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담긴 경고와 비판도 함께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공상과학소설(Sci-Fi)은 한때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상상 속의 미래,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와 환경 변화를 다루는 이 장르는 처음에는 대중에게 생소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SF에 자주 나오는 우주선, 외계 문명, 인공지능 로봇, 다른 차원의 세계 등 당시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고,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상상력이 하나씩 현실화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마법과 환상처럼 여겨졌던 기술들이 이제는 구체적인 서비스와 제품으로 구현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공상과학소설에 뿌리를 둔 상상력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테크 기업가들의 추진력이 자리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공상과학소설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인류 문명의 청사진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SF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머스크의 전기를 쓴 애슐리 반스는, 머스크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꼽았다. 그가 어린 시절 미래를 꿈꾸며 읽었던 이 책들은 그저 상상력과 오락만을 위한 책이 아닌, 삶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욕망과 문명의 붕괴와 재건 등 깊은 인문학적 고찰이 담긴 고전이다.
머스크가 추진하는 테슬라의 AI 기술, 자율주행 시스템, 스페이스X의 화성 이주 계획, 심지어 사이버트럭까지도 이런 소설들의 영향 아래 설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는다면 머스크가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언급한 화성 이주 계획과 그가 구축하려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주인공 해리 셀던은 인류에게 30,000년에 걸친 암흑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견하고, 문명이 이 피할 수 없는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한 식민지를 먼 행성들에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이 내용을 보고 머스크의 화성 프로젝트가 겹쳐 보이지 않는가?'
그는 말한다.
"<파운데이션>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만약 문명을 지속시키고 암흑기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며, 만약 암흑기가 도래한다면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해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행동들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2018년 팰콘 헤비 로켓에 자신의 자동차 브랜드 테슬라의 로드스터 모델을 실어 쏘아올렸는데, 그 자동차에는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디지털 버전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 이벤트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SF와 그의 상상력, 그리고 기술의 접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행동이었다.
머스크 이외에도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 다양한 테크 기업 CEO들이 SF 문학의 영향 아래에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시>에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가져와 현실의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려고 했다. 본래 페이스북(Facebook)이었던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꿨던 것도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프 베조스 역시 SF 팬임을 자처하며, 어린 시절부터 <스타트렉>의 엄청난 팬이었음을 밝혔고, 구글의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 역시 <스노우 크래시>를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꼽았다.
이처럼 거대 테크 기업의 수장들은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기술적 영감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은 분명 흥미롭고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SF는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는 아이디어를 탐색할 수 있도록 상상력의 한계를 열어주며, 생각의 자유를 제공해준다. 넘치는 상상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과 그의 실천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고, 미래를 점차 현실로 다가오게 한다. 그들의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술들은 현재 기후 변화나 질병, 빈곤 등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세계 곳곳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많은 공상과학 소설은 본질적으로 디스토피아적 경고를 담고 있다.
<스노우 크래시> 역시 본래 메타버스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크 저커버그와 사람들은 이를 마치 실현해야 할 미래처럼 받아들였다. 인간의 본질,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통제 불가능성, 현실과 가상의 괴리 등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와 우려들은 종종 무시되고, 겉으로 화려한 모습과 기술의 최전선에 서있는 듯한 이미지는 오히려 소비를 자극하는 마케팅 요소로 쓰이기도 한다.
기술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또한 모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의 부재로 이어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환경에 되돌릴 수 없는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특정 소수의 계층과 테크 엘리트만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몇몇 개인의 비전이 전세계의 미래가 되는 세상보다, 모두가 같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있다. 공상과학소설은 미래를 예언하려는 장르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와 인간의 본질을 조명하기 위한 문학이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테크 CEO들이 그 상상력을 현실에 적용할 때, 그 안에 담긴 경고와 비판도 함께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기술은 우리 삶을 나아가게 만드는 도구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기술과 상상력은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반드시 성찰이라는 이정표가 함께 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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