는 보다 자유롭고 놀이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지각된 진정성은 해당 존재가 얼마나 ‘실제처럼 느껴지는가’를 의미하며, 진정성이 높을수록 관계는 깊어지고 신뢰와 몰입이 강화된다.
이 두 변수의 결합은 현대 AI 환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진정성이 높고 거리가 가까울수록 사용자는 AI와의 상호작용을 실제 인간 관계에 가깝게 인식하게 된다. 반대로 진정성이 낮다면 상호작용은 단순 기능적 반응 수준에 머무른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AI와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 구조로 작동한다.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학술적 기여는 상호작용 개념 자체를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실제 반응이 존재해야만 상호작용으로 인정되었지만, 하르트만은 ‘지각된 상호작용’ 또한 상호작용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AI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전환이다. 인간은 실제 상호작용 여부와 무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오늘날 AI 환경에서 더욱 강력한 설명력을 갖는다. 우리는 챗봇과 대화하고, 게임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며, 가상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 이는 단순한 사용이 아니라 관계 형성의 과정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인간이 ‘실제’보다 ‘실제처럼 느껴지는 것’에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진정성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지각의 결과이며, 이 지각이 관계의 깊이를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윤리적 문제도 등장한다. AI가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위로하는 것처럼 인식될 때, 그 관계는 어디까지 실제로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발생한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만, 그 대상은 실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이 간극은 향후 AI 윤리와 책임 문제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논문은 2008년에 발표된 만큼, 현대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 환경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개념적 정교화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데이터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AI 시대 인간-비인간 관계를 이해하는 이론적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그 관계가 실제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인지에 있다. AI 시대의 본질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이 ‘관계라고 믿는 경험’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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