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간도 결국 ‘성별화된 존재’로 작동하는가?
[메타X(MetaX)]오늘날 광고 마케팅 산업에서 AI 기술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그리고 초개인화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AI는 이제 크리에이티브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하지만 김태연, 고영지, 이정현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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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 표기와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 지향 캠페인이 지각된 캠페인 가치, 브랜드 진실성, 소비자-브랜드 동일시,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 김태연· 고영지· 이정현,2025 |
효율의 도구 vs 진정성의 훼손
연구 결과는 흥미롭게도 소비자가 AI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 즉 맥락 의존적인 반응(Context-Dependent AI Backlash)을 보인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제품의 기능이나 스타일, 품질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브랜드 캠페인에서는 AI가 이미지를 생성했다는 사실을 표기하더라도 소비자 반응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소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의 AI 활용을 기업의 혁신이나 효율적인 도구 활용으로 받아들이며, 굳이 인간의 손길이 닿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브랜드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상황은 급변한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캠페인에서 AI 활용 사실이 드러날 경우, 캠페인에 대한 가치 평가는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소비자가 '도덕성'이나 '사회적 올바름'을 기계가 아닌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게으른 다양성’과 브랜드 진실성의 훼손
이 논문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AI 활용 표기가 브랜드의 '진실성(Integrity)'을 훼손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규명한 부분이다. 사회적 가치를 주창하는 캠페인은 본질적으로 브랜드의 철학과 신념을 전달하는 행위다. 소비자는 이러한 캠페인에서 브랜드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그런데 실제 모델을 섭외하여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신, AI를 통해 가상의 소수자 모델을 생성해내는 방식은 소비자에게 ‘효율성의 신호’가 아니라 ‘노력 결핍의 신호’로 읽힌다.
이는 곧 브랜드가 비용을 절감하거나 흉내만 내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이용했다는 '브랜드 토크니즘(Brand tokenism)' 혹은 '목적 워싱(Purpose-washing)'의 의심을 사게 만든다. 즉, AI 표기는 "이 메시지는 기술적으로 손쉽게 생성된 결과물일 뿐, 브랜드가 땀 흘려 실천한 결과가 아니다"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연구 결과, 사회적 가치 캠페인에서 AI 활용이 표기되었을 때 소비자는 이를 혁신적인 시도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덜 진지한 태도' 혹은 '진정성 부족'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AI는 비윤리적인 존재라기보다, 브랜드의 언행일치를 방해하는 '성실하지 않은 대리인'으로 기능하며, 결과적으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진정성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
관계의 단절: 동일시의 실패와 구매 의도의 하락
그저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의 변화를 넘어, 이 논문은 AI 표기가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관계(Relationship)를 어떻게 끊어놓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 캠페인에서 AI 사용이 인지될 경우 일차적으로 캠페인의 가치 지각이 낮아지고, 이는 브랜드가 도덕적 원칙을 고수한다는 믿음인 '브랜드 진실성'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 과정이 소비자가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소비자-브랜드 동일시(Consumer-Brand Identification)'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브랜드를 통해 자아를 표현하고 유대감을 느낀다. 하지만 AI가 개입된 사회적 캠페인은 이러한 동일시 과정을 방해한다. 소비자는 진정성이 결여된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거부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구매 의도의 감소로 이어진다. 주목할 점은 AI 표기가 구매 의도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즉, 소비자는 "AI를 썼으니 안 사겠다"고 단순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쓴 걸 보니 진정성이 없고, 그런 브랜드는 나와 맞지 않으니 사지 않겠다"는 복합적인 심리 과정을 거친다. 이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단순한 거래(Transaction)가 아닌 관계(Relational Contract)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함을 시사한다.
전략적 침묵과 투명성의 딜레마: 과정이 곧 메시지다
이 연구는 실무자들에게 무조건적인 투명성이 항상 정답은 아니며, 캠페인의 성격에 따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시즌 세일, 신제품 출시, 혹은 단순한 이미지 제고와 같은 일반적인 캠페인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해도 무방하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상업적 맥락에서의 AI 활용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성, 환경, 인권, 윤리 등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다루는 캠페인에서는 AI 활용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오히려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가 '무엇을 말했는가(Output)'를 넘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었는가(Process)'를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창작물의 가치가 결과물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의 윤리성과 성실성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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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간 광고모델의 성별과 제품 유형에 따른 광고효과: 광고태도, 제품태도, |
가상 인간의 성별화
최근 인공지능과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가상 인간은 광고 및 마케팅 환경에서 실제 인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본 연구는 가상 인간이 기술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은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인지 틀'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가상 인간이 기술적으로 탈성별화되거나 중립적인 존재일 것이라는 낙관적 가설은 실제 광고 효과 측면에서 지지되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 인간 모델 중심의 성별 적합성 이론이 디지털 존재에게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관여 제품과 남성 가상 인간의 신뢰 구축 효과
연구의 핵심 발견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노트북과 같은 고관여 제품에서 나타난 남성 가상 인간 모델의 압도적 우위다. 실험 결과, 고관여 제품군에서 남성 모델은 광고태도(3.56), 제품태도(3.87), 구매의도(3.83) 모든 지표에서 여성 모델(2.79, 2.75, 2.67)을 크게 상회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는 소비자가 구매 결정 과정에서 위험 부담이 크고 논리적 정보처리가 요구되는 고관여 제품을 접할 때, 남성형 모델이 전달하는 전문성과 신뢰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가상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가상 인간의 외형을 통해 '성능 중심의 신뢰'라는 전통적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관여 제품에서의 성별 무용론과 감성적 소구의 중요성
반면, 음료수와 같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저관여 제품 광고에서는 모델의 성별에 따른 효과 차이가 통계적으로 미미하거나 유의미하지 않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저관여 제품의 경우 소비자는 정교한 정보처리보다는 주변 경로를 통해 감정적이고 시각적인 단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델의 성별 자체가 주는 변별력은 약화되며, 오히려 모델의 외형적 매력, 친밀감, 스타일링 등 시각적 몰입도를 높이는 감각적 요소가 광고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일부 조건에서는 여성 모델이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도 관찰되었는데, 이는 저관여 제품 특유의 감성적 접근 방식에 부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략적 페르소나 설계: 제품과 모델의 논리적 결합
본 연구가 제시하는 실무적 인사이트는 가상 인간 모델을 활용할 때 '인간성(Realism)'의 재현보다 '제품과의 일관성(Consistency)'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고관여 제품군에서는 인지적 정보처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신뢰감과 전문성을 강조한 남성형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브랜드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모델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반대로 저관여 제품군에서는 특정 성별에 고착되기보다 친근함과 시각적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을 기획하고, 캐주얼한 스타일링이나 소셜 미디어 활용성을 고려한 감성적 운영 전략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가상 인간 마케팅의 성공은 기술적 고도화가 아니라, 소비자의 심리적 정보처리 경로에 적합한 최적의 모델 페르소나를 기획하는 정교한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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