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술 산업의 변화는 빠르고도 깊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단순한 유행을 넘어 비즈니스의 구조와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이 두 기술은 공통적으로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 연산 능력, 데이터 인프라, 인재 확보까지. 기술을 실현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수다. 즉, 기술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능력까지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AI와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실제로 자금 유치에 성공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자금은 그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다.
자금은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기술의 성장과 확산을 이끄는지 주목할 만한 사례들을 통해 확인해 보자.
AI 기반 수요 예측의 통합, Crisp & Shelf Engine
Crisp는 식품 산업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국의 테크 스타트업으로, 유통 및 리테일 분야의 공급망 효율화를 목표로 한다. 이 플랫폼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소비재(CPG) 브랜드, 소매업체(리테일러), 유통업체 간의 데이터 통합 및 공유를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기업은 판매 흐름과 재고 이동에 대한 인사이트를 정교하게 확보하고, 보다 민첩한 공급망 운영이 가능해진다.
현재 Crisp는 전 세계 25만 개 이상의 매장, 6,000개 이상의 브랜드, 그리고 2.5조 달러 규모의 리테일 판매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으며, 고객사가 데이터를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5년 3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Crisp는 수요 예측 및 자동 주문 영역에서 AI 기술을 선도해온 스타트업 ‘Shelf Engine’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4년 9월 7,200만 달러(약 972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 직후에 이루어진 거래로, 해당 자금이 인수에 전략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Shelf Engine은 특히 신선식품(샐러드, 유제품, 베이커리 등)의 수요를 예측하고, 자동으로 주문을 생성함으로써 재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AI 기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인 분석 플랫폼이 ‘데이터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면, Shelf Engine은 직접적인 실행 영역(Execution layer), 즉 구체적인 주문 행동에 특화된 솔루션으로 기능해왔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기술 확장이 아닌, Crisp의 전략적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데이터 분석에서 나아가, 실행 가능한 AI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리테일 산업 내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부터 자동화된 실행까지 이어지는 ‘엔드투엔드(End-to-End)’ 공급망 인텔리전스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실물 자산의 디지털 전환, 교보생명 & 갤럭시아머니트리
교보생명과 갤럭시아머니트리(https://www.galaxiamoneytree.co.kr)는 최근 항공기 엔진을 기초자산으로 한 증권형 토큰(STO)을 발행해, 일반 투자자도 고가 실물 자산에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STO는 본질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방식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항공기 엔진 등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상의 ‘토큰’으로 전환하여,
법적 권리까지 포함된 형태로 발행·보관·유통된다.
이는 단순한 암호화폐와는 달리, 실질적인 자산 소유권과 수익 배당권까지 내포한 ‘금융상품’인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교보생명은 신탁 자산 관리와 전자등록 방식의 수익증권 발행을 담당하고,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이를 토큰화해 블록체인 상에서 유통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투자자의 거래 이력과 소유권 정보는 모두 블록체인에 기록되며, 이는 탈중앙화보다는 투명성과 추적성에 중점을 둔 블록체인 활용 사례로 평가된다.
직접적인 자금 유치 사례는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가 의미있는 이유는 비유동 자산을 유동화하고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기술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즉, 기술이 자금을 유입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그동안 항공기 엔진과 같은 고가 자산은 일부 기관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 STO 구조를 통해 개인 투자자도 수십만 원 단위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자산 유동성의 혁신이자, 금융 접근성 확대라는 측면에서 자금 조달 채널의 재설계로 볼 수 있다.
‘자금’이 직접적으로 기술에 투자되기도 하지만, ‘기술’이 자금 흐름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는 뜻이다.
기술과 자금의 전략적 결합, 중국판 ChatGPT 'Zhipu AI'

중국의 대표적인 인공지능 스타트업 Zhipu AI(智谱AI)는, 최근 자국 내에서 급부상하는 초거대 언어모델(LLM) 경쟁 구도 속에서 기술 개발과 자금 유치, 사업 구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며 중국식 AI 전략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역시, ‘자금’ 조달이다.
Zhipu AI는 최근 국영 투자사 화파그룹(Huafa Group)으로부터 5억 위안(약 69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앞서 확보한 4,200억 원 규모의 민간 자금에 이어진 추가 유치로, 단일 스타트업으로서는 이례적 규모이며, 국가 주도형 AI 육성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자금은 자사 언어모델인 GLM(General Language Model) 시리즈의 고도화와 산업 현장 적용을 위한 솔루션 패키지 개발에 투입되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최근 공개된 GLM-4.0이 중국 내 ChatGPT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Zhipu AI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며, 단순 모델 연구를 넘어 기업 대상 맞춤형 AI 솔루션 판매(B2B 전략)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경쟁사 DeepSeek 등의 빠른 상업화 흐름에 대응하는 동시에, 기술력 + 상업성 + 정책 지원이라는 세 축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Zhipu AI의 최근 행보는 ‘자금이 기술 경쟁의 지정학적 무기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히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 스타트업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기술과 자금이 결합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금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자원이 된다. 즉, 기술이 돈을 부르고, 돈이 다시 기술을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자금 ↔ 기술 ↔ 시장의 순환 고리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Zhipu AI는 중국 AI 산업이 어떻게 정부 주도의 자본과 시장 메커니즘을 동원해 기술 패권을 추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초거대 모델을 위한 글로벌 자금 전쟁, OpenAI
AI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거대 공룡, OpenAI 또한 인공지능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서, 최근 대규모 투자 유치와 조직 재편을 통해 글로벌 AI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2024년 10월, OpenAI는 66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 가치를 1,57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주요 투자자로는 Microsoft, Nvidia, Thrive Capital, Khosla Ventures 등이 참여했다.
이어 2025년 3월, SoftBank 주도의 4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이며, 이는 벤처 캐피털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자금 조달은 OpenAI가 연말까지 영리 법인으로의 전환을 완료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OpenAI는 현재 조직 재편 및 전략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우선 안정적인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을 위해 연말까지 영리 법인으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추가 자본 확보와 기업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된다.
또한 OpenAI는 SoftBank, Oracle과 함께 5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Stargate'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선 프로젝트 초기 목표로 텍사스에 데이터 센터와 전력 시설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OpenAI의 이러한 움직임은 자금이 기술 진보의 속도와 규모를 결정하는 현대 산업 환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연구 개발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AI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는 등 자금 조달이 곧 기술 혁신의 핵심 동력임을 입증하고 있다. 나아가, 비영리에서 영리 법인으로의 전환은 기술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자금 조달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기술은 더 이상 홀로 진격하지 않는다.
AI와 블록체인은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자금의 흐름을 바꾸는 기술’임과 동시에 ‘자금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OpenAI는 100억 달러 넘는 자금을 바탕으로 초거대 AI 모델을 만들고 있고, Zhipu AI는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받아 중국판 ChatGPT를 키우고 있다.
Crisp와 Shelf Engine의 결합은 데이터와 예측을 하나로 묶어 시장을 정교하게 공략하고, 교보생명과 갤럭시아머니트리의 STO 프로젝트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자산 투자 방식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 모든 사례가 말해주는 건 단순하다. ‘이제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자금은 가능성이 있는 구조를 향해 흐르며, 그 구조는 설계된 기술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기술, 자본, 시장은 언제나 따로 움직이지 않으며 기술이 자본을 설계하고, 자본이 그 기술의 방향을 정한다.
AI와 블록체인은 지금, 그 흐름 위에 올라타 진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 흐름을 읽고, 구조를 먼저 그리는 자가 다음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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