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b(오브)’를 통해 사람의 눈 스캔, ‘디지털 신분증’ 생성
AI와 봇이 넘쳐나는 시대, '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증명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기술이 사람을 흉내 내고, 자동화된 시스템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짜 인간'임을 보여줄 수 있을까.
2025년 5월, 샘 알트만(OpenAI CEO)이 이끄는 'World(월드)' 프로젝트는 이 물음에 대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6개 도시와 Razer 매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핵심은 ‘Orb(오브)’라는 장치다. 이 장치는 사람의 눈을 스캔해, 단 한 번만 발급 가능한 ‘디지털 신분증’을 만든다. ‘월드 ID(World ID)’라 불리는 이 신분증은 생체 정보를 기반으로 한 ‘Proof of Personhood(사람임의 증명)’ 기술을 사용한다.
홍채 스캔 한 번으로, 사용자는 자신이 인공지능이 만든 봇이 아니라, 고유한 한 명의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 인증 결과는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누구나 진짜 인간이라는 사실을 디지털 공간에서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신원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한데 묶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World App'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은 월드 ID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암호화폐 지갑 기능, 송금, 대출, 결제까지 하나의 앱 안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사용자는 WLD, USDC 같은 자산을 앱 내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으며, Stripe나 Visa와 연동된 결제 기능도 지원된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보안성 역시 강점이다.
Orb 장치를 통한 홍채 스캔 정보는 암호화된 상태로 장치 내부에만 잠시 저장된 후 바로 삭제된다. 중앙 서버에 보관되지 않기 때문에, 해킹이나 유출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또, 하나의 ID만 발급할 수 있어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만들어 부정하게 보상을 받는 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이는 온라인 이벤트나 에어드랍 등에서 시스템을 더욱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술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인증 절차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기존의 'KYC(Know Your Customer, 고객확인)' 절차는 신분증을 업로드하고, 사진을 찍고, 수일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반면 월드 ID는 홍채 스캔 한 번이면 끝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신원을 인증할 수 있다. 일본의 데이팅 앱 틴더에서는 실제로 월드 ID를 시범 도입해 가입 절차를 단순화하고 있다.
중앙화 거래소(CEX)나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도 이 기술을 도입하면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
로그인 화면에 월드 ID 인증 옵션을 추가하거나, 인증된 사용자만 참여할 수 있는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보안성과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스마트 계약과 연동하면, 인증된 사용자만 특정 기능에 접근할 수 있어 운영의 투명성도 높아진다.
다만, 이 기술이 글로벌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K-PL) 등 다양한 법률에 부합해야 하며, ISO 27001 같은 정보보안 인증 체계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플랫폼 간 연동 방식, API 구조, 수수료 분배 모델 등을 명확히 설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신원 인증 기술의 전환점에 놓여 있는 시기다.
암호화폐가 제도권 금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이 기술은 단지 새로운 인증 수단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디지털 사회를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샘 알트만의 ‘월드 ID’가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AI가 넘치는 세상, 기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 첫 단추는 어쩌면, 우리가 사람임을 증명하는 '디지털 여권'을 갖는 일인지도 모른다. 월드 ID는 바로 그 여권의 첫 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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