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인데, 오늘 아침 공기가 이상하다. 늘 그렇듯 산책을 나가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이 열리며 밀려 들어온 공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여름 기운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어르신인 13살 요크셔 ‘우니’가 먼저 한 발을 내딛는다. 짧은 다리로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잠시 멈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덥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우니는 대답 대신 혀를 조금 내민다. 평소보다 호흡이 빠르다.
봄의 공기는 보통 부드럽게 감싸오는데, 오늘은 다르다. 공기가 몸을 감싸는 게 아니라, 밀어붙인다. 한낮의 여름처럼, 건조하고 직선적인 열기다.
아직 옷장에는 겨울과 봄이 섞여 있다. 특히 내가 ‘금융치료’라 부르며 하나씩 들여놓은 수트들. 봄날의 멋진 수트를 입은 내 모습을 생각하며 설렘을 안고 샀던 그 옷들을, 아직 10분의 1도 꺼내보지 못했다. 그런데 거리에는 반소매 셔츠, 얇은 원피스, 슬리퍼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이미 계절이 바뀌어 있다.
그렇게 누군가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계절을 따라가지 못한 채 서 있다.
“이게 4월 맞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맞은편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 표정이 묘하다. 놀란 것도, 어이없는 것도 아닌 단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얼굴.
계절이 순서를 건너뛰듯 변해버린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세상은 정말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오던 방식 자체를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난 서강대학교 가상융합전문대학원 박사과정으로서 존재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있다랄까.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요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내가 태어나면서 AI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내 경험을 토대로만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학습하는 존재”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책상 위에는 늘 문제집이 쌓여 있었고,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진 교과서가 펼쳐져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그 과목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머릿속에 넣었는지가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했다.
누군가는 늘 앞자리에 앉았고, 누군가는 늘 뒤에서 조용히 문제를 풀었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는 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알고 있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의 양이 곧 그 사람의 가치처럼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국 공부 잘하는 사람은, 문제를 많이 본 사람이야.”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많이 본 사람. 많이 저장한 사람.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진 사람. 그게 곧 ‘능력’이었다.
교실의 공기가 떠오른다. 초여름이 막 시작되던 어느 날,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선풍기는 느리게 돌아가며 종이들을 흔든다. 한 학생이 문제를 풀다가 멈춘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는 펜 끝을 입에 대고 잠시 생각한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기억을 더듬는다. 마치 머릿속 깊은 곳에서 파일 하나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그리고 몇 초 뒤, 펜이 다시 움직인다.
정답이다.
우리는 그걸 ‘이해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단지 적절한 데이터를 정확한 타이밍에 호출해 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말한다.
“이건 예전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어요.”
그 한 문장이 분위기를 바꾼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사람의 말을 중심으로 해결 방향이 정리된다. 경험이 많다는 건,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의미였고, 그 데이터는 곧 신뢰였다. 우리는 늘 그렇게 일해왔다.
과거를 참고하고, 유사한 사례를 찾고, 가장 확률 높은 선택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정확한 인간이 되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색창 하나만 열면, 우리가 평생 쌓아온 지식보다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던 작업을, 이제는 몇 줄의 입력으로 끝낼 수 있다.
“이거… 그냥 AI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아?”
누군가 가볍게 던진 말. 그 말에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후배를 만났다. 카페 안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밖은 한여름처럼 뜨거운데, 안은 아직 계절을 인식하지 못한 듯 냉기가 돌고 있었다. 그는 아이스커피를 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말했다.
“선배… 이제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예전엔 그냥 많이 알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정말 모르겠다고. 이상하다'
우리는 평생 ‘더 많이 아는 것’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이제는 ‘많이 아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구별될까.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햇볕이 너무 뜨겁다.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도로 위 아스팔트가 물처럼 일렁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우리도 어떤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존재, 어쩌면 하나의 AI인 것은 아닐까...
4월인데, 봄이 아니라 여름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계절조차 우리가 알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예전의 방식으로 정의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AI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는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했는가”로
서열이 나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고 있다. 저장의 양보다 중요한 것이 생겼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 나는… 어떤 인간이지?”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는 더 많이 기억하려 애쓰기보다, 무엇을 남길지 선택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끝까지 붙잡고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 어쩌면 지혜란 더 많이 쌓는 능력이 아니라 덜어낼 줄 아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조금은 느리게 생각해도 되는 시대가 어쩌면,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빠르게 답하는 존재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질문을 놓지 않는 존재는 여전히 드물지도 모른다.
녹아버린 얼음 사이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시간도, 계절도, 세상도 이상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까.”
아무도 답해주지 않지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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