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 AI 리터러시의 변화

류성훈 기자

ryunow@metax.kr | 2025-11-26 11:00:00

AI 리터러시 역량 결정 요인 연구: AI 이용 경험과 혁신성을 중심으로
인프라미디어로서의 AI와 관계적 역량으로서의 AI 리터러시


AI 리터러시 역량 결정 요인 연구: AI 이용 경험과 혁신성을 중심으로. 정서현, 박주연.

 <방송통신연구> , 2024년 가을호 137~168



생성형 AI 시대와 리터러시의 필요성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일상생활 전반에 깊이 파고들면서, 이를 안전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인 'AI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AI 기술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정보 왜곡, 환각 현상(Hallucination), 딥페이크와 같은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들이 주로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하거나 개념을 정의하는 데 그쳤던 것과 달리, 이 연구는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AI 리터러시 역량을 결정짓는 선행 요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AI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포괄적 역량으로서의 AI 리터러시를 규명하고자 했다.

그림. 연구모형


사회 인지 이론에 기반한 연구 설계

본 연구는 반두라(Bandura)의 사회 인지 이론(Social Cognitive Theory)을 이론적 틀로 삼아 AI 리터러시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사회 인지 이론의 삼원적 상호 결정론에 따르면, 인간의 학습과 행동은 '개인적 요인', '환경적 요인', '행동적 요인'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진다. 연구진은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AI 서비스 이용 경험을 행동적 요인으로, 개인의 혁신성을 개인적 요인으로 설정했다. 즉, 개인이 AI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하는 행동과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상호작용하여 AI 리터러시라는 역량을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디지털 환경이라는 맥락을 고려하여 기존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AI 리터러시 형성의 전제 조건이자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고 가정했다.

행동적 요인: 단순 빈도보다 중요한 이용의 질

연구 결과, 행동적 요인인 AI 서비스 이용 경험은 AI 리터러시 함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AI 서비스를 얼마나 자주 이용하느냐(빈도)보다는, 하루에 얼마나 오래 이용하는지(이용 시간)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를 이용하는지(이용 개수)가 더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회 인지 이론에서 강조하는 경험의 양과 질이 학습에 중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사용자가 다양한 AI 서비스를 접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탐색하는 과정에서 AI의 작동 원리나 한계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며, 이것이 곧 실질적인 리터러시 역량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요인: 혁신성의 동기에 따른 차별적 영향

개인적 요인인 혁신성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동기에 따라 기능적, 쾌락적, 사회적 혁신성으로 세분화되었으며, 각기 다른 영향력을 보였다. 분석 결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능적 혁신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쾌락적 혁신성'은 AI 리터러시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능적 혁신성이 높은 사람은 기술의 유용성에 주목하여 기술적 이해도를 높이는 경향이 있고, 쾌락적 혁신성이 높은 사람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기술을 즐기며 활용 및 윤리적 역량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반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사회적 혁신성'은 AI 리터러시 향상에 기여하지 못했다. 이는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동기가 결여된 기술 수용은 단순한 채택 행위에 그칠 뿐, 심층적인 역량 학습으로 이어지지는 못함을 시사한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매개 효과와 시사점

이 연구의 또 다른 핵심적인 발견은 디지털 리터러시의 매개 효과다. AI 서비스 이용 경험과 혁신성은 AI 리터러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디지털 리터러시를 통해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기존의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이 AI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 조건임을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AI 리터러시를 함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AI 기술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서비스를 깊이 있게 경험하도록 유도하며, 학습자의 혁신적 성향(기능적, 쾌락적 동기)을 자극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가 AI 리터러시 격차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기초적인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AI 리터러시'의 재구성: 인프라미디어로서의 AI와 관계적 역량으로서의 AI 리터러시

이정현.(2025).<언론과 사회> 33권 2호 5-49.


도구적 관점의 한계와 리터러시 신화 비판

이 연구는 현재 사회적으로 급부상한 AI 리터러시 담론이 기술의 도구적 활용 능력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논의들이 정보 접근성이나 기능적 활용, 혹은 윤리적 태도와 같은 개별적 역량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연구는 인공지능(AI)을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감각, 판단, 행위를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인프라미디어(Inframedia)’로 개념화하며, 이에 기반하여 AI 리터러시를 ‘관계적 역량’으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AI 리터러시 담론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지능정보사회’의 청사진에 따라 구성된 측면이 강하다. 이는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디지털 인재 양성이라는 명목하에 코딩 교육 의무화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같은 제도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흐름이 ‘리터러시 신화(Literacy Myth)’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리터러시 신화란 기술을 읽고 쓰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진보를 보장한다는 ‘도구적 신화’와, 가짜뉴스나 딥페이크 성범죄 같은 사회적 위험을 개인의 역량 강화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를 의미한다. 즉, 현재의 AI 리터러시 교육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책임이나 기능적 숙련도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산업적·정치적 필요에 부합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디어 생태학과 인프라미디어로서의 AI

이러한 도구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가 도입하는 핵심 이론은 ‘미디어 생태학’과 ‘인프라미디어’ 개념이다. 미디어 생태학적 관점에서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사회 구조를 재조직하는 ‘환경’이다. 과거 문자의 탄생이 구술 문화를 변화시켰듯, AI는 독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각을 자동화하고 의미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환경이자 인프라로 작동한다. 따라서 AI 리터러시는 개별 기술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조성하는 환경적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생태학적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연구자는 AI를 ‘인프라미디어’로 정의한다. AI는 딥러닝, 대규모 언어모델 등 다양한 공학 기술의 총체일 뿐만 아니라, 데이터 센터, 전력망, 인간의 노동, 정책과 자본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기술적 시스템이다. AI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서 정보가 생성되고 유통되는 방식을 규정하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의 조건을 사전에 구조화한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이 시청자의 선택권을 사전에 규정하거나, 생성형 AI가 특정한 방식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산출하는 것은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감각을 조율하는 기반 구조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AI 리터러시는 이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작동 방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힘을 인식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대안적 모델: 관계적 역량으로서의 AI 리터러시

이러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연구자는 AI 리터러시의 핵심을 ‘관계적 역량’으로 정의한다. 관계적 역량은 기술을 정복하거나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생태적 환경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경험의 조건을 성찰하고, 그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이는 세 가지 차원의 역량을 포함한다.

첫째는 ‘AI가 재구성하는 감각 경험에 대한 비판적 이해’다. 이는 AI 기술이 인간의 지각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포착하는 능력으로, 기술과 인간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사용자는 AI를 통해 자신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UX 설계, 음성 피드백 등)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둘째는 ‘인프라미디어로서 AI의 구조적 역량에 대한 이해’다. 이는 AI가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 편향, 노동 착취, 환경 문제 등 정치적·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 있음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라투르의 ‘블랙박스’ 개념처럼, 기술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복잡한 이해관계와 권력 구조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챗봇의 답변을 단순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답변이 어떠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적 판단에 의해 구성되었는지를 해석해 내는 능력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는 ‘인프라적 상상력과 실천의 역량’이다. 이는 주어진 기술적 조건을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안적인 설계와 배치를 상상하는 정치적이고 감각적인 역량이다. 단순히 AI 교과서를 잘 활용하는 것을 넘어, AI 기반의 교육 시스템이 어떤 인간상을 만들어내는지 비판적으로 질문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기술 결정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기술 환경의 조건을 주체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술 활용을 넘어선 비판적·인문학적 실천으로

이 연구는 AI 리터러시가 기능적 숙련이나 개인적 윤리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인간과 기술,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인문학적이고 비판적인 역량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리터러시는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기계적 조합이 바꿔놓은 삶의 조건 속에서 주체적으로 감각하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학, 기술사회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이 교차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며, 제도권 교육이 주입하는 청사진을 넘어선 대안적인 실천과 실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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